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기업이 통제하는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당신의 부를 지켜라”
금과 달러, 유로를 넘어설 새로운 돈의 탄생
강대국의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비트코인
미국의 억만장자 찰리 멍거는 비트코인을 들어 “문명의 이익에 반하는 역겨운 존재”라고 말했으며,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비트코인이 “범죄자, 테러리스트, 자금 세탁업자들의 온상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버드대 출신으로 빈곤 및 경제 개발 분야의 권위자인 제프리 삭스 또한 비트코인이 사회적 가치가 전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은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비트코인은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꾸준히 우상향하며 새로운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소위 권위자들이 그간 비트코인을 잘못 판단했던 이유는 그들이 모두 선진국에 사는 부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사유 재산권, 언론의 자유, 제대로 작동하는 법률, 그리고 달러와 파운드 같은 비교적 안정적인 준비통화를 보유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혜택을 누리며 산다. 달러, 유로, 엔, 파운드, 스위스 프랑 등을 사용하지 않는 전 세계 87%의 인구는 독재 국가나 통화 신뢰도가 매우 낮은 나라에서 산다. 2021년 기준 43억 명의 인구가 전체주의 국가에서 살며, 두 자릿수나 세 자릿수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인구가 16억 명에 달한다.
달러 버블 속에서 살아가는 비트코인 비판론자들은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비트코인 세계에 합류할 수 있으며, 이 새로운 통화 체제에서는 모든 참여자가 똑같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 네트워크 차원의 검열이나 차별도 없으며, 사용자들은 여권과 같은 신원 정보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며, 소유자의 권리가 국가나 독재자에 의해 몰수되거나 평가절하당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수단과 팔레스타인, 나이지리아, 콩고와 쿠바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이용해 무너진 금융 체제에서 탈출하고 있다. 자유 사회의 적이라는 일부 비평가들의 생각과 달리 비트코인은 오히려 중국처럼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에 더 버거운 상대가 될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재산권, 견제와 균형, 언론의 자유 등은 모두 비트코인이 강화하려는 가치이자 비트코인의 진짜 힘이다.
비트코인은 결코 막지 못할 트로이 목마다
권위주의 정권과 중앙은행을 비롯한 기득권층은 이미 비트코인이라는 트로이 목마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간파하고 있다. 현대의 많은 라오콘과 카산드라가 “이것을 성안으로 끌어들이면 안 돼!”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전설 속의 그 트로이 왕국에서처럼 이런 외침은 속절없이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많은 이들, 나아가 많은 국가와 기득권층에게까지 비트코인이라는 보물이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주류 경제권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024년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었고, 비트코인을 비판했던 세계적인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걸 인정한다”라며 태도를 바꾸었다. 나아가 2024년 미국 대선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를 막론하고 암호화폐 관련 공약을 적극적으로 내세웠고 결국 적극적으로 친암호화폐 행보를 보여줬던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인 미국에서 왜 비트코인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일까? 비트코인이 미국 제국주의를 지탱하는 달러 체제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비트코인이라는 ‘트로이 목마’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영원히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달러 시스템의 탄생
비트코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지금까지 달러를 중심으로 돌아간 세계 경제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미국이 자국의 부채를 어떻게 ‘값진 것’으로 바꾸는 걸 실현했는지, 그리고 그 사실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이며 이 시대가 어떻게 막을 내릴 것인지 예견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수십 년에 걸쳐 미국은 ‘금본위제’를 ‘미 국채 본위제’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미국은 달러와 금의 태환을 보장하겠다며 다른 나라들이 금 대신 달러를 준비금으로 사용하도록 설득했다. 그러나 미국은 약속과 달리 외국 정부가 보관하던 달러에 대한 상환을 거절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세계를 기만한 이 행동을 통해 미국은 냉전시대 비효율적인 전쟁 국가 체제를 운영하기 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미국은 부채를 세계 준비통화로 탈바꿈시킴으로써 국제수지에 신경 쓸 필요 없이 내수의 팽창과 외교를 추진할 수 있었으며, 다른 채무국에는 긴축을 요구하면서 세계 최대 채무국인 미국만은 유일하게 재정적 제약 없이 행동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달러 패권이 소련을 물리치고, 잉여 달러를 통해 전 세계 경제를 이끌었다는 견해와는 별개로, 브레턴우즈 체제가 낳은 세계은행이나 IMF 같은 기관들조차 개발도상국을 돕기는커녕 그곳의 광물과 원자재를 미국이 활용하도록 만들고, 그곳 지도자들에게 미국이 수출하는 농산물을 수입하도록 강요함으로써 결국 경제 자립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다. 그렇게 미국은 다른 나라는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약속한 돈을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되는 방식, 그리고 자국의 전쟁과 복지에 다른 나라가 자금을 대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미국의 금 태환 중지로 인해 세계는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 국채를 매각할 수도, 달러를 거부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달러를 받지 않으면 시장에서 달러 가치가 폭락해 미국의 수출만 유리해지고, 자국 산업에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로선 탁월한 전략이었지만 이 전략은 큰 압박에 당착한다. 닉슨 쇼크 이후 OPEC 회원국들이 달러의 평가절하와 미국 곡물 가격 상승에 대항해 원유 가격을 4배로 올린 것이다. 사상 유례없는 ‘부의 재분배’가 일어났고 미국은 결국 사우디 왕가를 설득해 석유를 달러로 사게 하는 대신, 걸프 지역에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하고 대량의 무기를 판매하게 된다. 다시 말해 페트로달러를 미국 국채로 보유하게 한 것인데, OPEC을 채권을 사는 노다지로 만든 것이다. 석유 수출국들이 벌어들이는 수백억 페트로달러 수익은 미국 국채로 환수되어 미국의 적자를 먹어 치워 주었다.
페트로달러의 종언과 초제국의 종말
페트로달러의 유산은 미국의 제국주의와 기득권을 지탱해 주었지만 공짜는 아니었다. 미국의 달러 패권은 엘리트와 외교관, 미국이라는 제국의 확장에는 도움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대다수 국민들의 희생이 따라왔다. 오늘날 미국은 1970년대보다 노동력과 생산성이 훨씬 증가했음에도 물가는 떨어지지 않고 실질임금도 증가하지 않았다. 1950년대 초 포춘 500대 기업의 평균 순이익은 전체 기업 평균의 500배였고, 이 비율은 1990년대 후반 7,000배로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세계 8대 기업의 평균 시가총액은 2,630억 달러에서 1조 6,841억 달러로 증가했다. 바야흐로 인플레이션이 경제의 ‘영구적 특징’이 된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알렉스 글래드스타인은 미국의 부채를 세계 통화의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이 어떻게 산업자본주의를 금융자본주의로 변화시켜 금융과 보험, 부동산이 모든 경제적 이익을 흡수하게 만들며 기득권의 힘을 강화해 왔는지 추적한다. 그리고 기득권을 위해서 작동했던 기존의 체제에 비트코인이 어떻게 균열을 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결코 사소한 균열에 그치지 않을 것인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증명한다.
경제적 특권은 상대적이다. 미국인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에 대해 경제적 특권을 누리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은 짐바브웨 국민에 비하면 엄청난 경제적 특권을 지닌다. 프랑스 사람은 화폐 제도를 통해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사람에 대한 경제적 특권을 누리며, 쿠바의 독재정권은 쿠바 국민들을 착취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비트코인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 어떤 정부나 동맹 세력도 통화 정책을 조작할 수 없다. 저자는 비트코인의 자가보관성의 용이성과 정부의 몰수에 대한 저항력이 비트코인을 새로운 시대의 주인으로 만들고 있음을 알려준다.
비트코인 본위제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군사적 모험주의가 아니라 국내 인프라에 투자하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어떤 나라든 제국의 전쟁에 대해서 쉽게 자금을 대지 않을 것이다. 개발도상국은 세계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노예제와 자급자족 농업의 수렁에 빠지는 대신 천연자원을 활용하여 시장에서 마련한 자금으로 비트코인 채굴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에너지 주권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50년간 비대해진 거대한 불평등을 둔화시킬 것이다. 오늘날 미국 국채의 가장 큰 구매자는 연준이다. 외환보유고 비율이나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달러가 지닌 준비통화로서의 가치는 점점 하락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초제국주의를 물리쳤을까? 아니면 초제국주의가 스스로 패배했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