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으로 삶과 세상을 잇는 인스타툰의 세계
그림 밖으로 나온 네 작가의 만남
여기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네 사람이 있다.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이제는 엄연히 그 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 세상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유쾌하게 혹은 담담하게 담아내는 인스타툰 작가 김그래, 쑥, 작가1, 펀자이씨가 만났다.
인스타툰은 ‘인스타그램(Instagram)’과 ‘웹툰(Webtoon)’의 합성어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열 장 내외의 만화를 일컫는다. 인스타툰은 쉬운 접근 방식, 짧은 분량, 친근하고 일상적인 주제로 웹툰이나 만화책만큼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사람들은 정사각형 크기의 그림을 옆으로 넘기며 어느 날은 깔깔 웃다가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작가와 자신의 내면을 들여보다가 깊은 위로를 얻기도 한다.
네모난 프레임에서 캐릭터의 입을 빌려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 공감과 토닥임을 선물하는 세계. 그 세계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에서 출발한 『일상이 장르』는 인스타툰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네 명이 만나 자신이 인스타툰이라는 무대를 어떻게 채워나가는지, 그 무대 뒤에서는 어떤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각기 다른 그림 스타일과 문체를 가진 네 명의 작가가 한 권의 책에 담은 수많은 이야기는 그들이 그간 보여준 인스타툰 밖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더 특별하다.
도망치듯 떠난 일본에서 올리기 시작한 짧은 만화 일기를 시작으로 그림 그리는 일이 업이 되었다는 김그래, 퇴사 후 멍하니 누워 있다가 그림 에세이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어서 인스타툰 작가가 되었다는 쑥,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부당한 일을 당한 후 홧김에 올렸던 만화가 많은 사람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여성을 위한 그림을 그려왔다는 작가1,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인스타그램에 연필로 그린 그림을 올리기 시작하며 제2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펀자이씨까지. 네 사람은 스스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생의 경로를 밟아 인스타툰의 세계에 정착했다. 그리고 각자의 캐릭터, ‘그래’ ‘무명’ ‘기린’ ‘펀자이씨’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1,634. 318. 522. 934. 이 숫자들은 네 사람이 각각 세상에 내보인 그들의 글과 그림 개수이다(출간일 기준). 팔로워 0, 게시물 0으로 시작해 홀로 자신의 창작물을 보았던 그들은 이제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상과 소통하고, 차곡차곡 삶 속 장면들을 펼쳐내고 있다.
“그림 뒤에 사람 있어요!”
작업자와 생활자 사이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 살고 싶은 마음 사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서
네 작가는 『일상의 장르』에서 그림 뒤에 숨겨져 있던, 자신이 거쳐온 다양한 삶의 층위를 보여준다. 자기 자신과 자신이 만든 캐릭터 사이에서 생기는 괴리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풀어놓고, 독자들과의 소통과 만남으로 힘을 얻어 인스타툰 연재로 긍정적으로 변한 삶을 회고하기도 한다. 한편, 인스타툰의 수익화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받은 피드백을 수용하는 일과 낯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헤맸던 시행착오도 솔직하게 담았다. 주로 일상을 다루는 작가로서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현실을 각자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언제, 어느 때에 영감을 받을까. 선명한 행복의 순간이나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기록하지 않을까? “돌아보면 일상 속에 어느 정도의 난관이 있었을 때 오히려 열심히 쓰고 그렸던 것 같다.”(펀자이씨)라거나, 만화를 그리는 일이 “어려운 마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도피처이자 불안을 해소하는 수단이 되었다.”(김그래)라고 고백하는 목소리를 듣다 보면 쓰고 그리는 일이 그들에게 그저 일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수단임을 알 수 있다.
글과 그림이 곧 삶인 이들에게는 인생의 순간들을 잘 보내는 일도 무척 중요하다. “몸과 마음은 챙기지 않으면 금세 부서진다”(쑥)는 말처럼, 네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건강하게 일하고 또 삶을 영위하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인다. 굽어가는 허리를 펴고 잃어가는 사회성을 되찾기 위해 피티(퍼스널 트레이닝)를 등록하고, 나만을 위해 요리하며 정성껏 한 끼를 챙긴다. 신나는 2010년대 노래를 들으며 간헐적으로 달리고,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을 내밀하게 기록하며 웃는 것으로 시름을 잊는다.
일상툰, 넓게는 인스타툰 작가들에게 일과 일상은 분리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일과 일상이 섞여버린 지 오래된 네 사람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일과 삶 사이 균형 잡는 법의 실마리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로맨틱 코미디, 내일은 청춘 성장물
지금 당신의 장르는 무엇인가요?
“내 삶의 장르가 시트콤이라 생각하면 두렵거나 힘든 일도 다음 에피소드를 위한 재료로 여겨졌다. 현실에서는 마무리되지 않은 일도 이야기로 만들면 결말을 지어 떠나보낼 수 있었다.”(펀자이씨)
만학도 엄마가 대학교에 간 이야기, 자신만 믿고 한국에 온 태국인 배우자와의 우당탕 국제결혼기, 강아지 두 마리와 서서히 가까워지는 관계의 서사, 영감을 찾아 계속 걷고 도서관 서가를 서성이는 여정 등. 네 사람이 삶에서 마주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이 책을 위해 직접 그린 미공개 만화와 함께 담았다.
네 작가는 일상 속 순간을 포착하고, 그림을 그리며, 독자에게 사랑받고,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 속 기쁨을 만끽하고 슬픔도 극복했다고 고백한다. 이렇듯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지극히 일상 속 한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일상의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순간, 그 조각들은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 이야기의 장르는 우리가 정하기 나름이다. 네 작가가 보여준 삶 속 장면들을 통해 자연스레 내 삶에서 기록하고픈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를 통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이야기를 발견하는 데 이 책은 기꺼이 느슨하고 다정한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