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도시는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설계된다. 걷기 힘든 보도, 앉을 곳 없는 거리, 단절된 커뮤니티 등에서 노인을 위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면, 도시도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변할 수 있다. 벤치를 설치하고, 보행로를 정비하며, 세대 간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나이가 들어도 살아가기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희망에서 출발했다. 나 자신,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이웃들이 나이 들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많은 사람에게 집은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지만, 노인에게 집은 신체적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위험한 공간이 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노인 사고의 약 63%가 낙상이며, 대부분이 집에서 발생한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고령자의 낙상 사고 중 약 74%가 집 안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집이 노인에게는 큰 위험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균형 감각이 저하되며 근력과 골밀도가 감소하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미끄러운 바닥은 대표적인 위험 요소이다. 특히 욕실과 주방처럼 물을 사용하는 곳은 바닥에서 미끄러지기 쉬워 낙상의 위험이 크다. 카펫이나 매트가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미끄러운 표면은 골절, 두개골 손상과 같은 치명적인 부상을 초래할 수 있다.
- 〈집, 가장 안전하다는 착각〉 중에서
나이 들면 어디에서 살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실버타운일 것이다. 이곳은 주거, 의료, 여가 공간이 결합한 노인 전용 공간으로, 언뜻 보면 노인들에게 ‘낙원’처럼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직접 실버타운을 둘러본 뒤에는 의외로 아쉬운 점들이 눈에 띄었다. 건물 외관은 고급스러웠지만 내부는 지나치게 표준화된 구조였고, 자연스러운 생활 공간이라기보다는 마치 관리 중심의 ‘시설’ 같은 느낌을 주었다. 노인들끼리만 모여 있는 환경은 안정감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외부와 교류가 차단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실버타운은 일반적으로 세 끼 식사를 제공하고 편리한 생활환경을 지원하지만, 과연 독립적으로 생활이 가능한 노인들에게도 이곳이 적합한 공간일까?
- 〈실버타운에 들어가면 정말 행복할까?〉 중에서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며 실버타운 수요도 증가하고 있지만, 공급에는 한계가 있다. 고령자가 건강할 때 실버타운에 입주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쇠퇴할 수 있다. 결국 요양시설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할 때 내 집을 떠나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모든 사람이 실버타운에 입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입주할 필요도 없다.
어느 지자체의 경우 65세 이상 고령자가 33%를 넘어서고 있다. 이 지역에서 주민 3명 중 1명이 실버타운에 입주하려 한다면 이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도 부족할 뿐더러, 도시를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오히려 실버타운으로 이주하지 않고 익숙한 환경에서 머무르는 것이 개인에게도, 도시에도 더 건강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초고령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은 바로 ‘에이징 인 플레이스’에 있다.
- 〈모두가 실버타운에 입주할 수 없다면〉 중에서
낯선 환경에서 불안을 느끼기 쉬운 고령자에게는 익숙한 감각을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고령자 주택에서는 아늑함을 강조하기 위해 나무와 천 같은 자연 소재를 사용하는데, 이는 거주자가 돌봄을 받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느낌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부드러운 질감의 가구와 목재로 된 출입문은 차가운 금속이나 플라스틱보다 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어, 집에 들어선 듯한 포근함을 제공한다. 이러한 특징은 방문자들에게도 동일한 효과를 준다.
또한, 고령자들의 생체 리듬을 조절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높이는 데에는 자연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햇빛이 잘 드는 공간은 우울감을 완화하고 활력을 더해준다.
- 〈내 집 같은 편안함, 시니어 공간의 비밀〉 중에서
노화로 인해 시력이 저하되면서 색 구분 능력이 약화되어 파란색과 녹색처럼 유사한 색을 구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가구와 공간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대비되는 색상을 활용하여 물체의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명확한 색상 대비는 혼란을 줄이고 사고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고대비 색상은 물체와 주변 환경을 구분하는 데 유용하며, 노인이 가구의 위치를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벽과 가구, 바닥과 가구의 색상을 뚜렷하게 대비되게 설정하면 가구의 위치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어 혼란을 줄이고 안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벽은 밝은 색으로, 가구는 어두운 색으로 배치하면 가구의 위치를 쉽게 인식할 수 있다. 반대로 벽과 가구의 색이 유사하면 경계가 모호해져 부딪힐 위험이 커진다. 바닥과 가구의 색 대비가 명확하면 의자나 테이블의 위치를 쉽게 식별할 수 있어 넘어짐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계단이나 문턱처럼 높낮이 차이가 있는 곳에 고대비 색상을 적용하면 작은 높이 차이도 쉽게 인식할 수 있어 낙상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 〈이제 시니어 가구도 디자인할 때〉 중에서
이 시설은 일상과 돌봄을 구별하지 않고, 서로 다른 세대가 교류하며 돌봄과 치유를 실현하는 공간이다. 노인, 장애인, 청년, 어린이 등 모든 세대의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는 사회적 고립과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커뮤니티 공간은 세대와 장애의 경계를 넘어 모두 함께 어울리는 새로운 복지의 장이자 치유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다양한 형태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 〈사람이 제3의 치료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