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와 ‘신체성’, ‘문자’와 ‘번역’,
‘얼굴’과 ‘변신’에 관한 예리하고 매혹적인 시학 강연
“낯선 혀로 말하는 사람은 조류학자이자 한 마리의 새입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명되는 작가,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이중 언어 작가 다와다 요코의 시학 강연집이 출간됐다. 『변신』은 다와다 요코가 튀빙겐대학교에서 진행했던 시학 강연 세 편을 엮어낸 작품이다. 강연이라는 형식이 무색할 만큼 다채로운 은유와 매혹적인 수사는, 그가 여러 작품에서 구축해온 포스트휴머니즘적인 필치를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카프카, 벤야민, 오비디우스, 첼란, 클라이스트, 바그너와 같은 유수의 문인과 음악가들이 만든 작품을 들여다보며, ‘목소리’와 ‘신체성’, ‘문자’와 ‘번역’, ‘얼굴’과 ‘변신’이라는 키워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다와다 요코의 시학이 이 책에 간명하게 담겨 있다. 은유와 실재의 경계를 유유히 넘나들며, 독자의 시선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강연집 『변신』은 다와다 요코의 난해한 작품들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길로 안내할 탁월한 이정표다.
“낯선 나라에서 말하면
목소리가 이상하게 고립되고 벌거벗은 채로 공중에 떠다니게 됩니다.
마치 단어가 아니라 새를 내뱉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새의 언어, 정동과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는 신체성에 대한 은유
일본에서 태어난 다와다 요코는 독일에서 활동하며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은 이중 언어 작가다. 동시에 모국어인 일본어와 외국어인 독일어, 이 두 언어의 간극을 고스란히 체감하며 살아온 이방인이기도 하다. 그런 다와다 요코가 타국에서 지내며 분명하게 포착한 것은, 화자가 낯선 언어로 말할 때 느끼는 이질성이다. 낯선 나라에서 외국어로 말하는 화자는 모국어 화자가 구사하는 ‘모어의 악센트’를 모방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와다 요코는 이 이질성을 ‘목소리의 신체성(음색)’에 비유하며 이질성의 기제를 문학적인 시선으로 풀어낸다.
의미 전달을 위한 수단으로만 소통을 활용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목소리의 신체성을 사유하는 방식으로 발화의 낯섦을 인식할 수 있다. 이는 언어에 내재한 새로운 기능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중요한 계기다. 목소리의 신체성은, 의사소통에 집중한 언어에서 은폐되고 억압됐던 화자의 욕망 또는 정동을 드러내며, 더 깊은 소통의 차원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다와다 요코가 첫 번째 강연에서 첼란, 호프만, 바그너, 모차르트와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 속 ‘새소리’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중심주의에 응수하는 문학적 시선,
포스트휴머니즘을 선전하는 해체의 시학
“물고기의 얼굴은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서 끝나는 걸까요?” 다와다 요코는 물고기의 얼굴을 독자들에게 연상시키며 마지막 강연을 시작한다. 독일어 사전에서는 ‘얼굴’을 “눈, 코, 귀가 달려 있으며, 턱에서 이마의 끝에 이르는 사람의 머리의 앞면”이라고 정의한다.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물고기에게는 앞면이 없으므로 얼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물고기를 볼 때 가장 먼저 물고기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물고기에게 얼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인간인 우리에게 요원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처럼 얼굴이라는 단어에 천착한 다와다 요코는 이 책에서 인간 중심적으로 구축된 정의들을 향해 의구심을 강력히 드러낸다.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기존의 정의들을 해체한 뒤 새롭게 구축하는 작업을 펼친다.
다와다 요코는 카프카의 『변신』,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와 같은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변신 모티프 속에서, 변신에 깃든 다양한 정체성을 발견한다. 다와다 요코는 인간이 동물로 변모하는 ‘동물-되기’의 변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러한 그의 태도는 단일한 정체성을 파괴하고 다원적인 정체성을 긍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 중심적인 얼굴 정의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얼굴을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보증으로 간주하는 정체성 담론에 균열을 일으키는 이 책은, 가히 포스트휴머니즘을 문학적으로 선전하는 해체의 시학이라 불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