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민주주의 시대,
탄핵에 관한 최고의 안내서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선언으로 대통령 탄핵이 확정되었다. 연인원 1,700만 명이 모인 촛불집회의 민의를 반영한 결과였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또다시 탄핵을 입에 올리고 있다. 대통령의 운명을 놓고 한쪽에서는 탄핵으로 위협하고, 다른 쪽에서는 탄핵은 사기라고 방어한다.
비단 우리의 현실만 그런 것도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탄핵은 정치의 일상적 수단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는 첫 번째 대통령 임기 4년 동안 두 차례나 탄핵소추되었다. 2024년 11월 대선에 출마한 트럼프가 러닝메이트로 충성심이 강한 J.D. 밴스 상원의원을 지명한 것도 탄핵 대비용 인선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앞서 중남미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2016년 8월 탄핵당했고, 페루 또한 2020년에는 비스카라, 2022년에는 카스티요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이밖에 칠레, 알바니아, 우크라이나, 체코, 우루과이, 리투아니아, 인도네시아 등 탄핵 정치가 펼쳐진 나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바야흐로 탄핵 민주주의의 시대다.
그렇다면 탄핵은 과연 민주주의에 득일까, 실일까?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는 정치 현장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지켜본 경험에서 비롯된 저자의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책이다. ‘왜 한 번은 실패하고 한 번은 성공했을까’, ‘탄핵이 민주주의에 끼치는 영향은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하는 고민을 담은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이 단순히 탄핵 찬반을 넘어 탄핵 이슈에 대해 좀 더 넓고 깊게 바라보면서 신중하고 균형 있게 접근하기를 제안한다.
탄핵의 명운을 가르는
탄핵의 법칙을 낱낱이 파헤치다!
대통령 탄핵은 대통령이 중대한 잘못을 했을 때, 임기가 끝나기 전 대통령직에서 강제로 물러나게 하는 제도다. 이 탄핵제도는 군주정 시기 영국에서 의회가 국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시작되었다. 태생부터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제도였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대통령제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진화해 오늘날의 형태에 이른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탄핵제도가 본질적으로 ‘법적 성격을 가진 정치적 절차’라고 강조한다. 오로지 의회만이 탄핵소추에 나설 수 있고, 탄핵 사유가 포괄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탄핵 사유를 명료하게 규정할 수 없는 탓에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로널드 레이건 등은 역사상 위법으로 볼만한 미국 대통령의 행위가 있었음에도 모두 탄핵을 피해 갔다. 반면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 소추되었는데, 해당 예시를 통해 저자는 탄핵제도의 정치적 속성을 낱낱이 드러낸다.
이러한 정치적 속성을 바탕으로 한 탄핵은 스캔들과 경제 상황, 의회의 당파적 배열, 대규모 시위 여부, 대통령 리더십, 민주적 자산 등 각종 정치적 배경 요소에 의해 그 명운이 갈린다. 따라서 탄핵 이슈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저자가 제시한 여러 요소를 상세히 검토해봄으로써 어떻게 하면 탄핵에 성공하고, 어떻게 하면 탄핵에 실패하는지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한 탄핵과 실패한 탄핵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탄핵에 관한 전 세계 연구자의 이론과 해외 사례를 살펴본 저자는 두 개의 장에 걸쳐 한국의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례를 상세히 비교·분석한다. 두 차례의 탄핵은 모두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일 때, 여소야대일 때, 대통령이 국회와 대립할 때 발생했다. 하지만 결과는 서로 달랐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결과 한 명은 청와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은 탄핵당해 청와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2017년 민주주의 이력 30년에 불과했던 나라에서 대통령이 탄핵으로 쫓겨난 것이다. 두 탄핵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그 나라 민주주의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 이후 대통령 탄핵이 두 번이나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 핵심 퍼즐 역할을 한다. 두 번의 탄핵 경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유의미한 질문을 던져준다. 탄핵은 왜 일어났는가? 탄핵의 주요 행위자는 누구이고, 탄핵 사유는 무엇인가? 왜 실패하고, 왜 성공했나? 탄핵은 어떤 효과를 낳는가? 질문의 맥락과 답을 찾는 과정에서 성공한 탄핵과 실패한 탄핵을 가르는 결정적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다시, 탄핵의 길에서
대통령 탄핵의 성패와 무관하게 탄핵으로 말미암은 정치적 변화는 엄청났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사상 초유의 의회 권력 교체라는 대변혁을 낳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거대 정당의 분열 등 정계 개편과 조기 대선 및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 외에 부작용도 컸다. 정치적 양극화, 정치 보복의 악순환, 혐오 민주주의가 극심해져 진영 대결이 고착화되었다. 정당과 그 지지자로 하여금 주요한 사회적 갈등과 어젠다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다시금 한국 정치는 탄핵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의 독선과 낮은 인기, 영부인과 채 상병 사건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 대형 스캔들로 비화할 수도 있는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의 등장, 과반을 크게 웃도는 야권의 의석 점유율, 특검과 탄핵 청문회에 대한 여야 간의 날 선 대치,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 등 한국 민주주의는 탄핵 정치의 한복판에 서 있다. 탄핵은 과연 민주주의를 지키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도리어 위태롭게 만들어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수단이 될까?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강조한다. “탄핵은 다른 방법이 다 통하지 않을 때 아주 조심스럽고 절제된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탄핵은 민주주의를 구원하는 천사가 될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악마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