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특징: 『조선을 떠나며』의 자매편
이 책은 2012년 역사비평사에서 출간해 큰 반향을 일으킨 『조선을 떠나며』의 자매편으로 기획되었다.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라는 부제를 가졌던 전작과는 반대로, 이번에는 조선에서 해외로 강제 동원되었거나 거류했던 사람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고 생존하는 이야기다. 이른바 귀환자들이 해방된 조국으로 귀환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조국의 거친 현실은 참으로 엄혹한 것이었다. 지은이 이연식은 해방 조선의 민낯과 비정한 사회 분위기에 대해 당시 자료를 바탕으로 30여 개의 에피소드 속에서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기획과 집필의 연속성과 참신함을 인정받아 〈2024년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사업 선정작〉에 뽑히기도 했다.
해방 조선의 민낯과 비정한 조국
그 속에서 역(逆) 디아스포라의 서사를 펼치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혹은 이주 그 자체”를 뜻한다. 한마디로 “타국 살이”, “타국으로의 이주”다. 반면 이번 『다시 조선으로』에서 지은이가 향하는 시선은 바로 그 타국 살이를 끝내고 원래의 본토로 돌아가는 자들의 행로와 마음을 향한다. 이른바 ‘역 디아스포라(reverse diaspora)’의 드라마다. 거기에 조국이라는 미명의 공동체가 있었으나, 동시에 그곳은 싸움질만 하는 아수라, 제 욕심만 부리는 아귀, 못된 악업만 쌓는 축생들의 도가니이기도 했다. 해방 직후 약 1,600만 명이 살던 남한, 불과 1~2년 만에 약 100만 명의 일본인이 돌아가고, 약 250만 명의 귀환자와 초기 월남인이 유입되었으니, 이것만으로 이미 엄청난 변화였다. 따라서 아직 공동체로서의 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해방된 조국’은 지독한 사회적 모순만 드러내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지구 곳곳에서는 돌아오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쌍방향’ 이동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동시다발로 나타났다. 즉 어느 곳이든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새로운 국민국가, 즉 공동체 건설과 사회적 통합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대두하였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대규모 인구이동을 경험한 지역이나 국가라면 예외 없이 안게 된 공통된 문제이기도 했다.
해방 조선의 민낯과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
책의 앞부분에서는 고생 끝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왔으나 기대와 달리 해방의 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남한 사회를 마주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다뤘다. 먹고살기 위해 사창가로 모여든 여성들, 주린 배를 채우고자 식량 창고를 터는 사람들, 옷차림과 말투가 달라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어린이들, 노점상을 시작했지만 기존 상인의 텃세와 폭력배의 갈취로 맘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끝도 없이 밀려드는 유입자들로 인해 집, 쌀, 일자리 등이 줄어들자 이내 싸늘하게 식어버린 기주민旣住民(host society)들의 따가운 시선 등을 소개했다.
또한 남한으로 돌아오는 조선인과 이곳을 떠나가는 일본인의 미묘한 관계에, 이들을 관리 감독하던 미군정까지 포함하여, 이 3자 간의 동상이몽을 살피기도 했다. 그와 함께 일본에서 주류 사회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가족과 식민 지배 말기에 강제 동원된 사람들의 귀환 과정을 대비함으로써 이동하는 집단 안에도 굉장히 다양한 차이와 균열이 존재했음을 밝히고 있다.
들끓는 욕망의 해방 공간
특히 이 책의 3장은 일본인의 송환과 유입되는 조선인의 수용 국면에서 미군정의 잘못된 판단과 실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생하였는지를 다루고 있다. 구 일본인 재산의 섣부른 처리가 각종 편법을 동원한 투기와 사재기를 조장하고, 그 속에서 사복만 채우려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자극하게 된 과정을 소개했다. 이것은 단순히 부의 편재를 심화할 뿐만 아니라 남한 사회의 체질을 왜곡시켜 장기간에 걸쳐 후유증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 구조적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해방 공간에서 비리의 온상이자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된 고급 요정에서 벌어진 사건들도 소개했다. 특히 조선 제일의 명기들이 가득하다는 고급 요정의 상징인 명월관의 포르노 상영 사건이 몰고 온 엄청난 사회적 후폭풍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이들이 한사코 구 일본인 소유 가옥의 공익적 활용에 반대하고 요정과 유곽을 집 없는 귀환자, 월남민, 도시 빈민에게 개방하자는 사회적 요구를 애써 외면한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했다.
비정한 조국의 냉대와 인구이동의 현상, 그리고 남는 문제들
마지막 장에서는 각 장에 등장한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해방 공간에서 각기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주로 구 일본인 소유 가옥을 비롯해 고급 요정 및 유곽의 개방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비난 여론에 떠밀려 미군정이 졸속으로 추진한 가주택 건설과 귀농 알선 사업의 결과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해방 후 남한으로 돌아오거나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 급기야 남한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에 실망한 나머지 어렵게 돌아온 길을 되짚어 만주로, 일본으로 다시 떠나가는 뒷모습을 다뤘다. 끝으로 이러한 해외 귀환자 및 월남민의 유입과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지역에서는 정도와 맥락의 차이는 있지만 글로벌한 현상이었다는 점을 부기했다. 이를 통해 해방 후 귀환자와 월남민의 유입이라는 역사적 현상을 세계사적인 견지에서 생각해 봄으로써 전후 인구이동이 지닌 다양한 역동적인 특징들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본문에서 다루지는 않았으나 전후 인구이동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을 정리했다. 남한으로 돌아온 사람들과 달리 해방 후에도 여전히 타지에 ‘남은 자, 남겨진 자, 돌아오지 못한 자의 그림자’를 다뤘다. 즉 해방 후 왜 ‘60만 명’이나 되는 ‘재일동포’가 모국 귀환을 단념하게 되었는가, 또 그로부터 10여 년이나 지난 시점에 약 10만 명에 달하는 재일동포가 남한에 연고를 두고 있으면서도 북한으로 가게 되었는가(귀국 운동ㆍ북송 문제), 그리고 해방 후 최초의 귀국선이 될 수도 있었던 우키시마호가 침몰된 후에 제대로 된 진상 조사나 사후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 등을 소개했다. 아울러 미군 점령 지구의 귀환 환경과는 전혀 달랐던 소련 점령 지구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반세기 이상 집단 억류 상태에 있었던 ‘사할린 한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