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멈추었지만
기차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별빛이 하나둘 사그라들고 숲 건너 절 마당에 첫새벽이 찾아왔어요. 다보탑에 앉아 있던 돌사자와 석가탑 바닥에 앉아 있던 돌방석과 극락전 처마 밑에 숨어 있던 황금돼지와 마당 귀퉁이에 달려 있던 구름종은 까치걸음으로 대문을 나섰습니다. 내일이면 오지 않을 마지막 기차를 타러 가는 길이었어요. 연꽃나라 역 마당에서는 백 살 된 참나무가 기차표를 나누어 주었어요. “내일부터는 기차를 못 보게 되어 서운하겠구나.” 돌사자가 참나무 가지를 매만지며 위로했지요.
멀리서 기차가 달려오고 돌사자와 돌방석과 황금돼지와 구름종은 사람들과 함께 기차에 올랐습니다. 기차는 늘 그래왔듯 기운차게 산길을 달렸습니다. 오랜 세월을 달려온 기차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어요. 기차 안에서 아이를 낳은 엄마 이야기, 기찻길에 쓰러진 사람을 구해 준 사람 이야기….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담아 기차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해가 저물고 마침내 기차가 운행을 멈추었어요. 하늘에서 새하얀 눈송이가 기차 위에, 기찻길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았지요.
기차는 멈추었지만 기차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기나긴 달리기를 그만두고 오랜만에 달콤한 잠에 빠졌을 수도 있고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을 수도 있지요. ‘마지막’이라는 말은 꼭 끝을 의미하진 않아요. 아쉬운 헤어짐 뒤에 설렘 가득한 만남이 찾아오기도 해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해 오던 일을 갑작스럽게 마무리해야 할 때도 있고, 끝난 줄 알았던 일이 다시 시작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 속에서 내일을 향한 기대가 싹틉니다. 《신라로 가는 기차》는 작별의 아쉬움을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희망을 보여 주는 그림책입니다.
정임조 작가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기차의 마지막 하루를 빚었습니다. 《나의 여름날》, 《할머니 무릎》 등의 작품에서 다정하고 감성적인 그림을 보여 준 박성은 작가는 이번 그림책에서도 따뜻한 그림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섭니다.
불국사 역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신라로 가는 마지막 기차》는 더없이 애틋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불국사 역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불국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림책이지요. 돌사자, 꽃돌방석, 운종, 황금돼지를 만나러 불국사로 떠나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