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트스트림은 지정학 스릴러의 주인공이자, 블라디미르 푸틴과 서방이 20년간 맺어온 변태적 관계의 중심이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노르트스트림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잠든 비밀요원이었다. 비밀요원의 시체는 아직 꿈틀거린다. (서문, 7쪽)
러시아와 독일는 2004년에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체결했다. 여기에는 특히 발트해 해저에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파이프라인 건설이 포함됐다. 이 계획은 2005년에 승인됐고, 푸틴이 독일 의사당을 방문하기 직전인 2001년 4월에 이미 타당성 조사가 결정됐다. 푸틴과 슈뢰더 사이에 악마의 협약이 체결되는 중이었다. 이 협약은 20년 동안 지속된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거의 완벽했던 덫이 산산조각 날 때까지 말이다. 그 20년 동안 노르트스트림이라는 배신자가 태어나고 죽었다. (1장 베를린 협약, 25쪽)
이렇게 푸틴은 20년 동안 꾸준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덫을 놓았다.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국가들이 순진하게 공모해서 만든 덫이고, 여기에 가장 앞장선 국가가 독일이다. 지하와 해저에 묻혀 눈에 보이지 않고 해롭지도 않은 강철관은 잠든 첩자였다. 대장에게 명령을 받을 때까지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었다. 푸틴에게 가스관은 에너지로 러시아가 유럽을 지배할 수 있게 해주는 협박 수단이었다. 이 계획에 담긴 최종 목적은 “20세기 최악의 지정학적 위기”를 해소하고 해체된 소련을 회복하는 것이다. (4장 전쟁의 이름: 가스프롬, 69쪽)
노르트스트림은 이처럼 이데올로기적 순진함, 얽히고설킨 역사, 서로 잘 이해한 이익에서 탄생했다. 냉전은 종식됐고, 세계화는 좋은 일이며, 러시아와 서방의 평화는 영원하리라는 환상 속에서 태어났다. 또한 가스프롬의 교역을 앞세우는 언제나 모범적인 행태, 오랜 협력과 충돌, 타협의 역사에서 생겨났다. 그리고 베를린장벽을 해체하는 데 분명한 역할을 했고, 독일 통일부터 메르켈 시대 이전까지 ‘유럽의 환자’라는 취급을 받으며 뒤처졌던 국가의 놀라운 산업 성장에 기여한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가져온 산물이다. (6장 “내가 죄인이군요!” 112쪽)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경유지가 아니다. 가스프롬에서 가스관 사용료를 지불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데 꼭 필요한 국가다. 러시아 정부는 이 부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공급하는 천연가스의 대금을 결제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동시에 자국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실어 보내는 가스관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래서 가스프롬과 우크라이나 국영기업 나프토가스 사이에는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나프토가스는 우크라이나 국내 공급 가격을 인하하고 가스관 사용료를 인상하자고 요구했고, 가스프롬은 그 반대를 원했다. 나프토가스가 가스프롬에 대금을 결제하지 않자, 가스프롬은 보복으로 공급가격을 높이고 한겨울에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7장 샹젤리제의 우크라이나, 143~144쪽)
푸틴은 어떻게 복수할지 깊이 생각했다. 오렌지 혁명은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엄청난 패배였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일이니 우크라이나가 대가를 치러야 했다. 푸틴은 크림반도, 돈바스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체를 병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려면 노르트스트림을 중심에 놓고 전략을 짜야 했다. 노르트스트림을 내세우면 우크라이나에게 지불하는 가스관 사용료를 끊을 수 있고, 러시아와 유럽 국가들이 직접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 (7장 샹젤리제의 우크라이나, 146쪽)
러시아의 위험을 맞닥뜨린 국가는 경고음을 보냈고, 그렇지 않은 국가는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 위험을 맞닥뜨린 국가는 “우리에게 노르트스트림은 사형선고다”라고 외쳤고, 그렇지 않은 국가는 “또 과장이냐?”고 대꾸했다. 위험을 맞닥뜨린 국가는 “노르트스트림이야말로 전쟁 계획이다”라고 말했고, 그렇지 않은 국가는 “서로 의존해야 평화가 유지된다”고 대답했다. 위험을 맞닥뜨린 국가는 “우리를 버리지 마!”라고 부르짖었고, 그렇지 않은 국가는 “러시아를 모욕해서는 안 돼”라고 맞받았다. 서로 상대방 말은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11장 2014년, 수치스러운 해, 250쪽)
이들의 이성은 감정의 벽에 부딪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돈에 맹목적인 슈뢰더의 사랑, 사민당의 이데올로기 사랑, 상호의존성 이론에 집착하는 경제학자들의 사랑, 계산된 시나리오에 묶인 메르켈의 사랑, 독일인들의 경쟁력 사랑, 미국인들의 헤게모니 사랑, 러시아인들의 전쟁 사랑, 유럽인들의 평화 사랑, 이데올로기・충동・집착의 생생한 힘을 무시한 ‘현실적’ 역학관계에 퍼붓는 모두의 사랑. 모두가 감정에 눈이 어두워 일종의 구세주의, 곧 위대한 러시아라는 종교와 절대권력을 위한 사랑으로만 움직이는 푸틴이 자신의 이익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리라 기대한 어린아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12장 덫은 거의 완벽했다, 292-2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