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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역사를 만나다

조선인 강제동원 흔적을 찾아 떠난 오토바이 일본일주


  • ISBN-13
    979-11-5854-535-2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도서출판 학이사 / 도서출판 학이사
  • 정가
    17,5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11-11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우동윤
  • 번역
    -
  • 메인주제어
    아시아사
  • 추가주제어
    20세기, 1900-1999년 , 일본 , 여행가이드: 박물관, 역사적장소, 갤러리 등 , 여행가이드: 탐험여행 , 오토바이: 취미일반
  • 키워드
    #아시아사 #20세기, 1900-1999년 #여행가이드: 탐험여행 #여행가이드: 박물관, 역사적장소, 갤러리 등 #오토바이: 취미일반 #일본 #광복80주년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7 * 210 mm, 240 Page

책소개

 

일본 본토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조선인 강제동원 흔적을 찾아서

 

2025년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일본 전국에 흩어져 있는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을 찾아 직접 사진을 찍고 글로 기록한 책이다. 일본 규슈, 시코쿠, 혼슈, 홋카이도의 탄광과 댐, 철도 등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노동력으로 건설된 각종 시설과 희생자 위령비 40여 곳에 대한 생생한 해설과 사진을 담고 있다. 

 

목차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1일 차 _ 야하타제철소 / 다가와 석탄기념공원 / 미이케탄광 / 오무타 징용희생자 위령비

2일 차 _ 사타곶 

3일 차 _ 오코바역 

4일 차 _ 츠가댐 

5일 차 _ 고치현 가쓰라하마공원 사카모토 료마 동상 / 가메지마산 지하 공장터 / 한국·조선인 강제연행노동희생자 위령비

6일 차 _ 아마루베철교 / 철도공사중 순난병몰자 초혼비 /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순난의 비

7일 차 _ 노다터널

8일 차 _ 비너스라인 / 마쓰시로대본영

9일 차 _ 미야시타댐 / 오모시로야마코겐역

10일 차 _ 다자와호 히메관음상

11일 차 _ 오사리자와광산

12일 차 _ 하코다테 조선인 위령탑 / 다치마치곶

13일 차 _ 유바리 신령의 묘 / 유바리시 석탄박물관 / 탄광메모리얼삼림공원 / 오로롱라인 / 소야곶 / 기도의 탑

14일 차 _ 구 일본 육군 아사지노 비행장터

15일 차 _ 시레토코국립공원

16일 차 _ 삿포로 조선인 순난자 위령비

17일 차 _ 신니혼카이페리

18일 차 _ 마이즈루 붉은벽돌공원 / 단바망간기념관

19일 차 _ 도시샤대학 윤동주 시비 / 엔저 현상과 오버투어리즘

20일 차 _ 쇼와못 / 고베전철 부설공사 조선인 노동자의 상

21일 차 _ 고베항 평화의 비

22일 차 _ 고보댐·오도마리댐 /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23일 차 _ 긴타이교 / 이와쿠니 아타고산 지하 비행기 공장 / 조세이탄광 추도 광장 / 조세이탄광 피야

24일 차 _ 아키요시다이카르스트·츠노시마대교 / 간몬터널 / 똥굴동네

25일 차 _ 모지코

마무리하며

답사지 위치

본문인용

 

[머리말]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조선인 강제동원의 흔적들은 일본 본토 곳곳에 널리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자료를 수집하면서 알게 되었다. 어느 곳 하나 참혹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조선인 강제동원자들의 참혹했던 실상과 희생자들의 사연, 그리고 광복 이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이들이 일본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 이들의 고단하고 억울했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더 불타올랐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공부한 것이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 준비된 운명처럼 여겨졌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카의 말을 기억하면서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이 죽은 역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책이 저자의 개인적 분노 표현에 머물지 않고,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해 숙고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책 속으로]

 

 관부연락선은 1905년부터 일본 패전 때까지 무려 3천만 명 이상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정점은 중일전쟁이 발발했던 1937년이었다. 1937년부터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1945년까지 8년 동안 수송한 인원이 1905년부터 1937년까지 30년 넘게 수송한 인원의 3배에 달했다고 한다. 이 기간 수많은 조선 청년들이 군인과 위안부로 끌려가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지의 전쟁터에서 희생됐고 일본 전역의 탄광 등에 끌려가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조선인 강제동원의 시작이 바로 이 관부연락선이었던 것이다. 나는 식민지 조선 청년들의 한이 서린 그 항로를 따라 강제동원의 흔적을 찾는 한 달 동안의 일본일주를 시작했다. 

 

-p. 14,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중에서

 

 

 유네스코가 일본의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 23곳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한 것은 2015년이다. 이 가운데 군함도, 야하타제철소, 미이케탄광 등 7곳에는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가 뼈아프게 새겨져 있었던지라 한국의 거센 반발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의 유네스코 대사는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정보센터를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고 있음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p. 28, ‘1일 차-오무타 징용희생자 위령비’ 중에서

 

 

 높이 41m, 길이 145m의 츠가댐은 고치현에서 에히메현으로 전력을 보내기 위해 1941년 착공한 수력발전댐이다. 전쟁으로 공사가 지연됐다가 1951년 완공됐는데, 공사에는 수많은 조선인이 동원됐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댐 시공사인 호리우치구미가 정부 보고용으로 작성한 문서가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인부 6백여 명의 이름이 기록돼 있었다. 추정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조선인의 성에 글자 한 자를 더 붙여 일본식 이름으로 표기한 기록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씨 성 뒤에 ‘본’ 자를 붙여 김본(金本), 일본 발음으로 가네모토로 표기하는 식이다. 이처럼 창씨개명 수준의 명단 기록은 츠가댐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된 여러 자료에서 발견되고 있다. 

 

-p. 46, ‘4일 차-츠가댐’ 중에서

 

 

 이 초혼비는 누가 언제 세웠을까. 세운 지 수십 년은 돼 보이는 초혼비를 보니 궁금한 것이 하나둘씩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맴돌았다. 3년 동안의 공사 기간 중 희생된 조선인이 어디 7명뿐이겠는가. 아마루베철교 조선인 노동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위령비 앞 제단에는 색이 바래고 찢어진 상표가 붙은 익숙한 모양의 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한국산 소주병이었다. 상태를 보니 여기에 놓인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듯했다. 이 소주병을 두고 간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이국땅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을 가엽게 여긴 일본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나처럼 한국에서 온 참배객이었을까. 

 

-p. 67, ‘6일 차-철도공사중 순난병몰자 초혼비’ 중에서

 

 

 외교부의 『일본 속의 한국 사적』 간행물을 보면, 이 공사에 조선인 140명이 동원됐다고 적혀 있다. 인근 소학교 학적부에 조선인 전입생 47명의 명단이 있다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16세에서 50세 정도로 두꺼운 바위산을 뚫는 터널 공사를 모두 수작업으로 했다고 한다. 전쟁 말기 일본은 본토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면서 소개령을 내려 전국 각지의 무기 공장과 전쟁 시설을 지하로 옮기는 광기를 부렸고 노다터널도 그 광기의 산물 중 한 곳이다.

 

-p. 80, ‘7일 차-노다터널’ 중에서

 

 

 어둡고 습한 지하호를 따라 걸어가니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곡괭이로, 삽으로, 오직 사람의 힘만으로 파냈을 지하호의 거대함에 치가 떨리기도 했다. 모두 조선인들의 목숨을 담보로 만든 시설이 아닌가. 견학 코스가 끝나갈 때쯤 한자로 ‘대구(大邱)’, ‘대구부(大邱府)’라는 글자가 선명한 사진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지하호 어딘가에 새겨진 글씨를 사진으로 전시해 놓은 것이다. 대구에서 끌려온 누군가가 고향을 애타게 그리며 피눈물로 벽에 새긴 글씨, 이곳에서 내가 사는 대구를 볼 줄이야. 그 글자는 마치 번개처럼 내 가슴에 박혀 버렸다. 글자 너머 한 사람의 넋이 여기서 울고 있는 것이다.

 

-p. 84, ‘8일 차-마쓰시로대본영’ 중에서

 

 

 지금까지 만난 일본인들은 모두 내 여행에 큰 관심을 보이며 안전을 빌어주고 응원해 줬다. 민간 교류가 활발해져 두 나라 국민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가까워진다고 하더라도 한일 관계의 한계는 명확한 것 같다. 결국 매듭짓지 못한 과거가 발목을 잡아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도록 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 누가 언제 했는지 알 수 없는 이 말이 아직도 한일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비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p. 98, ‘10일 차’ 중에서

 

 

 일본이 밝힌 히메관음상의 공식적인 건립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공사의 영향으로 다자와호의 물이 급격하게 산성화되면서 대량 폐사한 토종 물고기를 위로하기 위해서, 두 번째는 오랜 옛날 호수 근처에 살던 여자가 영원한 아름다움과 젊음을 갈구하다가 다자와호를 지키는 히메관음이 됐는데 공사로 다자와호가 더럽혀졌으니 히메관음에게 사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20여 년 전 재일교포 미술수집가인 하정웅 선생이 인근 사찰에서 히메관음 건립 취의서를 발견하면서 이 같은 설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1939년 작성된 건립문에는 공사 도중 숨진 조선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히메관음상을 세웠다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p. 100, ‘10일 차-다자와호 히메관음상’ 중에서

 

 

 홋카이도의 탄광으로, 비행장과 댐 건설 현장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일본 본토보다 훨씬 더 가혹한 노동 환경에 내몰렸다. 고 박경식 선생의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에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5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이 홋카이도로 끌려가 유바리탄광, 비바이탄광 등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고 기록돼 있다. 노동 환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혹했던 만큼 사망률도 높아 1942년 기준으로 일본 전체 탄광의 조선인 노동자 사망률은 0.9%인 데 비해 홋카이도 지역 탄광은 2.1%를 기록했다고 한다. 

 

-p. 111, ‘11일 차-오사리자와광산’ 중에서

 

 

 댐 옆에 세워진 추도비 뒷면에는 조선인이 연행됐다는 표현과 잔혹한 식민지배에 반성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번 일본일주에서 본 문구 중 가장 직접적인 사과의 표현이다. 강제로 끌고 갔다는 뜻의 ‘연행(連行)’이란 표현도 처음 봤다. 추도비는 히로시마 교직원 조합, 피폭 피해자 모임, 지역 고등학생 동아리 등이 힘을 모아 1995년에 세웠다. 히로시마는 원자폭탄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곳으로 일본에서도 반전, 평화운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기 때문에 이 같은 사과와 반성의 표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p. 198, ‘22일 차-고보댐·오도마리댐’ 중에서

 

 

 추도광장에서 1km쯤 떨어진 바닷가에 가면 해수면 위에 솟아있는 원통형 구조물 두 개가 보인다. 해저 환기 시설, 그러니까 탄광 노동자들의 숨구멍이었던 피야라는 시설이다. 피야 아래의 바다 밑에는 아직 183명의 유해가 묻혀 있다. 두 나라 정부가 침묵하고 있는 사이 ‘역사를 새기는 모임’을 필두로 두 나라 시민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았고 유해 발굴을 위한 기초 조사를 광복 79주년인 2024년에 시작했다. 

 

-p. 212, ‘23일 차-조세이탄광 피야’ 중에서

 

 

 간몬터널은 1939년 착공해 1958년에 완공됐다. 입구 옆에 세워진 ‘간몬터널 건설의 비’는 공사가 늦어진 이유를 ‘우연히 발생한 전쟁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연히? 그 전쟁을 누가 일으켰나? 

 

-p. 219, ‘24일 차-간몬터널’ 중에서

 

서평

 

일본 내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 답사기

한 달 동안 오토바이로 6,107km 달려

 

『길에서 역사를 만나다-조선인 강제동원 흔적 찾아 오토바이로 일본일주』는 2025년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일본 전국에 흩어져 있는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을 찾아 직접 사진을 찍고 글로 기록한 책이다. 일본 규슈, 시코쿠, 혼슈, 홋카이도의 탄광과 댐, 철도 등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노동력으로 건설된 각종 시설과 희생자 위령비 40여 곳에 대한 해설과 사진을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일제강점기 조선과 일본의 유일한 바닷길이었던 관부연락선 항로를 따라 일본에 도착한 뒤 한 달 동안 오토바이로 6,107km를 달리며 일본 전국 방방곡곡의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을 답사했다.

 

특히, 1901년 조선인 150여 명이 동원돼 일본 철도공사 최초의 조선인 동원 사례로 알려진 구마모토현 히사츠선의 오코바역과 1909년 건설 당시 일본 최대 높이의 철도 교량으로 조선인 3천여 명이 동원됐던 효고현의 아마루베철교 등 그동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을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또,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의 간몬터널과 아키타현의 다자와호 히메관음상 등 일본이 조선인 강제동원의 진실을 은폐, 왜곡하고 있는 현장도 기록했다.

 

책에서는 조선인 강제동원이 단지 전쟁 수행을 위한 일본의 만행이었다는 인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일본이 중일전쟁을 계기로 1938년 제정한 국가총동원법 이후 조선인 강제동원이 무차별적으로 자행됐기 때문에 전쟁 당시가 부각됐을 뿐, 조선인 강제동원은 1910년 불법적인 한일병합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한일병합 훨씬 이전부터 일본은 치밀한 계획 아래 조선의 경제를 침탈했고, 그 결과 경제 기반이 무너진 조선에서 자국 근대화를 위한 노동력을 확보했다. 그 흔적과 증거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독자들이 강제동원 현장과 위령비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부록에 답사지의 위도와 경도를 표기하였다.

 

저자는 “광복 이후 80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여전히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왜곡과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발전적인 미래 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으로 이번 일본 일주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저자 우동윤은 올해로 20년째 KBS대구방송총국 보도국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20년부터 사진기록연구소 회원으로 다양한 기록 작업에 참여하였다. 2022년 ‘대구청년보고서’로 첫 개인전을 가진 뒤 지금까지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섯 번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개인 사진집 『대구청년보고서』를 펴냈고, 『군위』, 『228×二二八』 등의 사진집 출판에도 참여했다.

 

저자소개

저자 : 우동윤
1974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부터 KBS대구방송총국 보도국에서 기자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2018년부터 다큐멘터리 사진 공부를 시작, 지금은 사진기록연구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 번의 개인전과 다섯 번의 단체전을 열었으며 개인 사진집 『대구청년보고서』를 펴냈고, 합동 사진집 『군위』, 『228X二二八』 등의 사진집 출판에 참여했다.

한국 사회와 사람은 물론 현재의 한국 사회를 있게 한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 보니 근현대사에 흥미를 갖게 됐고 특히 일제강점기 전후의 한국과 일본 역사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주제로 한 사진 기록 작업을 이어가려고 계획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왜곡과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54년 대구에서 창립한 종합출판사.
문학·인문·사회·교양·아동·실용 등 모든 장르의 종이책과 전자책을 출간한다. 학이사(學而思)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論語》)’에서 따온 이름으로, 이 말을 기업 정신으로 삼는다.
제37회 ‘한국출판학회상–기획·편집’ 부문을 수상했으며, 아동도서 브랜드 학이사어린이가 있다. 지역독서운동을 위해 학이사독서아카데미와 책으로 노는 사람들, 전국 지역출판사 책을 대상으로 하는 서평쓰기 대회 사랑모아독서대상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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