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냐 가족이냐, 가족이냐 친구냐. 나도 고민이 많지만 끝내는 친구를 택하게 된다. 친구를 따르다 보면 엄마, 아빠의 말을 어기게 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 말대로 하다가는 친구들을 놓쳐 버린다. 엄마, 아빠가 알면 섭섭해하겠지만 6학년이 된 지금, 내 선택의 무게 중심은 언제나 친구들 쪽으로 기운다. _12쪽, 「불편한 말」 중에서
내가 다미와 베프라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어쩌다 내가 다미의 베스트 프렌드가 된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다미는 내가 춤을 잘 추는 게 마음에 든다는데, 혹시 그 때문일까? 농담 같긴 하지만 정말 내 맨얼굴이 예뻐서일까? 이유야 어떻든 다미와 친해진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 _28쪽, 「최고의 행운」 중에서
아니면 본능적으로 느낀 걸지도 모르겠다. 다미가 내민 그 학습지가 실은 내 시궁창 같은 학교생활을 구원해 줄 동아줄이라는 것을. 선생님을 속이더라도 그때의 나에겐 그 동아줄이 절실했다. _33쪽, 「최고의 행운」 중에서
다미 앞에서 이지은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다. 다미는 내가 이지은과 같은 모둠이 되어 수업을 듣는 게 정말 싫다고 했다. 다미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에 내 마음도 무거워졌다.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가 낯설었다. 내가 누군가를 꺼리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피하고 싶은 아이, 이지은을 만나기 전까지는. _45쪽, 「피하고 싶은 아이」 중에서
이지은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걸까? 혹시 그때의 나처럼 학교 오는 게 두렵지는 않을까? 다른 아이들은 다 짝이 있는데 나만 혼자일 때의 느낌을 나는 너무 잘 안다. 친구가 없다는 건 수영을 못하는데 구명조끼도 없이 깊은 물에 던져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숨이 막혀서 도무지 살 수가 없다. _50쪽, 「피하고 싶은 아이」 중에서
기분이 이상했다. 미소가 너무 예뻤다. 저렇게 웃을 줄 알면서 왜 맨날 차가운 얼굴로 다니는 걸까. 문제를 맞혔다는 기쁨보다는 이지은의 의외의 모습을 본 게 더 두근거렸다. 그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내가 왜 이지은을 좋게 생각하려 하지?’_59쪽, 「롤러코스터」 중에서
나는 다미를 바라보았다. 뭐가 고민이냐는 듯 걱정스레 나를 바라보는 눈빛. 그 눈빛을 보고 있으니 차마 이지은을 좋게 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다미가 상처받을 테니까. 이런 다미를 두고 그 애를 두둔할 수는 없었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다미여야 한다. 나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래, 확실하게 선을 긋자.’ _94쪽, 「말도 안 되는 장난」 중에서
아리송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보다 손에 쥔 키링에 더 빠져 버렸다. 갖고 싶다. 너무 갖고 싶다. 그런데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나는 놀이공원에서 지은이를 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사과하지도 않고 뒤에서 흉보는 걸 택했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선물을 받기에는 잘못한 게 많았다. 그리고 여전히 다미가 싫어하는 아이이기도 하니까. _110~111쪽, 「키링」 중에서
나는 꾸역꾸역 면을 삼켰다. 입안이 얼얼하고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먹는 속도가 느려서인지 면은 양념을 잔뜩 머금은 것 같고, 배도 점점 불러 왔다. 심지어 다미는 1인분을 더 시키더니 자기는 배불러 못 먹겠다며 내 접시에 다 쏟아부었다. 나는 너무 매워서 서비스로 나온 주스 1리터까지 다 마셔야 했다. 속이 더부룩하고 신물이 올라와서 괴로웠다.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은 것도 모자라 계산까지 했다. 그래도 다미가 잘 먹었다며 내 팔짱을 꼈을 땐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서 속이 쓰린 것도 꾹 참았다. _131쪽, 「다미의 부탁」 중에서
우울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방문을 닫고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가디언스의 노래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디언스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꾸 눈물이 나고 가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뒤돌아 멀어지던 다미의 뒷모습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_150쪽, 「넘어서는 안 될 선」 중에서
나랑 지은이만 모르는 어떤 비밀이 아이들 눈빛을 통해 빠르게 오갔다. 같이 있는데도 혼자가 된 것 같았다. 그러는 중에도 다미는 평소처럼 아이들과 웃고 떠들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지금 이 상황을 바랐던 건 맞지만,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저격 글 남기라고 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지은이와 친하게 지내겠다고? 이 상황도, 다미의 말도 믿을 수 없었다. _163쪽, 「절교 선언」 중에서
학교 가는 게 즐겁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자리에 엎드려만 있었다. 같이 놀던 아이들이 나만 빼고 놀 때 그 웃음소리가 귓가에 파고들면 그대로 울고 싶어졌다. 다른 무리에 끼고 싶지도 않았고, 무리의 아이들이 끼워 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 아이들도 다미 눈치를 보니까. 그리고 나 또한 다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_176쪽, 「태양을 벗어난 행성」 중에서
“왕따라니? 우리가 너 괴롭힌 적이라도 있어?”
괴롭힌 건 아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주 보고 웃던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등을 돌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따돌리는 게 아니고서야 설명이 가능한가? 하지만 민지는 끝까지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된 거, 솔직히 말할게.”
민지가 내 눈을 똑바로 보았다.
“우리 잘 안 맞았잖아. 안 맞아서 안 노는 거야. 널 따돌리는 게 아니고.” _179쪽, 「태양을 벗어난 행성」 중에서
다미를 처음 만났을 때, 눈이 부셨다. 모두가 다미를 부러워했고, 다미만 곁에 있으면 안전할 것 같았다. 따돌림당할 일도, 외로워질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다미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 세상에서는 다미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나의 가디언이었으니까. _205쪽, 「로그아웃」 중에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것. 춤추는 데 그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다들 알고 있지만 그게 어디 하루 이틀 만에 되겠어? 돌고 넘어지고 또 돌고 넘어지고. 그렇게 수십 번 넘어지고 일어나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 무게 중심이 잡히는 거야. 넘어져서 아프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더는 못 돌 것처럼 좌절하기도 하고. 나도 꽤 긴 시간이 필요했어.” _225쪽, 「무게 중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