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포엣 시리즈 44권, 강혜빈 시인 『콜드 리딩』
“분명한 것은 바쁘게 살아가는 일과 느리게 죽어가는 일, 열렬히 사랑하는 일과 맹렬히 미움받는 일을 그가 동시에 감내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당할 뿐 아니라 잔망스럽게 즐긴다.”
_성현아 문학평론가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강혜빈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콜드 리딩』이 케이 포엣 시리즈 44권으로 출간되었다. 첫 시집 『밤의 팔레트』와 두 번째 시집 『미래는 허밍을 한다』에서 다채로운 빛깔과 다종다양한 목소리를 선보이며 새로운 시 세계를 활짝 열어보인 강혜빈 시인은 이번에도 강혜빈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폭풍, 핑퐁, 팡팡!”
한없이 폭발하는 에너지에서 출발하여
이번 시집 『콜드 리딩』은 모두 3부로, ‘1부 아포페니아’ ‘2부 보보 인형 실험’ ‘3부 샐리의 법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의 제목은 시집의 각 작품으로 안내하는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아포페니아’는 관련이 없는 현상들 사이에서 어떤 연관성과 의미를 찾으려는 의식 작용을 뜻하는데 이는 시인이 시 속에서 시적 리듬을 만들어내는 장치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단순히 리듬과 분위기만을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또다른 의미를 포착하고 붙들어매려는 것 같기도 하다.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나란히 두기로 결정했을 때, 그 문장들은 어떤 자장면을 만들어내게 될까. 낯설지만, 그래서 더 채도가 또렷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입술에 달짝지근하게 들러붙는 낱말들을 흥겨이 읊조리다 보면 완전히 새로운 언어의 세계로 진입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보보 인형 실험’은 일종의 모방학습 효과를 보여주는 실험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본 아동들이 그를 따라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가설을 따르고 있다. 『콜드 리딩』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과 인물들은 때로 위악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 시들 자체가 그 공격 성향이 어떻게 발생 가능했는지를 실험해보는 것 같다.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세계에서 어떻게 아름다움과 자신다움을 발견하고 지켜낼 수 있는지, 그 미스터리를 쫓아가보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세계와 잘 맞지 않는 인물들은 때로 외계에서 온 것 같기도, 신인류 같기도 하다. 그들은 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하지만 “숙이는 도무지/숙이다운 게 뭔지 모르겠”(「숙이는 주체이고 싶다」)다고 말하는 게 더 익숙하고, “고온에서 삶으면/여러 개로 쪼개”지는 “솜처럼 푹신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오갈 데 없는 사람”(「안나는 여름 파카가 마음에 든다」) 같다. 그러나 시 속 인물들은 그런 미결정의 상태나 비주류의 낙인 따위에 잠식당하지 않고 “주체할 수 없는 모든 살아 있음을”(「너희의 네모」) 발랄하게 분출해낸다. 가만히 감춰둘 수 없는, 절로 터져나오는 그 모든 에너지들이 강혜빈의 시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샐리의 법칙’은 운이 좋아서 하려는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일이 잘못 되어가는 상황을 일컫는 ‘머피의 법칙’과 반대되는 현상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모두 그런 낙관에 기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강혜빈의 시가 어떤 사건과 시련이 닥쳐와도 그에 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막막할 때마다/부르면서 걸었다”(「힐링」)는 문장처럼 그의 시들은 살고자 할 때 부르는 노래이자 주문이 된다.
“신 내렸네
영매 얼굴이네”
새로운 세계로 접신해 들어가며 만들어내는 이야기
『콜드 리딩』에서 시인은 때로 단어들을 신명나게 가지고 놀며 그 향연의 세계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얼굴과 목소리를 바꿔가며, 그들 모두를 초대하고 환대하며 펼치는 한바탕의 소동 혹은 황홀경이 그가 써내려가는 시적 세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낯설지만 매혹적이고 기꺼이 홀리고 싶어지는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활력은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함께여서 잠시 나아진다는 것”을 믿게 하고, 그로 인해 “가능한 풍경”(「하늘과 신비」)을 즐거이 상상해보게 한다.
『콜드 리딩』의 수록작 중 일부는 최리외 번역가의 영역을 통해 영문판 『Cold Reading』으로도 출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