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자들에게 문제는 국가의 신화를 해체하고 근본적으로 그 정체를 폭로하면서 국가가 실체적・통일적 개체로서 ‘언제나 이미’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요원들과 그 밖의 다른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국가체계에 약간의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통일성이나마 부여하려고 하고 다양한 행위의 장들에 있는 공식적 정책들 사이에 상대적인 일관성을 창조하려고 하는 노력들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연다.
그것은 또한 국가관념 그리고 그것이 정치 무대의 주인공들에 행사하는 물신주의적 지배력을 비판할 수 있는 공간을 열고, 그러한 비판을 촉구한다. 실로 ‘국가’라는 물화된 개념을 포기할 때에만 우리는 국가관념에 내재한 모든 지저분한 복잡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국가체계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시작할 수 있고, 여러 다른 국가관념에 대해 진지한 비판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국가관념’ 때문에 생기는 국가에 대한 오인을 뛰어넘어 국가를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그것의 정치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51쪽)
이 장[3장]은 국가에 대한 전략관계적 접근법strategic-relational approach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 접근법SRA은 국가에서 국가권력이라는 주제로 초점을 옮기며, 국가는 사회적 관계라는 수수께끼 같은 주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주장은 겉보기에 순환논리적인 여섯 부분으로 이루어진 명제로 번역될 수 있으며, ‘국가’를 다음과 같은 용어로 생산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1) 더 넓은 자연적・사회적 환경과 연결된 (2) 여러 기회와 제약이 다양하게 조합된 구체적 국면에서 (3) 정체・정치・정책의 형태・목적・내용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4) 여러 세력의 변동하는 균형이 (5) 제도와 담론을 통해 매개된 응축(반영과 굴절)으로서 (6) 국가권력의 행사. (113쪽)
국가는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국가란 그 안팎에 있는 여러 다른 세력에 불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권력의 중심들과 역량들의 앙상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국가 그 자체가 아니다. 대신 (복수의) 권력들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국가의 특정한 부분과 특정한 정세 속에 위치한 정치인들과 국가 공직자들의 변동하는 집단들이다. 이 ‘내부자들’은 국가권력의 행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행위자들이지만 언제나 특정 국가의 안팎에 걸쳐 있는 더 넓은 범위의 세력균형과의 관계 속에서 행동한다. 국가 그 자체는 고사하고 국가 관리자에 관해서만 말해보자면, 권력의 행사는 국가체계와 그것의 고유한 역량 너머로 확장되어 있는 복합적 사회관계들을 감춘다. 기능적인 근대국가에서 국가권력의 헌정화와 집중화는 구체적인 공직자와 기관에 공식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고, 선거나 기타 토론장에서 정치적 행위자들을 문책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국가 내부와 그 너머에서 권력이 복잡하고도 [다른 것들을 통해] 매개되는 방식으로 순환한다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기도 하다. (119~120쪽)
사회운동은 정당을 대체하지 않으며 대체할 수도 없다. 사회운동은 일반적으로 단일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효과적인 통치와 거버넌스를 위해 타협할 의향이 낮으며, 타협하라는 압력도 적게 받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운동은 일관성 있는 강령이나 국가 프로젝트를 개발하기보다는 정치적 의제를 파편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강한 의지를 가진 소수자들을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동원할 수 있지만, 운동조직의 취약성 때문에 그들의 장기적 지지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사회운동은 이슈에 따라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며, 존속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재발명해야 한다. 신사회운동은 전체적으로는 좀 더 유연하지만 개별적으로는 훨씬 더 취약하다. 마찬가지로 소수파 정당, 저항정당과 반체제 정당의 생존은 그 조직들의 적응능력과 의지에 달려 있다. 이들에게는 돈에 좌우되는 선거경쟁의 압박과 그들이 정부를 구성하거나 연립정부에 포함될 경우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수파 정당은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하나는 ‘대표의 정당parties of representation’으로 남아 주변적인 자극제 역할을 하면서 소소한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적’ 통치정당이 되어 타협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가능성의 예술[정치]을 존중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정부의 권력이 더 넓은 경제적・정치적 지배체계에 도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166~167쪽)
정치적・분석적 목적에서 민족성을 규정하는 원초적 기준을 정립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혈통, 언어, 공유문화, 공동 운명, 기타 ‘자연적’이거나 ‘자연화/귀화naturalize’된 속성 또는 속성들의 집합 등이 제안되었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시도들은, 사회적으로 민족이 구성되기 이전부터 ‘실재’하는 특정한 민족의 역사적 실존을 입증하려는 노력이라고 보기보다는, 그러한 특성들을 바탕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구성하려는 노력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좋다. (280쪽)
나는 ‘포괄적 의미의 국가’가 ‘통치+위계적 그늘 아래의 거버넌스’로 정의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는 국가란 “지배계급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유지할 뿐 아니라 자신이 지배하는 계급들의 적극적 동의를 얻어내는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활동의 복합체 전체”라는 그람시의 잘 알려진 정의에 부합한다. (320쪽)
국가는 경제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마치 둘이 별개의 영역에 존재하고 오직 서로 외부적인 관계만 맺는 것처럼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2장 참조). 오히려 정상적인 국가들은 전형적으로—능동적・수동적으로, 또는 (‘불량국가’와 ‘실패한 국가’의 경우) 불가피하게—여러 측면에서 경제를 구성하는 제도와 관행을 형성하는 데 깊이 관여한다. 국가의 경제에 대한 이러한 관여는 세계시장의 통합을 능동적으로 촉진하거나 적어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345쪽)
나는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위한 최상의 정치적 외피로 간주될 수 있는 조건은 역사적으로(경제적・정치적으로,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의 추세가 현대국가의 확고한 특징이 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381~382쪽)
포스트민주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적 비상사태는 설사 금융위기가 해결될지라도 그리고 해결되었더라도 약탈적인 금융지배적 축적체제를 위한 ‘최상의 정치적 외피’로서 계속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새로운 권력 블록의 생존은 베버가 말한 세 가지 형태의 정치적 자본주의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423쪽)
첫째, 국가는 자신에 고유한 계산양식과 운영절차를 가진 복잡한 제도적 앙상블이자 특정한 목적을 위해 다양한 제도와 역량을 전개하려는 정치적 실천의 현장으로 분석해야 한다. 국가의 핵심을 선험적으로 정의하려고 하기보다는 국가의 경계가 국가 안팎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어떻게 설정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국가의 핵심을 식별할 때, 이러한 식별로 국가를 완전히 정의할 수 있다거나, (확장된 국가는 고사하고) 국가의 핵심이 통일되고 단일하며 일관된 앙상블 또는 기관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가의 경계와 국가가 앙상블 또는 기관으로서 가지는 상대적 통일성은 우연적[상황적]일 것이다. 이는 국가에 상대적인 제도적 통일성을 불어넣고 더 넓은 사회와의 정합성을 촉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와 실천을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438쪽)
요컨대 국가권력이란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이며, 그것은 특정한 국면 속에서 변동하는 사회세력의 균형을 반영한다.
셋째, 국가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사회에 대한 이론의 일부로서만 발전할 수 있다. 설사 국가의 제도적 경계를 정밀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국가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국가의 구조적 권력과 역량을 이해할 수 없다. 이는 국가에 고유한 속성이 없고, 따라서 국가가 다른 요소와 힘들에서 완전히 도출되고 설명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단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고유한 조직 형태와 계산방식을 갖추게 되면 국가는 자신의 고유한 논리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는 국가가 자신의 모든 제도적 분리와 작동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더 넓은 정치체계뿐 아니라 더 넓은 자연・사회 환경에도 착근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국가의 권력, 따라서 국가권력의 행사와 영향은 항상 조건적이고 관계적이다. (4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