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에 점점이 빛나는 여러 이야기와
별들 사이에 떠오른 환상적인 우주 음식들의 만남
주의
두 음식의 조합은 독성물질을 생성합니다. 그래도 만드시겠습니까?
재료
정말로 만드시겠습니까?
요리법
살인자 자식.
찬란한 별들이 수놓인 우주에는 그만큼 무수한 이야기가 부유하고 있다. 지구 시대를 지나 우주 시대가 도래한 세상에서, 행성과 행성을 오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러모으는 사람이 있다. 요리 비평가이자 요리사인, 이 소설의 주인공 ‘오멜레토 컴보’다. ‘컴보’의 우주선은 우주를 항해하며 장場이 서는 날마다 특정 행성에 우주선을 착륙시키고 문을 개방한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빛나고 손님들로 북적이는 수많은 우주선들 틈에서 ‘컴보’의 우주선은 허름하기 짝이 없고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그의 우주선에서 풍기는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손님들의 발걸음을 단번에 잡아끈다.
‘아지즈 샤리’도 그렇게 이끌려 ‘오멜레토 컴보’의 우주선에 발을 디뎠다. 이미 두 차례나 술집에 들러 취기가 오를 대로 오른 ‘아지즈’에게 ‘컴보’는 주문하겠느냐고 묻는다. 고향 별을 떠나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늘 이방인 취급을 받던 ‘아지즈’는 자신에게 친절한 ‘컴보’의 태도에 한 번, 메뉴판에 덩그러니 적힌 유일한 메뉴에 또 한 번 놀란다. 메뉴 이름이…… ‘아무거나’였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무심하면서도 자극적이란 말인가. 재료만 있으면 손님이 원하는 요리는 무엇이든 만들어주고 추억의 음식을 복원도 해준다는 ‘아무거나’의 가격은 10T(저렴한 칵테일 한두 잔 값)였다. 방랑자가 많은 “우주에서는 비싼 건 위험하지만 싼 건 더 위험하다.” 위협을 느끼고 급히 우주선을 벗어나려던 ‘아지즈’는 ‘컴보’의 제안을 듣고 우뚝 멈춰 섰다. 메뉴가 저렴한 대신 ‘조건’이 있는데, 그 조건이란 음식과 얽힌 손님의 ‘사연’을 들려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대접의 조건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라니. ‘아지즈’는 더 의문스러웠다.
‘오멜레토 컴보’는 이처럼 손님들에게 은밀한 조건을 내걸었다. 말 한마디로 한 노인의 삶을 파멸시킨 ‘루카 나이트’에게, 죽음을 나누는 다이버들과의 삶을 마무리하고 술 한잔하는 것으로 모험을 즐기는 ‘퍼트리샤 시머’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 여자 친구에게 매번 이별 통보를 당하는 ‘에스칼 포르스카푸스’에게. 그리고 그들이 주문한 음식 레시피를 노트에 적었다. 자, 여기까지는 여느 심야 식당의 훈훈한 이야기 같다. 그러나 ‘컴보’의 레시피를 들여다보면 ‘아무거나’ 속에 감춰진 진짜 비밀을 알 수 있으리라. 어쩌면 한 명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컴보’의 음식을 먹은 ‘퍼트리샤’는 그가 음식에 의도적으로 수면제를 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지훈’은 한때 제 상사였던 ‘컴보’의 냉동창고로 가 식재료들에 스캐너 침을 찔러 넣었다. 시간이 흘러도 자신을 어리게만 보는 ‘컴보’의 거만한 표정에 의기소침해진 ‘지훈’은 이상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차례 식재료들을 꺼내 보았다. 그런데 일곱 번째로 스캐너 침을 꽂은 순간,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
사라진 아내를 찾아 항해하는 요리사와
잃어버린 추억을 찾아 방랑하는 손님들의 만남
“사랑했던 이를 위해 죽음을 택한다니.”
“‘사랑했던’이 아니라 ‘사랑하는’일세.”
“아직 늦지 않았네.”
“늦지 않았기에 이렇게 하는 거야.
자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요리라네.”
우주선에 홀로 남은 ‘오멜레토 컴보’는 ‘지훈’을 떠나보낸 뒤 ‘펜 피’라는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제는 때가 되었음을, 자신이 설정한 ‘타임 리미트’에 가까워졌음을 알렸다. ‘펜’은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라며 ‘컴보’를 말렸으나, ‘컴보’는 단호했다. 이 순간을 위해 끝없는 우주를 해항해왔으므로. 그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란 ‘죽음’이었다. ‘컴보’가 지금껏 손님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며 우주를 항해한 이유는 단 하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찾기 위해서였다. 서로의 인생에 있어 “긴 정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디저트”가 되기로 약속했던 ‘컴보’와 ‘자비 라군’의 결혼 생활은 갑자기 들이닥친 사건으로 순식간에 망가졌다. ‘컴보’는 ‘자비’가 떠나기 직전 남긴 말을 되뇌었다. “죽은 생물의 몸을 먹는 게 즐거워?” ‘자비’는 어째서, 그런 의문을 남기고 홀연히 가버린 걸까.
‘오멜레토 컴보’는 무작정 행성들을 돌아다니기보다, 저마다의 행성에서 온 손님들의 이야기에서 아내에 대한 단서를 찾기로 했다. 실제로 손님들의 사연에서 ‘자비 라군’의 흔적을 발견했다. ‘컴보’가 기억하던 ‘자비’의 모습과 정반대의 소식뿐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전직 군인이었던 ‘자비’는 누군가의 아내로서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무한한 심연에 가라앉기를 선택했다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를 선택하는 등 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주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던 ‘컴보’를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게 바라봤던 ‘자비’를 떠올리며, ‘컴보’는 결심했다. 자신이 찾아낼 수 없다면, ‘자비’가 찾아오게 만들겠다고 말이다.
마침내 ‘오멜레토 컴보’와 ‘펜 피’의 앞에 최후의 만찬이 놓였다. 둘이 받은 음식은 의심할 것 없이 별미임이 틀림없었으나, ‘컴보’의 음식에는 독이 들어 있었다. ‘컴보’와 ‘펜’이 마지막 건배를 나누고 삼십 분 뒤, ‘컴보’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펜’은 ‘컴보’를 관에 옮기고 그의 머리에 전극을 붙였다. “어때, 들리나?” ‘펜’의 물음에 ‘컴보’의 생각을 읽은 컴퓨터 음성이 대신 답했다. “어어, 그래. 잘 들리는군.” 미룸 장례를 택한 ‘컴보’는 장례식이 끝나고 우주로 쏘아 올려질 무렵 완전히 숨이 끊길 것이다. 과연, ‘자비 라군’은 장례식에 올 것인가? 그리고 ‘컴보’는 수명을 다한 별처럼 존재를 감추려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