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를 기르는 한비의 ‘인간심리 보고서’
“이 세상은 지배하려는 자와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자의 심리 전쟁터이다”
동양의 위대한 철학자 중에 ‘한비’만큼 인간의 내면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냉철하게 분석해낸 이는 드물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가 마땅히 사람이 가야 할 길을 밝혀주었다면, 한비는 사람 마음의 깊은 어둠, 제 이익을 무엇보다도 먼저 챙기고자 하는 본능, 약한 것을 밟고 올라서려는 비정함, 탐욕, 야비함 등을 가감없이 까발리고 있다. 〈한비자〉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분석한 한 편의 ‘인간심리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다. 어쩌면 한비의 이런 비정한 인간관이 그를 성현의 반열에 선뜻 올려놓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비는 어떻게 하여 이런 식의 글쓰기를 했을까? 한비는 전국시대 약소국의 하나인 한나라 왕손으로 태어났지만, 서출이었다. 어머니가 천한 후궁이었다는 일종의 열등감과 그에 따른 갈등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법과 술을 군주에게 가르쳐서, 그들이 평화롭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도록 돕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한비자〉에는 군주, 곧 리더를 가르치기 위한 여러 사례들이 풍부하게 나온다. ‘창과 방패’, ‘송나라 농부와 토끼’, ‘화씨벽’ 등 중국 고대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쓰임에 맞게 들려주며, 군주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적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거짓말과 속임수를 써서 상대방의 수상한 점을 시험해보면 숨겨진 나쁜 짓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견해는 군주가 ‘법, 술, 세’를 이용하여 신하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책인데, 공자의 사상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조금 낯설다. 사실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현대사회에서는 오너와 직원,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로도 볼 수 있고, 대부분의 우리는 후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비자〉는 ‘지배하려는 자’와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자’의 심리전쟁으로도 읽힌다.
그렇지만 사람의 위치는 큰산의 능선처럼 끝없이 변화한다. 살다보면 내가 군주(리더)의 위치일 때도, 신하(부하)의 입장일 때도 있다. 끊임없이 뒤바뀐다. 그래서 〈한비자〉는 읽는 이로 하여금 군주도 되어보고 신하의 입장도 되어보게 하면서, 달의 뒷면 같은 인간의 어두운 면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하여 품이 넓은 리더, 사람을 이해하는 리더로 거듭나게 만든다.
저자는 ‘리더들이 몰래 읽는 한비자’이지만, 앞으로는 현재의 리더들, 앞으로 리더가 될 현대인들이 품 넓은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썼다. 〈한비자〉 총 55편 중 현대적 의의가 있는 부분들을 발췌, 완역하고 해설하여 이해를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