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근현대사 역사와 추억이 응집된 공간, 산복도로
오래된 마을에 필요한 것은 도시재생이 아니라 애정 어린 ‘관심’이다
언덕을 따라 집들이 촘촘하게 자리한 장관으로 유명한 부산 관광지 감천문화마을과 영도 흰여울문화마을. 이곳들은 부산에 자리한 수많은 산복도로를 대표하는 마을이다. 산허리에 만들어진 도로를 의미하는 ‘산복도로’. 부산 사람들은 지형과 역사를 통해 탄생한 산복도로야말로 진짜 부산이라는 지역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풍경이라 말한다.
산복도로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이루며 마을이 만들어졌고, 산업화 시대에는 노동자들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며 부산의 근현대 역사를 함께 헤쳐온 공간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산복도로를 도시재생의 관점으로만 바라본다. 새로운 시설을 짓고 낙후된 환경을 바꾸어 관광지화 하겠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기자로 일하며 산복도로 마을과 도시재생을 취재하던 저자들은 문득 의문을 떠올렸다. ‘산복도로 마을에 진짜 필요한 것이 과연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새로운 건물일까?’ 관심을 갖고 유심히 바라보니, 전혀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들이 바라본 산복도로는 부산의 근현대사를 살아낸 산증인들이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살아 가는 공간이었다.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인 순간, 저자들은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숨은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산복도로’라는 공간에 관심을 가지며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러한 애정과 관심을 기반 삼아 마을에는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공간과 시설의 개발에 앞서, 그 마을이 품은 역사와 삶에 더 관심을 기울어야 하는 이유다.
수많은 미디어가 범람하는 이 시대, 지역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역의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전달하는 이야기꾼!
사람들은 이제 신문을 잘 읽지 않는다. 정보와 미디어의 범람 속에서 기사를, 그것도 사람들의 관심이 덜한 지역의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은 무엇일까?
사건, 사고나 이슈가 아니라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스며들고 지역과 소통하는 산복빨래방이라는 방식은 단연 신선하다. 지역에 깊숙이 스며들기까지의 고군분투, 그곳에서 만난 부산 사람들의 삶과 역사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가 의미를 갖는 것은 가장 ‘부산스럽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잘 엮어 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저널리즘은 무엇인지, 지역 언론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또 콘텐츠를 생산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이 시대 많은 미디어에게 미디어의 궁극적인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지 시사점을 던진다. 지역의 삶을 충분히 이해하고 경험한 지역 언론인들이야말로 지역의 숨은 콘텐츠와 이야기를 독자에게 가장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이야기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