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서양정치사상과 만국공법, 진화론과 사회사상, 서양윤리학과 서양철학사상, 서양과학의 유입이 유교사상의 이론적 지평에 어떤 변화를 불러 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서양근대정치사상과 서양철학사상에 대한 반성을 통하여 유교 전통의 현대적 의의를 성찰하는 방향에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양정치사상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 인권, 평등 등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만국공법』으로 대표되는 보편적인 법사상의 수용을 중심으로 한다. 또한 서양사상 중에는 사회진화론과 사회사상, 무정부주의 사상이 근현대 시기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만큼, 유학사상과의 연관성을 가지고 논의할 수 있는 중요한 맥락이 있다. 서양철학사상으로는 서양윤리학, 서양심리철학,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와 헤겔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고대 및 근대철학을 포괄하고 있다. 본서에서는 이처럼 서양에서 유입된 여러 사상적 조류가 전통 유학사상과 만나고 융합하며 변화되어 가는 양상을 검토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기준에 따라 내용을 정리하였다
첫째는 서양사상 수용 시기 신학新學·구학舊學 논쟁의 과정과 유교개혁론을 주제로 하여 신학·구학 논쟁의 배경과 유학의 본질적 특성을 검토하고, 이어서 서양사상 수용시기에 유교개혁론의 여러 양상과 유교종교화론에 관한 논의를 살펴볼 예정이다. 둘째는 서양정치사상과 만국공법을 중심으로 하는 법사상을 수용하는 과정과 그 파급 효과를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 서양정치사상의 수용과 유학의 대응, 서양민주주의에 대한 유학의 비판적 인식, 유학의 『만국공법』에 대한 주체적 수용 및 변용과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 셋째는 진화론의 수용과 무정부주의 사회사상 수용 과정에서 유학사상과의 만남과 융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규명하였다. 여기에서 진화론의 재해석을 통한 유학의 자강운동론, 유학과 서양사회사상과 무정부주의의 융합과 같은 주제가 논의되었다.
넷째는 서양윤리학과 서양철학사상의 수용과 전통 유학과의 융합과 변용이라는 주제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 분야에서는 유학사상과 서양철학의 지평 융합과 사상적 전환을 주제로 하여 서양고대철학사상과 유학의 지평 융합, 데카르트René Descartes(1596~1650), 칸트, 헤겔, 베르그송 등 서양 근대 및 현대철학에 대한 이해와 유학사상의 융합, 유학사상과 근대인식론의 만남 등의 주제를 살펴보았다. 이어 서양윤리학이 전통 유학사상과 어떤 의미론적인 연결성을 갖는가를 해명하였다. 특히 서양윤리학은 수용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목적이 구분되었다. 민족주의적 독립을 추구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서양윤리학을 자강과 독립을 위해 받아들였다면, 일제 통감부는 국민의 책무의 하나로 수용하였다. 다섯째는 서양의 문명(civilization) 개념을 수용한 여러 양상과 서양과학을 수용한 과정을 해명하였다. 세부 주제로 격물치지 개념의 재해석과 격치학에 대한 해명을 통한 유학과 서양과학의 만남을 규명하였다.
제5권에서 서양사상이 수용되는 과정과 내용을 검토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서양사상 속에 내포되어 있는 철학적·가치론적 정신적 요소와 물질적·실용적 요소를 구분하고 이를 목적적 측면과 수단적 측면으로 구별하는 것이다. 서양문명에서 이 두 가지를 구별할 때 전통 유학사상과 만나면서 이루어지는 상호 간 융합과 변용의 양상을 보다 명료하게 규명할 수 있다. 유학사상에서 이 두 가지 요소에 상하의 위계가 있다면, 서양사상에서는 이 두 가지가 수평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양 근대문명과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가 이러한 실용적 목적에 기반하여 인문적·도덕적 가치를 설정하기 때문이다. 이제 동서문명이 만나면서 충돌을 일으키고 융합되면서 변용과 전환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서양문명이 지니고 있었던 힘의 본질이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를 아래 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