현대자동차는 미국 남동부에 최첨단 공장을 건설하면서 이 공장이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격동적인 사건에 대비한 보험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했다. 현대는 76억 달러를 들여 조지아주의 작은 마을에 세운 이 공장에 회사의 열망을 보여주듯 메타플랜트아메리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메타플랜트아메리카는 현대, 기아, 제네시스 등의 브랜드를 단 전기 자동차를 비롯해 한국의 자동차 대기업 현대가 설계한 최신 자동차의 생산 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이었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남부 캘리포니아는 항구가 봉쇄된 것처럼 보였다. 서로 긴밀히 연결된 로스앤젤레스항과 롱비치항 앞바다, 태평양의 차가운 물 위에 50척이 넘는 거대한 선박이 발이 묶인 채 떠 있었다. 이들 선박이 부두에 정박해 화물을 하역할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 이 며칠이면 될 줄 알았는데 몇 주로 늘어났다. 궁금증을 못 이긴 일부 호사가들이 망원경을 들고 물가로 가서 검푸른 수평선까지 줄지어 늘어선 배를 세어 보려고 했지만 헛일이었다. 전쟁 때문이 아니었다. 세계 경제가 멈춰서면서 보인 모습이었다. 2021년 10월, 지구는 100년 만에 만난 최악의 팬데믹에 점령당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칩 제조업체들은 수십 년 전에 칩 생산을 미국에서 태평양 건너 일본, 한국, 대만으로 이전했다. 주로 애플 같은 주요 칩 사용업체가 재고를 줄임과 동시에 저비용 공급업체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칩 부족으로 대차대조표가 엉망이 되고, 대만을 짓누르는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의 칩 제조업체 인텔은 200억 달러를 투자해 애리조나주에 새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인텔은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렸을까? 적어도 그 답의 일부는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 2년 동안 인텔이 자사주 매입에 쓴 260억 달러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돈은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데 쓸 수도 있었다. 칩 부족은 자동차나 전자기기와 거리가 먼 산업에도 큰 피해를 주어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구호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 4장 “린 탈레반” 중에서
해운업계가 혼란에 빠진 가장 직접적 이유는 선적 컨테이너의 극심한 부족 때문이었다. 미국인이 팬데믹을 견디려고 집에 물건을 채우기 시작하자 중국의 공장에서는 엄청난 물량을 쏟아냈고, 이 때문에 거의 모든 항구에서 컨테이너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아마존이나 월마트 같은 대형 소매기업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컨테이너 선적을 보장하는 원양 해운사와 계약을 맺고 있었다. 이런 거대 기업조차 화물 선적에 어려움을 겪을 만큼 상황이 긴박해지자 이들은 컨테이너선을 용선하여 필요한 제품을 계속 실어 날랐다.
- 7장 “해운회사가 송하인을 등쳐먹고 있어요” 중에서
마페이는 자신을 위원장으로 만들어준 대통령과 달리, 원양해운사가 운송료를 급격하게 인상할 수 있었던 것이 그들의 시장 지배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해운업은 기업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독특한 산업이므로 반독점이라는 전통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사정이 오랫동안 미국의 수입업자들과 수출업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왔다고 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저렴한 운송료의 혜택을 누려왔다는 것이었다.
마페이는 나에게 “현재와 같은 상황은 20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 9장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군” 중에서
이 철도 건설 프로젝트는 1863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기준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던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 중국인 노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 그때 중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던 방식이 그 이후 대대로 철도회사들이 노동자를 대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 존중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수익성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었다.
- 13장 “공공비용으로 아무 데나 철도를 건설한다” 중에서
금전적 이익이 거의 모든 생산 시장의 형태를 결정했다. 투자자 계층은 효율성을 기준으로 글로벌 생산망과 유통망을 구축했다. 하지만 이 효율성은 그 무엇보다, 설령 신뢰성이 훼손된다고 해도 이윤을 중요시하는 변종 효율성이었다. 비용 절감의 강박에 시달리던 기업은 제품 생산을 해외로 이전했다. 이와 동시에 적기공급생산방식과 린 생산은 재고 감축을 요구했다. 이렇게 되자 문제가 발생할 완벽한 조건이 만들어졌다. 규모에 대한 무절제한 찬양은 독점기업가에게 한때는 경쟁이 치열했던 시장을 장악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 결과 경제는 일단 충격이 발생하면 물품 부족과 가격 인상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체질로 바뀌었다.
- 17장 “자유 시장이 사라지고 없어요” 중에서
세계가 중국 공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 광범위한 소비재의 가격이 오를 것이 확실해 보였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위기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는 대신 오랫동안 이윤 극대화 시대를 정의해왔던 효율성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의 공장에서 대량의 상품을 최저가로 사들이는 대신, 생산 기지를 전 세계로 넓혀야 할 터였다. 그러려면 다른 나라의 규칙과 생산시설 그리고 권력 실세에 익숙해져야 할 터였고, 새로운 인력을 배치해야 할 터였다. 그러면 사업 운영이 복잡해지고 돈과 시간이 많이 소모될 터였다. 이것은 판매 상품에 붙는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었다.
- 18장 “생산 공장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어요” 중에서
슈페는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면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반면, 미국에서 생산하면 그 제품을 쓰는 고객이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파악했다.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한다는 말은 미국 땅에 투자한다는 뜻일 뿐 아니라, 바다를 가로질러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데 따르는 탄소 배출을 줄임으로써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것은 주문을 베트남이나 아시아의 다른 국가로 돌린다고 해서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봤자 그 주문품이 미국 소비자 손에 들어오려면 태평양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었다.
- 19장 “세계화는 이제 수명이 다했습니다” 중에서
선전 본사에 근무하는 웬화의 빌 챈이라는 임원이 중국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 위챗으로 장에게 연락해왔다. 그의 질문은 직설적이었다. 사용 가능한 부지 면적은 얼마나 되나요? (34헥타르입니다.) 현지의 도로 사정은 어떤가요?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차차 나아지고 있습니다.) 인근에 정통 중국 식당이 있나요? (한 군데도 없습니다.)
몇 주가 지나자 웬화 측으로부터 부지를 매입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챈은 웬화 멕시코 자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챈은 이 공단은커녕 멕시코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머뭇대지 않고 3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이었다.
“우리의 주력 시장은 미국입니다. 그 시장을 잃고 싶지 않아요.” 어깨를 으쓱하며 챈이 말했다.
- 20장 “그래, 멕시코, 우리 좀 살려줘” 중에서
한국인 영업 책임자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팬데믹, 공급망 위기, 코로나로 인한 중국의 폐쇄 등을 겪은 많은 북미 제조업체는 가능한 한 리스크를 피하려고 하죠. 세계화는 끝났어요. 이제는 현지화예요. 세계화는 지정학적 상황이 안정적일 때나 작동하죠. 지금은 분명히 세계화가 위험한 순간으로 접어드는 전환점이에요.”
세계화가 끝났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지구상의 어느 곳도 자급자족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국제 무역의 장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20장 “그래, 멕시코, 우리 좀 살려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