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가량으로 키가 크고 깡마른 장교는 도미니크를 간단히 심문했다. 프랑스어를 유려하게 구사함에도 그는 프로이센 사람답게 경직되어 보였다.
“당신은 이 고장 사람이오?”
“아뇨, 벨기에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왜 무기를 들었소?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도미니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장교의 눈에 파랗게 질린 채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프랑수아즈가 보였다. 그녀의 새하얀 이마에 한 줄기 핏자국이 있었다. 두 젊은이를 번갈아 쳐다본 장교는 사태를 대강 짐작하고서 이렇게 덧붙였다.
“총을 쏜 걸 인정하오?”
“엉겁결에 무턱대고 쏘았을 뿐입니다.” 도미니크가 조용히 대답했다.
이런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화약으로 까매진 그의 얼굴이 땀에 젖어 있었고, 찰과상으로 어깨에 핏방울이 맺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됐소.” 장교가 되풀이했다. “당신은 두 시간 후에 총살될 거요.”
프랑수아즈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_29쪽
그녀의 내면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피였다. 그것은 맹목적 열정이었고, 가장 강한 자가 되고 싶은 격렬한 욕망이었다. 아버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며 몸을 떨고 복종하는 어머니를 보았을 때,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오직 경멸뿐이었다. 그녀는 종종 이렇게 되뇌었다. “나한테 저런 남편이 있다면 죽여버릴 거야.” _64쪽
심지어 우울한 슬픔에 젖었던 어느 날 저녁, 그녀는 그가 다른 여자들의 남자가 되지 않도록 차라리 아버지의 손에 죽게 내버려두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처럼 섬세하고, 그처럼 피부가 하얗고, 그녀보다 더 여자 같은 그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잠시 빠진 나쁜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아냐, 꼭 구해내야 해, 그 사람이 절대로 모르게. 그러고는 더 이상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야 해. 단지 그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난 행복할 거야. _90쪽
어느 토요일 아침 여섯 시, 병석에 누운 지 사흘 후에 나는 죽었다. 나의 불쌍한 아내는 조금 전부터 트렁크를 뒤져 내의를 찾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문득 뻣뻣하게 굳은 내 몸을 보았을 때, 눈이 휘둥그레지며 숨도 쉬지 못하고 달려왔다. 내가 정신을 잃고 기절한 줄 안 그녀는 내 손을 만지고 내 얼굴 위로 몸을 기울였다. 뒤이어 공포가 그녀를 엄습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기겁한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하느님 맙소사! 하느님 맙소사! 그이가 죽었어!” _99쪽
흔히, 나란히 누운 남편과 아내는 불이 꺼지면 똑같은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러나 남편도 아내도 입을 열지 않는데, 사람들이 몇몇 음란한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지 않듯 죽음에 대해서는 침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을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하며, 성기를 숨기듯 죽음을 숨긴다. _102쪽
아! 그때 나는 얼마나 죽음을 갈망했던가! 평생토록 나는 죽음의 무를 두려워하며 몸을 떨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원했고, 그것을 간청했다. 결코 그다지 어둡지 않을 거야. 이 꿈 없는 잠, 이 영원한 침묵과 암흑을 두려워하다니 얼마나 유치한 일인가! 죽음이란 정말 좋은 것이었다. 존재의 고통을 대번에, 영원히 없애 주니까 말이다. 오! 돌처럼 잠자고, 흙으로 돌아가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_127쪽
죽음은 더 이상 나를 두렵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전혀 찾지 못하는 지금, 죽음은 나를 원하지 않는 듯하다. 나는 죽음이 나를 잊을까 두렵다. _135쪽
그는 절망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5만 프랑의 연금을 벌었으나 부자가 되는 것보다 아버지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 칠월의 어느 날 아침, 의사가 그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해수욕을 하러 가세요, 선생님……. 예, 그게 아주 좋습니다. 특히 조개류를 많이 드세요, 아니 오직 조개류만 드세요.” 희망을 느낀 샤브르 씨는 다급하게 물었다. “조개 말입니까, 선생님……? 조개가 그렇게……?” “아주 좋아요! 벌써 성공 사례가 나왔습니다. 아시겠죠, 매일 드세요, 굴, 홍합, 무명조개, 성게, 삿갓조개, 왕새우와 바닷가재도.” 뒤이어 집을 나서면서, 의사는 문턱에서 무심히 덧붙였다. “그렇다고 외딴곳에 처박혀 조개만 드시면 안 됩니다. 샤브르 부인은 젊으니까 기분 전환이 필요해요……. 트루빌로 가세요. 공기가 아주 맑습니다.” _140쪽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를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마음속 깊이 불편함마저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는 무릎을 꿇었고,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의 귀에 거짓되게 울리는 이 문장을 겨우 찾아냈다. “당신은 나의 착한 천사입니다.” _198쪽
“나를 짜증 나게 하는 게 뭔지 아나? 그 친구의 그림이 늘 선하다는 거야, 기가 막힐 정도로! 자네들이 웃어도 어쩔 수 없어! 예전에는 그 친구가 망가진다면, 그 친구가 끝장난다면 벼락을 맞은 듯 지극히 혼란스러운 그림을 그릴 줄 알았어. 그런데 웬걸, 전혀 그렇지 않아. 그 친구는 마침내 일상적으로 작동되는 메커니즘, 다시 말해 아주 자연스럽게 아양을 떠는 기술을 터득한 듯해……. 그건 재앙이지. 그 친구는 끝났어, 더 이상 악을 그릴 능력이 없어.” _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