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책을 펼쳐든 독자들의 손을 붙잡고 그런 가상 시나리오가 정말 설득력 있는지, 걱정할 만큼 위협적인지 친근한 말로 이해를 돕는다. 십 대 딸을 둔 엄마처럼 이탈리아 사람답게 활기 넘치는, 쉬운 언어로 이야기를 술술 풀어가는 솜씨가 놀랍다. 그는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못 박는다. 책을 덮은 뒤 환청처럼 남는 그의 외침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다. 리치아 트로이시는 말 그대로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 감수자의 글 중에서(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가 지구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
재난과 종말은 늘 우리를 매료시켜왔다. 성경 속 인류의 종말과 천년왕국, 밀레니엄 버그,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 제3차 세계대전과 핵폭탄 등 끊이지 않는다. 가장 최근인 2012년에 나온 종말론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고대 마야의 예언을 근거로 나왔다.
뉴스에서는 소행성이 접근해 지구를 파괴한다거나,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개발하는 인공 블랙홀이 지구를 삼켜버리게 될 것이다와 같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기사가 종종 나온다. 그러나 이런 기사들은 정확한 근거가 없거나 과장돼 있다. 물론 우주에는 우리를 멸망시킬 방법이 수없이 많다. 우리가 무언가를 두려워한다면 먼저 원인을 찾은 다음 그에 맞는 해결 방법을 내놓아야 한다. 흥밋거리로만 소비되는 종말론, 근거 없는 확신, 무책임한 유언비어 등은 사람들의 불안만 더할 뿐이다.
《불안한 사람들을 위한 천체물리학》은 우주 재난 시나리오를 소개하면서 그 우주 재난의 과학적 원리와 발생 가능성, 그리고 해결 방법까지 제시한다. 이 책의 감수에는 한국천문연구원 소속 연구원들이 참여했다. 문홍규 박사가 전체 감수를 맡았으며, 다섯 명의 연구원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해당하는 장을 맡아 2차 감수를 진행했다. 적확하지 못한 표현과 미세한 정보 오류 등을 수정해 과학적 내용의 정확도를 높였다.
엄밀한 과학적 원리와 재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우주 재난 시나리오
리치아 트로이시는 이탈리아의 천체물리학자이자 유명 판타지 소설 작가다. 《불안한 사람들을 위한 천체물리학》에서 천체물리학자로서 가진 과학적 지식에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이야기 솜씨를 결합해, 우주 재난에 관해 재미있으면서도 상세하게 풀어낸다.
이 책에는 우주 재난에 관한 13가지 시나리오가 소개된다. 어느 날 6,600만 년 전 백악기 공룡을 멸종시킨 것 같은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일지도 모른다. 지구의 자전축을 움직이게 하고, 조류를 일으키는 달이 어떤 원인으로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 달이 사라지면 달이 지구 자전축에 미치는 안정화 작용이 일어나지 않아 지구 자전축 기울기에 큰 변화가 생긴다. 그 결과 지구에는 역사상 최악의 기후변화가 나타나 우리가 아는 생명이 살아남기 어려운 조건이 된다. 또 태양에서 방대한 에너지가 급작스럽게 방출되는 태양폭풍이 몰아친다면 어떨까? 평소보다 더 많은 방사선에 노출되고, 통신 장애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밖에 블랙홀이 지구를 집어삼킨다거나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침공할 가능성에 관한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꽤 많이 들어왔던 것들이다.
일반인들은 그 존재를 잘 모르거나 추측으로 위기를 조장한 우주 재난 시나리오들도 있다. 양전하를 띤 전자와 음전하를 띤 양전자를 반입자라 하고, 이 반입자가 반물질을 구성한다. 만약 반물질 별이 존재하며, 지구 근처를 지나가거나 태양과 충돌하면 어떻게 될까? 우주는 대부분 텅 비어 있고, 아직 먼 거리에 있는 두 천체가 충돌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지만, 어쨌거나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재난보다 훨씬 큰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물질‒반물질 소멸로 방출되는 에너지는 엄청나다. 태양 질량 전체가 한순간에 소멸돼 감마선 소나기가 되어 태양계를 통째로 휩쓸어버릴 수도 있다.
2008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 대형강입자가속기가 건설되었다. 언론과 일부 물리학자들은 입자가속기를 작동시켜 실험을 시작하면 지구를 파괴할 수 있으며, 심지어 우주 전체가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입자가속기가 마이크로 블랙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블랙홀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아무리 낮더라도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장비의 효율로는 어림도 없다. 즉 마이크로 블랙홀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능력 밖에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재난은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낮고,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것도 있다. 설령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수천만 년 혹은 수억 년 뒤의 일이다. 그러니 우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재난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지구가 멸망할까 봐 불안한 사람들에게
《불안한 사람들을 위한 천체물리학》은 독자들에게 겁을 주려고 쓴 게 아니다. 독자들이 안전한 상황에서 재난의 미래를 상상하도록 돕고, 관심을 가지도록 재미를 불어넣으려는 것이다. 혹여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재난은 지금도 천문학자들이 연구하면서 해결책을 찾고 있다.
1장에는 소행성과 지구가 충돌하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2021년 NASA에서 소행성의 궤도를 수정하는 쌍소행성 궤도변경시험(Double Asteroid Redirection Test, DART)을 수행했다. 같은 해, 다트 탐사선이 소행성 65803 디디모스와 그 주위를 공전하는 위성 디모포스로 구성된 쌍소행성계 가운데 디모포스와 충돌해 디모포스의 공전궤도를 바꾸었다. 인공적으로 소행성과 충돌을 일으켜 소행성의 운동 방향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임무였다.
4장에 나오는 태양폭풍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지구의 태양 활동을 감시하는 일이 그 첫 단계다. 아주 심각한 재난은 태양 활동이 정점에 이를 때 일어난다. 태양폭풍이 발생했을 때 과학자들이 미리 알려주면 인공위성의 전원과 전력망을 잠시 끄기만 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한국천문연구원에서도 지구로 다가오는 자연 우주물체 감시, 우주물체의 충돌과 추락에 대응하는 우주위험감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코앞에 닥친 제일 위험한 재난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불안한 사람들을 위한 천체물리학》 마지막 장의 제목은 ‘적은 우리 자신이다’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재난은 바로 코앞에 닥쳤으며, 원인 제공자는 인간이다. 그 재난은 바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다.
우리는 흔히 기후변화가 피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지겹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희망 자체를 지우는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세스를 역전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완화하거나 늦출 수 있다. 우리는 생명을 구하는 동시에 최악의 결과만은 피해야 한다. 걱정하거나 냉소할 시간에 행동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일이 시작이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경제 강국들이 기후변화로 피해를 당한 극빈자들에게 보상하도록 했다. 작은 움직임인 데다 협의 내용도 모호하지만, 어쨌든 출발점에 선 셈이다. 브라질에서는 룰라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아마존 삼림 보호에 대한 희망이 생겼으며. 아이슬란드에서는 매년 최대 4,000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이산화탄소 포집 시설이 가동된다. 작은 규모로는 친환경 이동 수단(지속 가능한 교통)과 나무 심기를 장려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지구는 인류의 안전을 지켜주는 유일한 피난처다. 그러니 먼 미래에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그 많은 위협 속에서 지구를 우리 손으로 망가뜨리면 안 된다. 이것이 《불안한 사람들을 위한 천체물리학》이 전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