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군령의 출발점이다. 군인의 최고상관은 대통령이다.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군 통수권에 대한 위임을 받아서 군대를 지휘한다. 군인이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에게 충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군대는 개인의 사조직이 아니다. 국가의 군사력 사용은 엄격한 법적·절차적 기준을 따른다. 만약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이 마음대로 명령해서 군사력을 사용한다면 군대는 사병조직이나 마찬가지다. 밀리 합참의장이 군대를 사병조직처럼 부리려는 트럼프의 명령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정당한 항명이었다. 이것이 미군에서는 가능했고, 한국군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은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 〈책을 펴내며〉 중에서
조선일보 정치부장 출신으로 그는 윤 대통령을 둘러싼 인물들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또 독불장군식인 윤 대통령의 캐릭터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김민배 대표는 자신의 오랜 정치기자 경험으로 볼 때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윤 정권은 출범 2년 이내에 정권이 흔들리는 큰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1부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브로맨스’〉 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군보다 ‘미군 퍼스트’였다. 한국군 통수권자로서의 첫걸음부터 그랬다. 그는 2022년 3월 대통령에 당선된 후 군부대로서는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를 맨 처음 찾았다. (중략)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한국군 부대보다 미군 부대를 먼저 방문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중략) 한국군 부대를 패싱한 윤 당선인의 캠프 험프리스 방문은 외교·안보 보좌진의 수준을 가늠케 한 사건이었다.― 〈1부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브로맨스’〉 중에서
‘김용현은 윤석열 정권에서도 대표적인 충성파 인사다. 그는 2022년 3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부팀장을 맡아 대통령실 이전의 실무를 맡았다. 이후 초대 경호처장을 거쳐 국방장관으로 발탁됐다. 그는 결론이 난 문제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마치 특전사 핵심가치 구호처럼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이다. 그는 ‘안 되는’ 이유를 버리고 결과를 내는 ‘방법’에만 몰두한 군인이었다. 대신 부작용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스타일이었다. 청와대의 이전과 12·3 비상계엄 강행의 공통점은 그 부작용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 〈1부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브로맨스’〉 중에서
윤석열 정권은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웠다. 국방부는 신원식 장관이 취임하면서 적 도발에 대한 군사작전의 원칙으로 ‘즉·강·끝’을 내세웠다. 북이 도발하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하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즉강끝’이 애초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도 없는 한국군에게는 ‘이불 쓰고 만세 부르기’식 구호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 대신 자칫 과잉 대응을 유발해 남북 간 불필요한 군사적 마찰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컸다. 남북 간 사소한 군사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도 있었다. ― 〈2부 윤석열 군부의 ‘쌍두마차’ 신원식과 김용현〉 중에서
김용현의 군맥은 첫째, 소수의 충암고 출신에다 둘째, 근무 인연이 있거나 셋째, 김용현의 인사 혜택을 받은 영관·장성급 장교들을 합친 집단으로 보는 게 맞다. 그래서 나온 말이 ‘용현파’다. 특히 수방사 제55경비대대(현 55경비단) 출신들과의 관계가 끈끈하다. (중략) 민간인 신분으로 12·3 불법계엄 사태를 사전 기획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육사 41기) 전 정보사령관도 김용현이 대통령 집무실을 경호하는 제55경비대대 소령일 때 대위로 함께 근무했다. 12·3 비상계엄에 병력을 출동시킨 곽종근(육사 47기) 특전사령관과 이진우(육사 48기) 수방사령관, 문상호(육사 50기) 정보사령관 등도 ‘용현파’로 분류된다. 결과적으로 ‘용현파’는 윤석열 정권에 급부상한 ‘미니 하나회’였다. 비상계엄 실패 이후 이들 대다수는 조사 및 수사 대상이 됐다.― 〈2부 윤석열 군부의 ‘쌍두마차’ 신원식과 김용현〉 중에서
결과적으로 문 정권이 ‘해편(解編, 해체 후 재편)’이라는 어려운 용어까지 사용해가면서 창설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정권이 바뀌자 사라졌다. 대신 국군기무사령부는 국군방첩사령부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조직을 더 탄탄하게 키우며 오뚝이처럼 군 내 권력기관으로 살아남아 12·3 불법계엄 사태의 주역으로 나섰다. 정권이 바뀌어도 방첩사를 대통령의 군 통치에 유용한 중요 기관으로 인식한 결과다. ― 〈3부 윤석열 군부 ‘몰락의 전조’〉 중에서
‘회색 코뿔소’라는 말이 있다. 위험의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간과해 결국 큰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2024년 12월 3일 발생한 윤석열 정권의 비상계엄을 놓고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몇 달 전부터 ‘회색 코뿔소’를 경고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 힘은 계엄령을 터무니없는 음모론으로 치부하다 허를 찔렸다. 여당에게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이례적인 사건을 뜻하는 ‘블랙 스완’이었다. ― 〈3부 윤석열 군부 ‘몰락의 전조’〉 중에서
곽 사령관은 ‘상부의 지시다. 문을 부숴서라도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라고 명령하는 대신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고 전달하는 것으로 통화를 끝냈다. 이런 경우 군 간부들은 흔히 ‘설사했다’라는 은어적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지휘관이 사후 있을지 모를 책임 논쟁을 피하기 위해 확실한 지침을 주는 대신 ‘면피성’으로 상부 명령의 전달 통로 역할만 하는 경우다. 당시 곽 사령관은 ‘설사’를 한 것이다. ― 〈4부 12·3 불법계엄 사태로 무너진 윤석열 군부〉 중에서
언제부터인가 한국군 장성들이 쿠데타와 관련해서 하는 농담이 있다. 한국군이 쿠데타를 할 수 없는 ‘3대 이유’다. 첫째가 휴대폰 때문에 보안을 유지할 수 없다. 둘째는 수도권의 교통체증 때문에 병력 이동이 어렵다. 셋째는 교통체증을 피하려면 공휴일에 거사를 해야 하는데, 그날은 장군들의 군 골프장 라운딩이 잡혀 있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조크의 핵심은 병력 이동의 어려움이다. ― 〈5부 12·3 불법계엄 사태가 남긴 것〉 중에서
미군에 견주면 장군 임기가 ‘파리 목숨’보다 못한 한국군이다.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권에서 잘나갔던 장군들은 진급에서 대부분 아웃된다. 대장들은 전멸이다. 그 과정에서 군 인사는 정권의 코드에 맞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인사가 된다. ‘줄서기’를 잘해 진급하는 ‘운장’이 최고다. 12·3 불법계엄이 군 인사에서 수뇌부의 임기를 보장하고 정치권의 개입을 막는 계기가 돼야 하는 이유다. ― 〈5부 12·3 불법계엄 사태가 남긴 것〉 중에서
그다음 날 김용현에게 갑작스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청와대가 용산으로 가면 국방부를 어디로 옮겨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얘기를 꺼냈다. (중략) 얘기를 들어보니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옮기는 데는 검토할 사항이 많은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준비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대통령실 이전의 경우 100개 중 하나라도 놓치면 국가안보 측면에서도 타격이 크고, 당선인이 임기 첫날부터 시간표에 스스로를 얽매이게 하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했던 얘기다. 그는 “알겠다”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임을 직감했다. ― 〈부록 대통령실 용산 이전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