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도움이 오가려면 도움을 청하는 ‘의뢰인’과 도움을 주는 사이에 어느 정도의 이해와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감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이해한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언제 도움을 줘야 할지,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를 알아야 한다. 의뢰인이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실제로 무엇인지 밝히고, 제공되는 도움을 받아들이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과 나눈 대화의 결론을 실행에 옮기려면 신뢰가 필요하다. (18쪽)
도움 과정에는 두 명 이상이 참여하기 마련이므로 관계가 형성된다. 이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규정해야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그러다 보면 결국 모든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리고 서로를 신뢰하고, 터놓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토론으로 이어질 것이다. (45쪽)
성인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천 가지의 역할과 그에 따른 대본을 학습한다. 그 덕분에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거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상황을 식별하고 서로 다른 관계를 무리 없이 관리할 수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문화적 역학관계는 도움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매우 중요하다. 도움을 받는 쪽이나 주는 쪽 모두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체면을 가지고 상황에 임하기 때문이다. 도움 관계가 어떤 식으로 발전하는지는 도움을 받는 쪽이 주는 쪽에 또 도움을 주는 쪽이 받는 쪽에 각각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양쪽 모두의 가치는 상대방을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55~56쪽)
결론적으로 신뢰는 두 가지 사회경제학적 요소를 토대로 구축된다. 다른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은 (1) 상호작용에서 상대방이 내가 요구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고, (2) 상대방이 내가 밝힌 정보로 나를 이용하거나 내게 불리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일이다. 어떤 관계에서든 친밀도는 양측이 서로에게 자신을 더 드러내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것이다. (66쪽)
요약하면 도움을 주고받는 초기에는 모든 관계가 불균형한 상태다. 도움을 받는 사람은 위상이 한 수 아래로 떨어져 취약해진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한 수 위로 올라가면서 권력을 쥔다.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이 잘못되는 원인은 많은 경우 초기의 이 불균형 관계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데 있다.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그냥 막연히 받아들이지 않고 의식적으로 구축해야 하는 이유는 불균형 상태는 명확하게 드러나는 반면 그것을 개선하는 사회경제학적 방법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91쪽)
도움을 주고받는 상황이 시작될 때는 관계의 균형이 깨진 상태여서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 모두가 이 불균형에서 초래된 함정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도움 관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도움을 주는 쪽이 상대방의 위상을 높여줘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도움을 주는 사람이 양쪽 모두의 역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111쪽)
도움을 요청받은 사람은 전문가, 의사, 과정 컨설턴트 역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도움을 구한 사람이나 요청받은 사람 모두 처음에는 상황에 대해 무지한 부분이 많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에 균형이 깨져 있기 때문에 전문가나 의사 역할로 시작하면 양쪽 모두 함정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맺으려면, 도움을 주는 사람은 도움을 구한 사람의 위상을 회복해주고 유효한 정보를 취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140쪽)
도움을 주는 사람은 상대방의 자아를 북돋워주고, 격려하고, 베푸는 방식으로 이 역학관계에 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항상 내가 ‘겸손하게 질문하기’라고 부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단지 주의 깊은 관찰과 관계 초기에 오가는 짧은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데 그칠지라도 말이다. 익숙해 보이는 상황이더라도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146쪽)
도움을 주는 사람이 관계가 안정됐다는 느낌을 받은 후에는 대화를 더 깊게 발전시켜도 상대방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위험이 적어진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이제 적극적으로 배울 자세를 갖추고 여러 가지 제안과 조언을 환영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이라고 해서 양측이 동등한 위상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두 사람 사이의 암묵적 계약, 의존도, 컨설턴트 역할, 그리고 도움을 청한 사람이 자신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는 수준 등이 모두 상호 예사에 부합한 상태를 말한다. 양쪽 모두 자기가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것에 관해 편안해하고, 정확한 의사소통이 이뤄진다고 느끼는 상태다. (197쪽)
팀이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려면 팀의 각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을 계속 제대로 수행하리라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구성원 중 한 명이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거나 자기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것만큼 팀에 타격이 가는 일은 없다.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요인도 작동한다. 그룹의 구성원으로 자신이 팀에 주는 만큼 얻는 것이 있다고 느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이 같은 위상을 갖지는 못하겠지만 각자의 기여도에 상응하는 위상은 누릴 수 있어야 한다. (214쪽)
그룹 환경에서는 유용한 피드백이 특히 중요하다. 피드백 없이는 목표에서 어긋나는 행동을 시정할 기회도, 더 효율적으로 목표를 이루는 방법을 배울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진행 상황을 확인·검토하고 유용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모두 좋은 팀워크를 만들고 유지하는 도움 과정에 필수적이다. (231~232쪽)
요약하자면 문제 해결을 원하는 리더들은 돕는 역할을 맡아야 하고, 동시에 도움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일단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조직 내 고유한 문화적 규칙과 규범이 무엇인지 중요한 정보들을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다음 필요한 변화를 가져오는 전문가나 의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바람직한 변화 과정을 촉발하기 위해 직원들에게도 권한을 주는 도움의 역할을 다시 한번 고려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264쪽)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일상적이면서도 복잡한 과정이다. 도움은 태도, 행동 방식, 기술이자 사회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우리가 팀워크라 간주하는 것의 핵심이고, 효율적인 조직의 필수 재료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고 변화의 원동력이다. (2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