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아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이현아 작가의 신간 《하늘 고래의 노래》가 출간되었다. 아주 오랜 옛날, 고래는 땅 위에서 살았다. 그러다 바다로 삶의 터전을 옮겨 이제는 엄연한 바다 동물이 되었다. 그런데 고래가 바다로만 간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이현아 작가는 이러한 상상에 동물의 생태와 자연 현상을 잘 버무려 하늘 고래라는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
다른 고래의 절반밖에 안 되는 덩치, 반쯤 만들어지다 만 것 같은 목소리. 반쪽이는 어딘가 조금씩 모자란 듯한 고래다. 어릴 적 기억이 없는 반쪽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길을 떠난다. 그 길에 늙은 바다거북과 이빨 부러진 상어, 냉철한 가오리가 함께한다. 이들은 왜 반쪽이의 자아 찾기 여행에 함께한 걸까? 이들의 여정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는 모두 특별하다
어린 고래 반쪽이는 고래 무덤에서 늙은 바다거북 후포의 돌봄을 받으며 살고 있다. 어쩌다 부모를 잃었는지, 자신은 왜 다른 고래와 달리 덩치도 작고 노래도 못 부르는지 궁금한 것투성이지만 아는 이가 하나도 없다. 어느 날 고래들은 모두 남쪽 바다로 떠난다는 얘기에 반쪽이도 가족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남쪽 바다의 화려한 산호초, 청소새우와 청소놀래기의 현란한 홍보 춤과 티격태격하는 다툼, 신비로운 지혜의 숲.... 새로운 장소는 반쪽이에게 전에 없던 즐거움을 주었지만, 상처도 적지 않다. 다른 고래의 외면은 반쪽이를 더욱 쓸쓸하게 하고, 어디서도 가족 소식을 찾을 수 없어 자꾸만 서글퍼지게 한다. 모험을 나서지 않았다면, 상처받을 일 없이 평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작은 고래 반쪽이로 남았을 것이다. 반쪽이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도 주저앉지 않는다. 다른 물고기의 눈총에 쉽게 주눅들던 반쪽이는 여행을 계속하면서 점점 당당해지고, 나아가 자신을 가로막는 것을 깨부술 용기까지 갖는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된다. ‘반쪽’이 아닌 ‘어엿한 진짜 자신’을 찾은 것이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특별하다고 말한다. 다만 아직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작은 덩치, 얼룩덜룩한 무늬, 만들어지다 만 것 같은 목소리는 반쪽이를 어딘가 부족한 존재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이는 반쪽이가 가진 특별함이었다. 작은 덩치는 날아오르기 알맞았고, 얼룩덜룩한 등은 별 가루에 반짝였고, 목소리는 황홀한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이 세상에 반쪽인 존재는 없다. 지금 빛을 발하지 못하더라도, 나의 특별함을 발견해낸다면 우리는 언제든 빛날 것이다. 반쪽이처럼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내디뎌 보자.
┼ 두려움을 깰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늘 고래의 노래》는 어린 고래 반쪽이가 자신이 누구인지 가족을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반쪽이만이 아니다. 늙은 바다거북 후포, 이빨 부러진 상어 소소리, 냉철한 가오리 촉 모두는 때로는 반쪽이의 조력자로, 때로는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모두가 외롭고 어딘가 결핍이 있는 존재지만, 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
후포_안 된다 얘야, 거긴 위험해
파도에 휩쓸려 죽어가는 반쪽이를 발견한 것도, 씨월드에서나 고래 무덤에서나 반쪽이를 살뜰히 보살핀 것도 늙은 바다거북 후포다. 무료했던 일상은 반쪽이와 함께하면서 즐거워진다. 반쪽이를 웃게 하려고 후포는 점점 수다쟁이가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반쪽이가 여행을 떠나겠다고 한다. 후포는 반대하지만 어린 반쪽이 혼자 보낼 수 없다. 그렇게 후포는 마지못해 여행에 뒤따른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듯 후포는 오직 반쪽이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하늘 고래 이야기를 지어 들려준 것도, 여행을 만류한 것도 반쪽이가 상처받을 것을 걱정해서였다. 반쪽이가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품 안에 가둬 둘 수만은 없었다. 후포의 걱정처럼 여행길은 위험천만했고, 아픈 과거를 마주하는 길이기도 했다. 반쪽이는 약하지 않았다. 후포가 준 사랑과 믿음은 반쪽이를 일으켜 세웠고, 반쪽이는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훌륭한 고래가 되었다. 후포도 감았던 눈을 뜨고 두려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 바라던 반쪽이의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소소리_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 바다를 주름잡았어
소소리는 한때 바다에 사는 모든 동물이 겁을 내던 전설적인 백상아리였다. 하지만 사고로 이빨이 부러져 다시 나지 않게 되자, 숨어 사는 신세가 된다. 다른 동물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핥아먹다 반쪽이와 딱 마주친 날, 소소리는 괜히 으름장을 놓으며 허세를 부린다. 그러다 그만 어린 반쪽이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풀죽은 반쪽이를 달래주려고 다른 고래처럼 남쪽 바다에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네자 반쪽이는 가 본 적이 없다며 같이 가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빨 부러진 상어에게 바다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하지만 소소리는 자신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반쪽이에게 초라해 보이고 싶진 않다. 까짓거 한번 해 보자. 그렇게 소소리는 반쪽이의 여행에 함께한다.
소소리는 이빨을 잃으며 자신감마저 함께 잃어버렸다. 다른 동물이 보이면 몸을 숨기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 자신이 비참했다. 하지만 위험한 바다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만난 반쪽이는 자신을 우습게 보지도 않았고 오히려 대단한 상어라며 치켜세웠다. 반쪽이와 함께 있으면 좀 괜찮은 상어가 된 것 같았다. 반쪽이의 행복을 찾아 떠난 길, 그 앞을 귀상어 무리가 가로막았다. 상대는 셋, 만만치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슬쩍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쪽이를 위험하게 둘 순 없었다. 소소리는 모두를 먼저 보내고 혼자서 귀상어 무리를 상대하기로 했다.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두렵지 않았다. 가장 위험한 순간, 소소리는 진짜 자신을 되찾았다.
촉_남 일에는 관심 없어
촉과 후포, 반쪽이는 씨월드에서 처음 만났다. 촉은 씨월드에서 가장 영리한 가오리다. 온갖 잡다한 것에 관심을 두고 알고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다. 어느 날 후포가 찾아와 반쪽이가 행복해지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촉은 당연히 거절한다. 수천 번 거절해도 후포는 자꾸만 찾아와 빌고 또 빈다. 대체 남을 위해 왜 저렇게까지 부탁을 하는 걸까. 촉은 괜스레 궁금해진다.
촉은 아주 차가운 캐릭터다. 무심히 툭 내뱉는 말은 마음에 생채기를 내곤 한다. 남에게 곁을 내주지 않고 외로움을 즐기며 혼자 바다를 떠도는 이, 그게 바로 촉이다. 하지만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키는 의리 있는 가오리다. 후포, 반쪽이와 떨어진 뒤에도 촉은 혼자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다시 만난 후포가 쏘아붙여도 촉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간 알아낸 것을 알리려 한다. 하늘 고래에 대해 알려주겠다며 모두를 이끈 촉은, 자신이 왜 이 여정에 앞장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반쪽이와 후포, 소소리와 함께하면서 점차 알게 된다. 혼자가 편했던 촉은 어느샌가 함께 하는 것이 즐거워졌고,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줄 아는 가오리가 된다. 어쩌면 촉은 마음에 온기를 숨긴 채 차가운 척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후포, 소소리, 촉. 성격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외로웠고 혼자 사는 것에 익숙했다. 어린 고래 반쪽이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이들은 반쪽이의 행복을 바라며 여행에 동참했다. 하지만 반쪽이만 행복한 여행이 아니었다. 반쪽이가 진짜 자신을 발견했듯, 후포와 소소리, 촉은 두려움을 이겨 내고 한 단계더 성장했다. 이제 이들은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