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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이안류


  • ISBN-13
    978-89-8218-355-3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도서출판 강 / 도서출판 강
  • 정가
    14,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12-16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임은영
  • 번역
    -
  • 메인주제어
    근현대소설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근현대소설 #단편소설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35 * 200 mm, 196 Page

책소개

임은영의 문장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이안류는 기본적으로 부끄러움을 그 공통된 기저로 삼고 있지만, 그 한 겹 밑바닥에는 조금만 방심해도 기어코 일어나고야 마는 필연적 불행에의 두려움이 이안류 내부의 이안류가 되어 흐른다. 전자가 맹목적 삶의 질서를 멈추어 세우는 부끄러움의 감각에 초점을 둔다면, 후자는 어떻게 해도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절대적 삶의 실재와 그로 인해 촉발되는 원초적 불안감에 주목한다. 이안류의 두 흐름은 얼마쯤 상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긴밀히 조응하며 하나로 흐르는데, ‘부끄러움’은 불행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타협적 행위들로 인해 촉발되며, ‘부끄러움’에 대한 응시는 궁극적으로 이 절대적 실재로서의 삶에 대한 성찰과 응시를 요청한다.

일례로 「오해의 기하학」을 이끌어가는 핵심 서사는 부끄러움의 발견이지만, 이는 “누군가 뒤따라오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과 “화단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그림자, “그치지 않는 고함”, 망가진 “차량 차단기” 등 일련의 적대적 행위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불안의 기미들로 점철되어 있다. 외부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불안감은 화자를 더 방어적이고 폐쇄적이게 만든다. 이 폐쇄적 서사는 세입자 ‘제이’에 의해 가까스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제이는 고등학교 시절 화자가 학교폭력으로 고발한 적이 있었던 불어 교사 P의 사촌 동생으로, 그의 증언에 의해 제이, ‘사내’, ‘나’, ‘P’ 모두 의도치 않은 오해로 얽힌 가해자, 혹은 피해자였음이 드러나게 된다. 소설은 지극히 사소한 사건과 행위들이 어떻게 “의도와 관계없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오해의 고리에 엮”여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찬찬히 들려준다.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 삶의 실재가 ‘오해의 기하학’이 만들어낸 ‘불안의 이안류’로 형상화되고 있다면, 자신 역시 그 가해자였음을 깨닫게 되는 일련의 사건과 계기는 ‘부끄러움의 이안류’로 형상되어 화자를 그 중심으로 강력히 끌어당긴다.

「야행」의 서사 역시 불안의 이안류와 부끄러움의 이안류가 만들어내는 힘의 역학 사이에서 흘러간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으며 그로 인해 부모의 손길이 필요했던 순간, 자신은 늘 혼자였다는 자각은 화자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늘 긴장과 불안,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한다. 어린 시절 돈독했던 친구 용하와 선배에 대한 태도도 이와 같은 감정적 허기로 인해 점점 방어적으로 변해가게 된다. 그렇게 불행에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경력을 꾸리고 있을 즈음, 이제는 심해의 어둠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간신히 믿기 시작할 무렵, 돌연 용하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다. 무엇에든 진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용하는, 대학 시절부터 아버지 병원비며 여동생 용돈에 생활비까지 온갖 책임감에 짓눌려 살면서도, 자신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세상을 늘 긍정하던 아이였다. 아르바이트를 두 탕이나 뛰면서도 시간을 쪼개 노인들을 위한 야학일을 했고, 직장 후배가 어떤 불량배 무리로부터 얻어맞고 있자 이를 구해주려다 그만 사고로 이어져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용하가 불쑥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말한 것이 화자가 그에 대한 감정을 서둘러 정리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화자가 용하에게 느끼는 서먹한 감정의 근원은 그가 오래도록 부정해온 과거의 자신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존을 위해 꿈 같은 건 일찍 포기해버린 ‘나’와 달리, 용하는 꿈을 좇아 경영학과에서 문예창작과로 전과까지 했었고,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면서도 시 쓰는 걸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래전 용하네 집에서 잃어버렸던 머리핀 역시, ‘나’에게는 가족을 버린 아버지를 떠올리게 해 그저 버리고 싶은 물건에 지나지 않았지만, 용하는 그것마저도 소중히 간직하여 ‘나’에게 돌려주려 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팍팍하고 내일은 알 수 없고, 주위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는 화자의 말은, 살아남기 위해 부정해온 그 모든 순수했던 시절을 이제는 도저히 마주할 자신이 없다는, 어딘가 조금 어긋난 고백이자 서글픈 변명처럼 들린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과 불안에의 응시가 함께 강조된 서사들에서는 인물의 적극적인 의지나 저항적인 태도가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반면 두 마음의 이안류 중 어느 한쪽에 좀 더 강조점을 둔 일련의 서사들에서는 인물의 능동적인 목소리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블랙 잭나이프」는 아버지를 끝까지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화자 ‘나’는 태풍으로 모든 것을 잃고 아버지마저도 거동과 인지력에 문제가 생기는데, 오빠는 경제적 지원을 핑계로 아버지 돌봄을 전적으로 ‘나’에게 떠넘겨버린다. 이후 화자의 삶은 점차 질식할 듯 위축되어간다. 이후 화자는 청소 용역 일을 하며, 의미도 희망도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화자는 늘 아버지의 잭나이프를 지니고 다녔는데, 이는 아버지가 유일하게 부탁해 화자가 직접 해외 주문까지 했던 물건으로 비극이 일어나기 이전, 손상되지 않은 삶의 순간들을 상징한다. 잠깐의 부주의로 잭나이프를 잃어버린 화자는 이를 되찾으려 자신이 청소했던 집에 다시 방문하게 되는데, 이 집엔 자신의 힘으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잠자는 공주”와 병든 아내에게 지극히 무심한 남자, 그리고 여자를 오직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간병인이 거주한다. 아무도 주인 여자를 한 명의 사람으로조차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화자는 홀로 외로이 누워 자신의 손길을 기다렸을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런 화자에게 여자는 그때의 아버지와 똑같이 다만 기다리겠다는 말만을 남긴다. 가릴 수도 숨길 수도 없던 부끄러운 마음과 기억들이 생의 이안류가 되어 자신을 깊숙이 끌어당기는 그 순간을,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 포근히 끌어안는 듯했던 그 서글픈 감각을 화자는 어떤 변명도 저항도 없이 묵묵히 받아들인다.

「자정의 질주」는 좀 더 적극적인 응답을 보여준다. 화자는 필리핀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출신 여성이다. 어머니는 화자가 열두 살 때 미안하다는 말만 남긴 채 필리핀 외가로 도망치듯 떠났고, ‘나’는 다문화지원센터에서 일하며 이런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사람들을 돕고자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 역시 분명히 느끼는데, 급기야 수강생들의 취업을 도와주던 연인 ‘장’이 수강생들을 불법적으로 팔아넘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큰 혼란에 휩싸인다. 화자는 한동안 장의 부정을 외면하며, 자신이 해온 모든 일이 여전히 의미가 있기를 바라지만, 더 이상 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함께 바로잡기로 결심한다.

「드림파크」, 「어디」, 「팔월의 이안류」는 반대로 삶의 절대적 실재로서의 불행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불안의 감각에 좀 더 집중한다. 이들 소설의 화자들은 멀리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이안류의 심연에 속절없이 휘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저항하며 자신을 살아 있게 만드는 의미의 세계와 기억의 자리를 기꺼이 긍정하고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례로 「드림파크」의 초점화자 ‘원’은 열두 평짜리 빌라에서 ‘엄마’와 살지만 엄마는 원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으며 ‘원’ 역시 엄마를 ‘그 여자’라고만 부른다. 아빠는 오 년 전 유람선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이후 ‘원’의 시간은 아빠가 남기고 간 고장 난 시계처럼 어디로도 흐르지 못한다. ‘원’은 학교에도 가지 않은 채 집에서 주로 컴퓨터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메타버스 플랫폼 ‘드림 마을’에서 원은 ‘재크’라는 아바타로 가상의 삶을 살며 현실의 결핍을 채운다. 물론 이 아름다운 가상의 삶은 한낱 백일몽에 불과하다. ‘원’은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과의 관계치조차 치트키를 눌러 임의적으로 조절하는데 여기에는 물론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괴롭혀온 동창생 ‘카알’의 등장으로 이 무해한 꿈같은 행복마저도 곧 산산조각 나고 만다.

「어디」의 이야기는 가족-보호장치로부터의 추방이라는 손자 ‘수오’의 서사와 가족-굴레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할머니’의 서사가 중첩되어 진행된다. 수오는 할머니를 집에서 유일하게 관계의 호칭으로 부르지 않고 ‘정원 씨’라고 부르는데, 이 때문인지 할머니도 유독 수오에게만큼은 자기 자식들에게 하지 못하는 얘기까지도 선뜻 들려주곤 한다. 수오의 할머니 ‘정원’은 평생을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왔지만, 칠십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다.

위 두 작품이 불안의 이안류를 아무리 노력해도 쫓아내거나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절대적 실재이자, 화자가 견디고 버텨야 할 시련으로서 그려내고 있는 것과 달리, 「팔월의 이안류」는 이를 주변부 삶에 내몰린 인물들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힘과 권력을 지닌 누구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는 보편적 삶의 실재로 확장시킨다. 화자는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 ‘박’은 불법적인 요양원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인물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권력을 행사한다. 박은 화자의 가게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장소로 활용하는데, 그런 용의주도한 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던 박도 “취하면 바다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그의 습관 때문에 느닷없이 이안류에 휩쓸려 사라져버리게 된다. 화자는 이안류가 모두에게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음을 거의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유혹하듯 일렁이는 그 이안류의 중심을 향해 끝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뿐임도 명확히 자각하고 있다. 이 견고한 시선들 덕분에 「팔월의 이안류」는 의미의 세계나 기억의 흔적에 의지하지 않고도 지금-여기를 견딜 수 있는 서사적 가능성을 찾아낸다. 어떠한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이 이안류의 중심을 응시하며, 이안류와 함께 살아간다. 이안류의 호흡으로 이안류의 삶을 살아간다.

목차

오해의 기하학

블랙 잭나이프

자정의 질주

야행

드림파크

어디

팔월의 이안류

 

해설  이안류의 평등 | 이철주

작가의 말

본문인용

-

서평

임은영 소설은 파동(波動)에 기인한다. 그것은 빛이기도 하고, 소리이기도 하고, 시선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다. 떨림과 스침과 격동과 고요. 작가는 외면하고 싶은 순간들, 돌이키지 못할 행위들, 되풀이되는 악재들에 대한 회오의 파동들을 덧없고도 순연하게 재현한다. 그렇기에 소설 속 인물들은 닿지 못한 진심, 풀지 못한 오해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대로, 희미해지는 대로 둔다. 뭉쳐진 것들, 뒤틀린 것들이 저절로 풀리고, 풀어 헤쳐지는 순간을 시간을 품고 기다린다. 소설이란, 아니 삶이란 시간과의 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듯. 시간을 타 넘으며 파동은 장면이 되고, 비로소 한 편의 서사가 된다. 작가의 성정과 태도가 소설을 감싸며 고유한 힘을 빚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임은영의 소설이 그러하다. 때로 그것은 이야기를 잘 짓는 것보다 우위에 있다.

함정임(소설가·동아대 교수)

저자소개

저자 : 임은영
부산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22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한국소설신인상, 2022년 현진건문학상추천작 수상. 북아트와 쇼트 스토리를 좋아하고 현재 독립서점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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