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의 이면에 감춰진 가장 사적인 진실이 펼쳐진다
한 여성의 내밀한 사유를 솔직하게 드러낸 금지된 일기장
『금지된 일기장』을 처음 읽으면 이 소설이 1952년에 처음으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가부장제 아래 억압받던 한 주부가 자기 자신의 일상을 일기로 기록하기 시작하며 욕망의 주체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이 이야기는 2025년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큰 공감을 준다.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금지된 일기장』은 극적인 사건 없이도 책을 놓지 않게 하는 흡입력이 있다.
주인공 발레리아 코사티는 완전무결한 가부장제의 희생자는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한 자투리 시간조차 마음 편히 갖지 못하는 처지인데도 정작 가족들의 도움은 불편하게 여긴다. 권위적으로 여자 친구를 대하는 아들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대하지만,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딸의 태도는 못마땅하기만 하다. 이러한 모습은 일견 이중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장치는 한 개인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금지된 일기장』은 무려 70여 년 전에 쓰인 작품임에도 순종적인 여성 혹은 진취적인 여성이라는 평면적인 구도가 아니라 입체적으로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다. 페미니즘의 고전 작품이라는 평가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지된 일기장』은 일기와 소설의 형식을 정교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일기는 철저히 서술자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인물들의 모든 대사와 행동은 주인공 발레리아의 시선을 통해야만 독자에게 전해진다. 따라서 독자는 그의 일기장을 읽으며, 발레리아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로써 발레리아와 독자는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며, 독자는 그가 고백하는 가장 내밀한 속마음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금지된 일기장』은 일기 문학이면서, 동시에 고백 문학이기도 하다.
반反파시스트 혁명가였던 알바 데 세스페데스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성을 깨부수다
알바 데 세스페데스는 1935년과 1943년에 반파시스트 행위로 두 번 투옥되었다. 그후 데뷔작 『아무도 돌아가지 않는다』와 『탈출』이 금서로 지정되었고, 오랜 시간 잊혀졌다. 엘레나 페란테가 에세이 『프란투말리아』에서 세스페데스의 작품을 두고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작품”이라고 언급한 이후, 유럽과 영미권에서부터 ‘세스페데스 다시 읽기’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은 70여 년 전에 쓰여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됐으며, 여성들에 대한 억압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며 해방을 역설한다. 혁명가였던 세스페데스는 글을 통해서도 여성 혁명을 말한 것이다.
『금지된 일기장』의 영어 번역을 맡은 앤 골드스타인은 “이 책을 처음 읽고 매우 현대적이어서 놀랐다”면서, “파시스트들이 세스페데스의 책을 억압한 이유는, 그가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여성관이 파시스트들이 원하는 여성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 독자들은 이 책에 열광했다. 세스페데스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이탈리아 문학계는 ‘여성을 위한 여성의 글쓰기’에 불과하다며 그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이러한 1950년대 이탈리아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 사회와도 많은 점에서 닮아 있다. 『금지된 일기장』은 내용뿐만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현상까지도 2025년 현재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엘레나 페란테를 비롯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아니 에르노,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줌파 라히리 같은 유수의 작가들이 『금지된 일기장』을 극찬하는 이유는 사회가 제시하는 여성상에 부합하지 못하는 여성의 이야기는 여전히 시의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성에게는 금지된 것들이 많다. 법적 평등은 이루어졌으나, 사회적 평등은 아직 요원하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마음속에는 모두 ‘금지된 일기장’이 있다. 『금지된 일기장』을 통해 독자 자신만의 금지된 일기장을 찾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