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모르면 생각도 마음도 전할 수 없는 답답한 어른이 되는 걸까?”
난독증을 딛고 당차게 세상과 맞선 꼬마 고구마의 좌충우돌 성장기!
달빛 자장가가 내리는 어느 봄밤에 바깥세상이 궁금해 태어나고 만 아이, 고구마! 동물 흉내 내면서 방귀 뀌기, 한밤중에 멜로디언 연주하기, 벌레랑 숨바꼭질하기 등 희한한 것을 척척 해내는 고구마에게도 못하는 게 하나 있었어요. 바로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내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냥 공부 못하는 아이였고 받아쓰기 시험 때마다 배가 아픈 아이였다.
―1장 둠칫둠칫, 25쪽
고구마가 글자를 읽으려고 할 때면 머릿속에는 어느새 이상한 괴물들이 나타났고, 모여 있는 글자들을 흩트려 놓거나 글자 위를 콩콩 뛰어다니며 방해했어요. 그래서 시험을 볼 때면 꾀병을 부리고, 짝꿍이 쓴 글을 몰래 따라 그리는 잔꾀를 부려야 했지요. 하지만 꼬마 고구마는 좌절하기 보다는 씩씩하게 모든 순간을 이겨 냈어요. 동생이 읽어 준 알림장의 ‘기타 등등’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학교에 장난감 기타를 메고 간 부끄러운 순간에도 우는 대신 당당했고, 엄마가 바자회에서 사 온 친구 옷을 거꾸로 뒤집어 입고 기어이(!) 등교하고 마는 넉살 좋고, 유쾌한 아이였어요.
이런 고구마의 감추고 싶은 비밀을 알게 된 사람은 언니와 친구 상숙이였어요. 언니는 집에서, 상숙이는 학교에서 고구마에게 글을 읽고 쓰는 법을 알려 주지만 아무리 애써도 소용이 없었지요.
받아쓰기 시험에서는 언제나 빵점이고, 밥 먹듯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지만, 고구마는 슬프지 않았어요. 달리기 전교 일등에, 친구를 위해 대신 벌레를 잡아 주고, 엉뚱한 행동으로 친구들을 웃기는 등 개구쟁이 고구마다운 일상을 보냈으니까요.
상숙이는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밝게 웃었다.
받아쓰기만큼이나 상숙이를 웃기는 일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3장 여름 끝에서, 우리는, 75쪽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손을 꼭 잡고 동네를 걷고 있던 고구마의 눈에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글자들이 첫눈과 함께 온전한 모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아직 첫눈이 오지 않았던 초겨울 어느 날.
“…행”
“복”
“!”
첫눈이 내리고 나는 글자들과 눈을 맞췄다.
―5장 난독의 계절, 100~103쪽
길고 길었던 고구마의 ‘난독의 계절’이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 순간입니다.
난독증으로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으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성장하는 꼬마 고구마의 눈물겨운 분투기를 담은 그림책 《난독의 계절》입니다.
“우리라는 이름이 있어 가능한 찰나였다.”
곁을 지켜 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기에 충분했던, 꼬마 고구마의 세계
글을 모르는 고구마가 힘든 순간들을 이겨 낼 수 있었던 데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의 따뜻한 관심과 힘찬 응원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책을 노려봐도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글자들 때문에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의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던 고구마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아요.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언니에게 제일 처음 비밀을 들켜 버리고 말죠. 예쁜 언니를 질투하고,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도 않던 고구마에게 언니는 글 읽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쳐 줍니다. 또 고구마가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당하지 않도록,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동생이 고무줄놀이 연습을 끝마칠 때까지 고무줄을 잡아 주지요.
단짝 친구 상숙이도 고구마의 비밀을 알게 돼요. 상숙이는 친구의 장점을 보는 다정한 아이로, 다른 아이들처럼 고구마네가 오락실을 한다고 놀리거나 글을 모른다고 무시하지 않았어요. 상숙이에게 고구마는 그저 용감하고 재미있는 친구였지요. 상숙이는 고구마에게 소원이 있을 때 하늘에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학교에 홀로 남아 나머지 공부를 하는 고구마가 외롭지 않도록 곁을 지키며 말동무를 해 주는 친구였어요.
동네 미용실 미미 아줌마는 고구마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예쁘고 친절한 미미 아줌마는 고구마의 비밀을 알지 못했지만, 선머슴 같은 고구마에게 예쁘다고 말해 주며 글을 몰라 자존감이 한껏 낮아진 고구마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더는 받아쓰기 빵점을 맞고 밥 먹듯 나머지 공부를 해도 나는 슬프지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친구도 조용히 날 기다려 주었다.
대신 전교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아이,
친구 대신 벌레를 잡아 주는 아이,
웃기는 아이, 밥 많이 먹는 아이였다.
―5장 난독의 계절, 93쪽
고구마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지켜봐 주고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가족과 친구들 덕분에 밝게 자라납니다.
엉뚱하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꼬마 고구마의 빛나는 순간들로 가득한 《난독의 계절》을 만나 보세요!
이 시대의 작가 고정순을 꼭 닮은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 ‘고구마’의 탄생,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 ‘난독의 계절’!
《난독의 계절》은 난독증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글을 읽지 못했던 고정순 작가의 실제 경험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작가는 꼬마 고구마의 눈물겨운 성장기를 깨알같이 섬세한 그림과 시적인 문장들로 담아냈습니다.
고구마는 생김새도 범상치 않습니다. 바깥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고구마 머리로 등장해 이름도 그대로 ‘고구마’가 되어 버린 꼬마 고구마의 머리에는 초록색 작은 잎사귀가 달려 있습니다.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면 잎이 커지고, 마음이 슬플 때는 잎의 모양이 희미해집니다. 줄기는 화가 나면 파닥파닥 거칠게 움직이고, 기분이 좋을 때는 살랑살랑 흔들리며, 가끔은 스프링처럼 뱅글뱅글 꼬이거나 빳빳한 모습 등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잎사귀와 줄기로 묘사되는 고구마의 다양한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고구마의 언니 혹은 친구가 되어 꼬마 고구마의 하루하루에 힘찬 응원을 보내게 됩니다.
또 《난독의 계절》에서는 고정순 작가의 기억 속 1980년대 마을의 정겨운 모습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쪽방들이 모인 마을에는 키 작은 주택들과 여럿이 함께 쓰는 공동변소가 있고, 집 앞마당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깻잎을 씻는 엄마,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밥을 먹는 저녁시간, 모두 똑같이 뽀글뽀글 파마를 한 동네 아줌마들, 고무줄놀이, 미닫이문과 큼지막한 한글로 쓰인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들의 모습 등 다정하고 소박했던 그 시절의 풍경이 펼쳐지며, 어른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아이들에게는 낯설지만 따뜻한 시절을 만나게 합니다.
저마다 자기만의 계절을 만나 보길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 담긴 《난독의 계절》을 보며, 초록 잎사귀를 흔들며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는 꼬마 고구마와 함께 그 시절의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보세요!
자라면서 나는 무수한 ‘나’를 만날 것이다.
먼 훗날 나는 이 시절을 ‘난독의 계절’이라고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5장 난독의 계절, 1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