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귀 기울이며 다정하게 응원하는 시인의 목소리
눈물 나는 이야기, 가슴 뛰는 이야기
가만히 펼쳐 놓아 봐
친구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나
귀 기울이고 있잖아
시인 안에 머물고 있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시집이 되었다
《우리들의 고민상담소》는 우리 청소년문학의 밭을 꾸준하게 일구고 있는 단비 청소년문학 42.195의 43번째 책으로 박일환 시인의 세 번째 청소년시집이다. 시인은 교직에 몸담고 있었을 때 만났던 청소년들의 다양한 모습과 시인 안에 머물고 있던 그들의 목소리를 이번 시집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박일환 시인이 만난 청소년들은 “서로 같으면서 달랐”다. 그들은 “또래들이 지니고 있을 법한 고민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다채로운 빛깔을 뿜어내곤 했다.” 시인은 아이들의 같음과 다름을 섬세한 눈으로 포착하고 시인의 언어로 탁월하게 묘사해낸다.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당혹감을 안겨 주는 친구부터 언제나 진지한 태도로 일관하는 친구, 한없이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친구, 삐딱하게 엇나갈 생각만 하는 것 같은 친구…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앞에 주어진 시간을 채워” 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 시인이 아닌 아이들 스스로가 그려낸 듯 발랄하면서도 생기가 넘친다. 아이들 곁에서 오랜 시간 아이들을 편견 없이 지켜본 시인이기에 가능한 성취일 것이다.
엉뚱미와 진지함, 설렘과 끝 모를 막막함이 뒤엉켜 공존하는 세계
시인이 그리는 시집 속 아이들의 모습은 하나하나 생생하면서도 다채롭다. “룰루랄라”의 손을 잡고 신나게 땡땡이를 치고서 선생님에게는 “제발 잡으러 오지 말라”는 태세전환에, “스마트폰을 보다가 쾅!” 가로등과 부딪혀도 가로등 따위 상대해주지 않는 쿨함에, 납득이 되지 않는 일에 “왜 때문”이냐며 따지는 모습에 ‘풋’ 하고 싱거우면서도 싱그러운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이 모습뿐이랴. “시험 볼 때마다 폭탄을 맞고 있는” 자신의 현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심각하고 진지한 아이들이다. 기후위기라는 말 앞에서는 “내 존재의 위기”를 떠올리고, 공부는 안 하고 야구장만 쫓아다니냐는 타박에는 홈런이 아닌 도루도 있다며 “슬라이딩을 해서라도 꼭 대학에 들어”갈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그리고 미래를 저당잡힌 현재에 대해, 아무리 애를 써도 따라잡을 수 없는 성적에 대해, 구박이 일상인 자신의 처지에 대해 괴로워하고, “꿈 같은 거 행복 같은 거”를 어떻게 하면 자신의 바구니에 담아낼 수 있는지 연구하고 골몰한다. 또 호르몬이 폭발하는 시기이기에 “교문 쪽을 향해 목을 길게 늘이고” 마음속의 친구에게 온 신경이 쏠려 안절부절못하기도 한다.
《우리들의 고민상담소》에는 청소년 특유의 복잡하고도 예민한 심리가 시어 하나에, 다듬고 다듬어낸 행과 연 사이에 한 장의 잘 찍은 사진처럼 마침맞은 이미지로 훤하게 그려진다. 아이들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으며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던 시인의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기억의 힘으로, 세월호 아이들을 살아 있도록 만드는 일
1부에서 3부까지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을 담았다면, 책의 4부에는 특별한 열다섯 명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인은 무엇보다 4부에 실은 시들에 마음을 썼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짧은 삶을 기록한 약전과 유가족들의 여러 인터뷰, 친구들이 남긴 글 등을 참고’해가며, ‘그 친구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였는지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4부를 써내려갔다. “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게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뿐일지라도, 그런 기억의 힘으로 지금은 지상에 없는 친구들이 우리 가슴속에 오래오래 살아 있도록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벌써 10년이 흘렀지만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은 부모님들의 마음’과 ‘같은 학교, 같은 동네에서 서로 웃고 장난치며 어울리던 소중한 친구를 잃은 생존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면 아득하기만 했던 시인의 손끝에서 피어난 아이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우리 곁에 살아 숨쉰다. “천년 향기로”, “우리들 마음에 스며”든다. 우리는 이 시들을 읽으며, 열다섯 아이들이 어떤 꿈을 가졌었는지, 무엇을 잘하고 누구랑 친했는지 둘레 아이들에게 어떤 친구였는지 곁에서 본 듯이 느낄 수 있다. 그저 ‘단원고 희생 학생’이 아닌 ‘도언’이, ‘경빈’이, ‘인배’로 새롭게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가슴속에 이름으로 호명되어 ‘의미’를 획득한 아이들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스스로 주어가 되어 똑바로 서 있기, 함부로 흔들리지 말고 도망가지 말기
교사였던 시인이지만 시인은 다른 선생님들과 무척 다른 모습이다. 그는 아이들을 쉽게 가르치려 들거나, 못마땅해하지 않고, 그들을 못 미더워 하거나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곁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본 대로 수용해주는 넉넉한 어른으로 곁을 지킨다. 좌충우돌 럭비공 같은 에너지를 가진 아이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비춰준다. 시인의 이런 모습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때에 더욱 빛난다. 아이들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방향 모르는 시행착오로 헤매고 있을 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시인이 들려주는 애정 어린 한 마디는 아이들을 지탱해주는 큰 힘이 된다. “너도 나처럼 구박”받았느냐 묻는 친구, 시험 끝나고 하굣길에 눈물을 찔끔거리는 친구,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하냐며 토로하는 친구, “꼭꼭 숨어 버린 내 청춘”을 찾아달라는 친구에게 시인은 씩씩하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시간”이라고 말한다. “가다가 또 다른 언덕을 마주치게 될지라도 / 다정한 벗들의 손을 잡고” “미래의 시간을 눈동자 가득 담아”두자고 한다. 그는 “스스로 주어가 되어 / 똑바로 서 있기 / 함부로 흔들리지 말”라고 아이들을 다독이며 “너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벽이 문이 될 때까지” 두드려 보라고, “가슴에 품은 건 꽉 끌어안고” 힘껏 달리라고 진심으로 당부한다. 아이들의 곁에서, 이렇게 따뜻한 눈으로 아이들을 지켜보며 아이들이 듣고자 할 때, 들을 수 있는 말을 전하기 위해 묵묵히 기다리는 어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우리들의 고민상담소》에 실린 54편의 시가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도 가 닿기를 바라며 일독을 권한다.
몰고 가기보다 안고 가기
뻥 차기보다 꽉 끌어안기
그렇게 한 몸으로 결승선 넘어가기
상대가 막아서면 힘차게 밀고
태클에 걸려 넘어지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내가 지금 안고 달리는 게
꼭 럭비공만은 아닐 거야.
저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게 있을 테니
힘껏 달려!
넘어지더라도 가슴에 품은 건 꽉 끌어안고!
-「럭비공 사랑하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