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때,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허기를 채우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평소에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독 고양이의 모습이 나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바닥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나아가는 고양이를 보니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졌다. 처절한 식사를 다 마친 고양이는 높은 벽 앞에 섰다. 그리고는 너무나 가볍게 점프해 그 벽을 올라서 아주 좁은 길을 따라 우아하게 사라졌다. 그리고는 나의 편협한 생각에 반론이라도 제기하듯이 야음 속에서 야옹거렸다.
“헐!”
방금까지만 해도 측은하고 안타깝기만 했던 고양이가 너무나 우아하고 멋져 보였다. 사뿐히 뛰어올라 그 좁은 길을 가볍게 걸어가는 발걸음이 조금 전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고양이의 모습과 너무 상반되었기 때문이다.
_ [고양이는 고양이다운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중에서
“어서 부대로 돌아가거라.”
그 한마디에 모든 기대가 무너졌다.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절망감과 자책감에 휩싸인 채 부대로 복귀했다. 돌아가는 길 내내, 큰스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스님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을까? 내가 이렇게 절박한데…’
그 후 영창에서 한 달하고도 반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군 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못난 아들 얼굴 보겠다고 부모님이 면회를 오셨다.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지만, 어머니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이 읽혔다. 그날 어머니는 큰스님을 찾아뵙고 오셨다고 하셨다. 나는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스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말씀을 전하셨다.
“아직 마음이 덜 영글었다.”
_ [“아직 마음이 덜 영글었다”] 중에서
나는 여전히 중심과 다투고 있다. 나의 내면의 바다는 끝이 없다. 삶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새로운 상황과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내 바다는 일렁이고 또 다른 내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하지만 이 부딪힘이 싫지 않다. 또다시 찾아오는 다툼은 더욱 멋진 중심의 완성이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그것을 열렬히 환영한다.
매 순간 중심과 다투고 있다면 내려놓자.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고 환영해주자. 그때, 다툼은 끝나고 중심은 바로 선다.
_ [나와의 싸움은 오직 나만이 끝낼 수 있다] 중에서
중심 잡기 작업도 이와 같다. 온 마음을 다해 돌을 세우는 그 과정에서 나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마주할 때가 많다. 지금은 그런 결과를 마치 세상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나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머릿속을 비우고, 내가 세상에 맞서 얻은 교훈을 되새긴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것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그저 비우고 무작정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 어려운 길을 걸으면서 나는 점차 강해졌고, 어느새 나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지금 나는 오히려 세상이 나에게 어떤 선물을 내놓을지를 기대하고 있다. 열심히 중심을 잡다 보니 이렇게 책을 출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어려운 길을 걷는 과정에서 얻게 된 뜻밖의 보상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 뻔한 결말이 보이는 길은 걷고 싶지 않다. 내 삶의 결말은 아직도 알 수 없다.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결말을 기대하듯이 나는 내 인생의 결말을 기대할 뿐이다.
_ [세상의 중심을 내려놓자 내 인생의 결말이 궁금해졌다] 중에서
수일이 지나 한적한 날, 동물원에 가서 아주 큰 땅거북을 운명처럼 마주했다. 나도 모르게 진짜 느리다고 생각이 올라오는 순간, 그 생각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무엇이건대 거북이의 느림과 빠름을 판단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북이는 나를 보고 자기보다 빠르다고 생각할까. 거북이의 세계에서 거북이는 자신이 느리다고 생각할까. 직접 문답할 수는 없기에 거북이의 생각을 알 수는 없었지만, 생각의 결이 그렇게 흐르면서 나의 관점은 이미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
거북이는 거북이다울 뿐
느린 것이 아니다.
내가 거북이를 느리다고
단정 짓는 것이다.
_ [거북이는 자기의 관점으로 산다] 중에서
이제는 지치고 무기력해질 때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괜찮다. 의미가 없어 보이는 날도 걱정하지 않는다. 삶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펼친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너무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도 좋지만, 자신을 비우고 그 텅 빈 공간에 세상이 무엇을 채워줄지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도 꽤나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일이다. 스스로 내려놓는 것, 무너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당신만의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언제나 우리를 응원하고 있으니까.
_ [나의 빈 공간은 세상이 채워줄 것이기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