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에밀리 바스트는 13년을 함께 살았던 턱시도 무늬 고양이 '필루'가 태어난 날부터 사별까지의 시간을 압축해 《샤무르》에 담아냈다. 《샤무르》는 반려묘 필루(애칭 샤무르)가 처음 태어난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첫 장을 시작한다. 한 손에 쏙 들어올 만큼 작던 고양이가 무럭무럭 자라 말썽을 부리고, 때론 엉뚱한 행동으로 웃게 만드는 소소한 일상이 펼쳐진다. 나무라면 뭐든 발톱으로 긁어대서 상처가 난 원목가구, 참새를 사냥해 오는 바람에 혼냈던 일, 꾸중하려 하면 장난감 쥐돌이를 물고 오는 귀여움에 쓰다듬어줄 수밖에 없던 일, 따뜻한 라디에이터 위에 올라가 있던 모습… 고양이가 머물던 모든 곳은 추억의 장소가 된다.
사랑했던 기억으로 익숙한 일상의 공간 속, 고양이의 빈자리
작가는 샤무르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사랑하는 고양이의 엉뚱하고 귀여운 행동을 회고하다, 주인 잃은 고양이 침대를 의미심장하게 보여줄 뿐이다. 작가는 사별 후 격정적인 슬픔에 잠기기보다, 곁에 없는 반려묘를 담담히 그리워하는 애도의 방식을 택한다. 모든 것이 그대로지만 고양이만 사라진 그곳에서 반려인은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고양이의 기억을 일깨우며, 그 기억의 힘으로 살아가는 일을 택한 것이다.
그림책은 샤무르의 이름을 새긴 낮은 비석을 둘러싼 팬지 그림으로 끝이 난다. 팬지의 꽃말은 "나를 생각해 주세요". 사랑하는 고양이는 떠났지만 언제나 그리워할 것이라는 마음을 꽃말의 상징성에 빗대어 그렸다. 다시 만날 수 없어도 사랑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기억 속에 고양이는 영원히 살아 숨 쉰다. 작가는 멈추지 않을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을 책 맨 뒤의 면지 그림에 담았다. 영화가 끝날 무렵 살며시 등장하는 쿠키 영상처럼, 작가의 마음을 가득 채운 샤무르의 모습을 면지에서 감동적으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중세 성화를 연상케 하는 보너스 그림에는, 사별로 인해 이 사랑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담하게 스며 있다.
담백한 그림이 아름다운 펫로스 그림책
작가는 고양이가 있는 풍경을 평면적인 형상으로 단순화함으로써 보다 근원적인 아름다움에 주목하게 만든다. 몸을 쭉 펴거나 기지개를 켜고, 그루밍하거나 고대 동상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고양이의 모든 순간이 한 장면, 한 장면 아름다워 미술작품처럼 펼쳐두고 싶어지는 책이다. 원서 제목인 '샤무르(chamour)'는 프랑스어로 '고양이(chat, 샤)'와 '사랑(amour, 아무르)'의 복합어로, 필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달간 작가가 가장 즐겨 불렀던 애칭이다. 굳이 우리말로 옮긴다면 '사랑둥이 고양이' 정도가 되겠으나, 원문의 어감을 살리기 위해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