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국어를 어려워했다면, 모국어가 여러분을 배신한 게 아닙니다. 국어가 여러분을 미워한 것도 아니에요. 국어 자체가 원래 엄청 어려운 겁니다. 이건 평생 공부감입니다. 원래가 그런걸요.” 국어를 공부하고 전공한 전문가들에게도 국어 공부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안 나서 어려워요. 그러니까 ‘나는 국어랑 안 맞아’라는 생각은 조금 잊으시길 바라요. 못해서 어려운 게 아니고 너무 큰 범위라서 어려웠던 겁니다. 이건 위로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p.14)
혹시 여러분,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저는 지인들과 카페에서 브런치를 할 때가 종종 있는데요, 신나서 막 떠들기도 하죠. 그런데 어떨 때는 공허해지고,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후회도 생깁니다. 회식은 더합니다. 회식할 때 분위기가 시끌벅적하잖아요. 신나게 먹고 마신 후 밤늦게 택시를 타면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올 때가 있어요. 괜히 말했다 싶고,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주워 담고 싶은 말들이 있죠. 그 모든 대화를 지우고 싶을 때, 우리에게는 조금 다른 대화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럴 때 조용히 책을 봅니다. 졸릴 때까지요. 다음 날 아침이 돼서도 그 찜찜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으면 또 조용히 앉아서 책을 봐요. 책을 볼 때는 가만가만, 저자하고 단 둘이서만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p.30)
소설 읽기가 어렵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앞부분 30퍼센트 정도까지가 어려워요. 소설은 어떤 충격이 가해졌다고 금방 반응이 나오는 장르가 아닙니다. 사건을 전개 시키는 일종의 빌드업을 해야 해요. 장소도 설정해야죠. 캐릭터도 설정해야죠. 개연성도 따라야죠. 시간과 공간을 세팅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소설가가 설정한 인물, 관계, 사회적 배경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반 30퍼센트 부분을 버텨야 합니다. 세계관으로 진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죠. 여기만 잘 넘기면 쭉 가게 됩니다. (p.124)
생각해 보면 우리에겐 손도 두 개입니다. 외로울 땐 나의 왼손이 오른손을 잡아줄 수 있죠. 이런 생각을 하면 비통한 마음을 쓴 고전시가들은 나의 오른손을 잡아주는 나의 왼손, 혹은 혼자 울지 말라고 생겨난 두 눈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아주 오래전부터 견뎌온 사람들을 보면서 오늘 나의 슬픔은 조금 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큰 슬픔 앞에서 내 슬픔은 위로를 받고 조금 더 견뎌볼 힘을 얻습니다. (p.142)
산은 말이 없습니다. 흐르는 물은 형태가 없죠. 바람에는 값을 매길 수 없고, 달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그저 보는 사람 마음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딱 하나 마음만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시인은 자연과 함께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중요한 건 그거 하나예요. 옛날 사람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자세입니다. 부럽지 않나요? 저도 저렇게 살고 싶습니다. 자연스럽게 흰머리 생기면서 늙고 싶어요. 이 시조는 저의 노년에 대한 일종의 워너비입니다. (p.155)
생명을 주제로 하는 동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가끔 사는 게 삶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경쟁이 일상화돼 있으니까 내가 살아남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진 거죠. 그런데 인간은 원래 같이 사는 존재이지 이기고 홀로 살아남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삶을 생존이라고 해석하는 게 요즘 사회입니다. 이런 현대의 문법에 아주 예쁜 말과 아름다운 스토리로 맞서는 작품들이 바로 생명의 동화예요. (p.182)
시와 소설은 배우기 어렵지만 에세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작법을 배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쓸 수 있어요. 에세이 쓰기는 샘물에서 물이 솟아날 때 그걸 그대로 담는 것과 같죠. 글쓰기 입문으로 에세이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에세이는 내면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는 측면에서 시와 닮았습니다. 하지만 시처럼 압축이나 절제할 필요 없이 편하게 문장으로 쓰면 됩니다. 서술 방식은 소설과 더 가깝습니다. 소설과 다른 점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 내가 주인공이 된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입니다. (p.220)
여러분과 저는 한 편의 책을 쓰듯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저자요, 작가입니다. 우리는 그 여정 중에 잠깐 만났습니다. 작은 하이파이브 같은 책을 마무리하면서 여러분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맨 마지막 날에 우리가 우리의 책장을 덮을 때 좀 뿌듯한 제목이 달리기를, 당신이라는 책의 멋진 제목을 응원할게요. 결국 국어는 그 제목 하나를 위해 배우는 거 아닐까요. (p.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