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애덤스 이야기』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와 함께
헤밍웨이의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헤밍웨이의 작품과 삶, 사상에 대해
이 작품보다 더 잘 소개할 수 있는 책은 없을 것이다.”
- 『미니애폴리스 트리뷴』
현대문학의 개척자, 헤밍웨이의 문학적 분신 ‘닉 애덤스’
전쟁, 자연, 죽음, 사랑 그리고 소설에 관한 치열한 탐구
고투하는 인간의 치열한 정신, 그리고 삶과 죽음의 숭고함을 그려내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 헤밍웨이. 그의 유년기 이후부터 중년기까지의 삶이 고스란히, 그러나 문학적으로 뛰어나게 재조립되어 탄생한 캐릭터 ‘닉 애덤스’ 이야기를 빛소굴에서 선보인다. 닉 애덤스라는 인물은 헤밍웨이의 초기 단편집 『우리 시대에』에 처음 등장했으며, 헤밍웨이 사후 10년인 1972년에 발간된 이 책 『닉 애덤스 이야기』는 훗날 발견된 미발표 작품 8편까지 모두 수록되어 있다. 닉 애덤스의 이야기를 한 권에 담은 것도 의미 있지만, 연대기적인 맥락 속에서 각 단편의 숨은 의미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 진정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독자는 이 단편집에서 헤밍웨이의 진솔한 고백과 닉 애덤스의 독창적 사유가 한 몸이 되어 그리는 한 인간의 태어남과 스러짐, 사랑과 이별, 체념과 욕망,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로의 의지를 모두 목격하게 된다. 닉은 어둠을 무서워하는 겁 많은 아이인 동시에, “자신은 절대 죽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소년이다. 닉은 자신에게 사냥과 낚시를 알려준 아버지에게 무척 고마워하며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를 떠올리지만, 동시에 아버지에게 받은 총을 들고선 “아빠를 지옥으로 날려버릴 수 있”다고 되뇌는 소년이다. 닉은 사랑이 재미없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남몰래 믿고 있는 소년이다. 닉은 묵묵하게 일구어 나가는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소년, 다만 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늘 자신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생각, 생각, 생각과 분투해야 하는 소년이다.
[본문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요?” 닉이 말했다.
“누군가를 배신했겠지. 배신자는 가만두지 않으니까.”
“이 마을을 떠나야겠어요.”
“그래, 그거 좋지.”
“자기가 죽을 걸 알면서 방에 앉아 기다리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 미치겠어요. 너무 끔찍하잖아요.”
“그럼, 생각하지 마.” 조지가 말했다.
그러나 닉에게 ‘생각하지 않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는 자기가 낚아 올릴 송어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자기를 미치게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생각한다. 참혹한 전쟁터에서 아이들 사진과 수많은 편지들을 흩뿌린 채 죽어간 병사들을 생각한다. 벽을 보고 누운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이웃에 대해 생각한다. 한때 친했던 이들, 지금은 떠나간 이들에 대해 생각한다. 세잔과 에즈라 파운드와 거트루드 스타인과 조이스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쓰는 소설에 대해 생각한다. 말이 침묵을 이긴 때는, 아직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정신이상에 시달리며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메뚜기와 여치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을 때다. 닉은 속을 알 수 없는 자의 무표정하고 공허한 표정으로 시종 독자를 응시하며 호기심을 유발한다.
실험적이고 박력 있는 문체,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다양하게 펼쳐지는 이야기
방랑자로 태어나 삶의 진실을 깨달아가는 실존의 여정
“우리는 청년 헤밍웨이의 분신인
닉 애덤스가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를 통해,
헤밍웨이가 한 번도 쓴 적 없는
젊은 시절의 초상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 『뉴욕 타임스』
『닉 애덤스 이야기』는 주인공의 나이대에 따라 연대순으로 정리된 단편집이다.
1부 ‘북부의 숲’에서 아직 어린 소년인 닉은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과 고통을 목도하며 인생이라는 거대한 여정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2부 ‘혼자 힘으로’는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청년기의 닉을 그린다. 반항기 가득한 닉은 과거의 로맨스를 떠올리는 창녀들, 몸도 마음도 너절해진 왕년의 권투 선수, 냉혈한 살인 청부업자 등을 만나며 바깥세상의 어둠과 비정함을 몸소 체험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 남아 있는 순수는 그가 여동생과 함께 숲속으로 떠나는 여정(「마지막 남은 좋은 땅」)에서 일말의 찬란함을 드러낸다.
3부 ‘전쟁’에서 닉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정신적 외상에 시달린다. 불면과 환각에 시달리는 닉은 핏빛 폭력이 난무하는 낮과 신께 기도를 드리는 고요한 밤의 세계를 오가며 전쟁을 견뎌낸다.
4부 ‘병사의 고향’에서는 전장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닉이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려 애쓰는 과정이 담겨 있다. 유년기 추억을 떠올리며 송어를 낚는 닉의 모습은 수술대 앞에 선 의사처럼 엄숙하고, 성지에 당도한 순례자처럼 일견 숭고하기까지 하다. 마지막 5부 ‘두 사람’에서 닉은 가정을 이루고 아들까지 둔 작가로 등장한다. 영영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을 것 같던 닉은 전쟁과 이별을 겪은 후 한층 성장한 어른이 되어 스스로 아버지가 되지만, 그는 여전히 사색과 방황의 기질을 한 켠에 품고 있다.
[본문에서]
다른 어떤 일보다 글쓰기가 훨씬 더 재미있었다. 사실은 그래서 글을 썼다. 전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닉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양심의 발로가 아니라 그저 너무 재미있고 그 무엇보다 짜릿해서였다.
[본문에서]
어둠 속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샘물을 한 모금 마셨다. 기분이 좋았다. 그는 자신이 위대한 작가가 되리라는 걸 알았다. 그는 세상을 좀 알았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다만, 아직 모르는 것들이 있었다. 이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될 터였다. 그는 알았다.
가정사, 취미, 작가라는 직업, 참전 경험 등 여러 측면에서 닉 애덤스는 분명 헤밍웨이의 분신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단순히 ‘문학적으로 쓰인 헤밍웨이의 자서전’쯤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닉이 헤밍웨이 개인의 정열적 면모와 실험적 정신을 드러내는 걸 넘어 전쟁과 혁명, 기술 변혁으로 점철된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모든 평범한 이들의 보편적 기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장편소설의 한 대목처럼 느껴지는 스케치에서부터 2부로 구성된 꽤 긴 길이의 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위기의 작품들 속에 죽음, 사랑, 전쟁, 치유, 가족 등 다채로운 주제를 아우른 이 연작 단편집은 헤밍웨이의 역량과 매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