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완전 소심한 김치라고?
아니, 나는 완전 엄청난 김치야!
우물쭈물 아이들의 작은 마음에
상쾌한 바람을 불러오는 커다란 상상!
이렇게 엄청난 김치는 태어나서 처음이야!
‘김치, 김치, 김치가 문제야!’ 오늘은 김치 때문에 울고만 싶은 날이에요.
모든 일은 엄마가 김치를 담그며 시작됐어요. 멀리서 슬쩍 보기만 했는데도 바로 느낌이 왔어요. 엄마 김치는 정말 엄청난 강적이에요!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어요. 엄마가 이 김치를 민지네 엄마에게 가져다주라고 부탁한 거예요. 그럼 학교에 김치를 가지고 가야 하는데, 달콤한 케이크나 상큼한 과일도 아니고 하필 김치라니…. 상상할수록 정말 큰일이에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죠? 집 밖을 나서자마자 김치가 못 참겠다는 듯 올리에게 소리쳐요. “학교는 절대 안 돼! 나를 학교에 가져가면….” 그때부터, 김치에게서 완전 엄청난 상상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해요. 친구들의 놀림을 받은 김치가 폭탄처럼 빵 터져 버린다면? 김치로 범벅된 교실을 밤새도록 청소해야 할지도 몰라! 그러다 톡 쏘는 김치 냄새가 학교 밖 우주까지 퍼져 버린다면? 외계인들에게 들켜서 낯선 행성으로 끌려가게 될지도 몰라! 오 마이 갓! 대체 이 김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는 어디까지 소심해 봤니?
도대체 김치가 뭐길래, 교실의 평화를 넘어 우주의 평화까지 고민해야 하는 걸까요? 여러분에게 비밀 한 가지를 이야기해 드릴까요? 이미 눈치챈 독자 여러분이 있으실지도 모르지만, 사실 '완전 소심한 김치'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엄마의 작은 심부름도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던 '완전 소심한 나'의 이야기랍니다. 올리는 남몰래 김치의 목소리를 빌려 남모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소심하다'의 어근인 '소심'이 품은 뜻은 '작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바깥에 쉬이 내보이기 부끄러워하는 마음, 숨기고 숨기다 이내 한없이 더 작아져 버리는 마음이지요. 그런데 올리와 김치 사이의 사랑스러운 실랑이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그와 같은 소심함을 언제나처럼 등 뒤에 감추고 숨겨버리기보다, 오밀조밀한 상상의 도화지 위에 펼쳐놓고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가진 작은 마음들이 섣부른 판단과 황급한 손짓 뒤에 가려지지 않고, 반짝이는 따뜻한 눈길 위에 있는 그대로 드러나 보여지도록 말이지요.
작고 여린 마음,
상상의 커다란 날개를 달다
그렇게 우리의 '작음'을 한참 들여다보다 보니, 그 사이로 살짝 벌어진 틈새를 통해 바람이 불어옵니다. 바로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의 나래가 불러온 바람입니다. 올리의 소심함이 불러온 김치의 상상은 김치 폭탄부터 싹둑싹둑 행성의 외계인, 김치 패러글라이딩까지… 말 그대로 학교 담장 밖을 넘어, 하늘을 넘어, 우주까지 뻗어 나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방금도 눈치채셨나요? 바로 이 같은 상상을 통해, '완전 소심한 김치'가 '완전 엄청난 김치'가 되었다는 것을요. 우리는 소심한 김치의, 아니 아니 소심한 올리의 상상이 한껏 부풀려져 쏘아올리는 알록달록한 이야기의 공간 위에서 신나게 뛰어놀면서, 그동안 한껏 작게만 느껴졌던 나의 마음이, '나'라는 존재가 더 커다랗고 너르게 확장되는 경험을 합니다. 소심함으로 만나게 된 세상은, 더 이상 작기만 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얼마나 작은 마음일지라도 우주보다 더 커다란 상상을 피워올릴 수 있는, '완전 엄청난' 세계니까요.
너의 마음을 우리의 이야기로 품어내는
너른 시선과 다정한 손길
이처럼 누구나 품고 살아가는 작고 여린 마음들을 들여다보고 꺼내어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그림책 『완전 소심한 김치』는 세 작가의 마음을 포개어 다듬어졌습니다. 이상한 생각에 빠져들어 그 이상함을 재료 삼아 이야기를 만드는 강경호 작가와, 소심했던 어린 시절의 작은 추억들을 품어 어여쁜 씨앗을 틔워 낸 달다름 작가. 그리고 한 아이가 품은 소심함을 따뜻한 눈길과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림 위에 고스란히 녹여 낸 김혜원 작가까지. 작은 마음을 이토록이나 어여쁘게 보듬어 주는 세 사람의 커다란 심장이 만나 빚어낸 이야기의 세계에서, 우리는 우주보다 커다랗게 뜀박질하는 튼튼한 몸과 마음을 선물 받게 됩니다. 혹시 어느 날 문득 나에게도 역시 ‘완전 소심한 김치’가 조잘조잘 말 걸어오는 날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배시시 웃으며 떠올리겠지요. 너와 나의 작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들여다보며 너르게 펼쳐지던 시야를, 너르게 보며 가벼워지던 마음을 언제든 다시 기억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날들은 언제까지라도 ‘완전 엄청난’ 하루일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