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해 같은 날 세상을 떠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그들이 탄생시킨 비극적 영웅이자 정반대의 캐릭터 ‘햄릿’과 ‘돈키호테’
동시대를 살다 간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비슷한 시기에 위대한 걸작 《햄릿》과 《돈키호테》를 내놓았고,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17세기를 대표하는 두 작가의 베스트셀러 주인공들의 성격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고, 그들이 인간 유형에 대한 논의의 공간까지 마련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을 포함한 다양한 도판과 디타 뮐레로바의 해제는 이 책의 이해를 돕는 데 한몫을 한다.
투르게네프는 이 책에서 햄릿‘들’을 ‘사색적이고 주도면밀하고 흔히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동시에 무력하고 무위에 빠진 인간’으로, 돈키호테‘들’을 ‘오로지 한 가지 것, 즉 십중팔구 그들이 상상하는 형태로는 존재하지조차 않지만, 인간을 도와 앞으로 재촉하는 반쯤 미친 인물’로 본다. 또한 햄릿을 ‘삶의 임무를 완수할 수 없는 잉여 인간’으로, 돈키호테를 ‘자기희생의 전형적인 인물’로 보면서 햄릿과 돈키호테의 유형 분석에 대한 논의를 뒤집었다. 사실, 19세기 전반 당시만 해도 두 인물 유형에 대해 논의한다는 게 매우 첨예한 문제였음을 볼 때, 몇 세기가 지난 지금 그에 대한 논의를 서슴없고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큰 행운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미 숱하게 거론된 ‘햄릿형 인간’과 ‘돈키호테형 인간’ 유형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는 칼라일, “모든 소설가는 어떤 형식으로든 모두 세르반테스의 자손들”이라는 쿤데라의 말처럼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햄릿과 돈키호테를 통해 양극단의 인물 유형을 소설 속에서 훌륭하게 구현해냈다. 앞으로도 세계문학에서는 또 다른 햄릿과 돈키호테가 창조되어 그 명맥을 이어 갈 것이다.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에 대한 인물 분석의 가치가 지금도 유효하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할 이유다.
“모든 사람은 두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해 있다.”
나는 햄릿일까 돈키호테일까. 변화무쌍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간상은?
누구의 마음속에나 햄릿과 돈키호테가 있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우리는 때로 햄릿의 사고력을, 때로 돈키호테의 실천력을 발휘하게 된다. 햄릿처럼 신중하게 생각하고 고심해야 할 때가 있고, 돈키호테처럼 앞뒤 재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답일 때도 있다. 투르게네프는 모든 사람은 이 두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해 있고, 햄릿 유형의 사람들이 훨씬 흔하지만, 돈키호테 유형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나는 햄릿일까 돈키호테일까? 내 주변 사람들은? 햄릿의 신중함과 통찰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주변의 햄릿들에게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돈키호테의 행동력이 필요할 때면 주변의 돈키호테들에게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세상에 걸맞은 인물이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책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간상에 대한 고민을 줄여주고 그 해답의 실마리도 제공해 준다. 햄릿과 돈키호테는 인간이 더 이상 신에게 희망을 걸지 않고 먼저 자기 자신에 의지하기 시작했던 르네상스 시대에 필연적으로 탄생한 인물이다.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이상적 인간상이 있다. 그 이상적 인간상은 햄릿에 가깝거나, 돈키호테에 가깝거나, 두 인물의 모습을 모두 지녔을 것이다.
햄릿과 돈키호테 중 한 명만을 고르기란 불가능하다. 투르게네프도 어느 쪽이든 좋거나 나쁘지 않다고 말하며 두 인물의 공존과 조화를 꾀한다.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될 때마다 우리는 햄릿이 되거나, 돈키호테가 되어야 한다. 그때그때 어떤 인간 유형이 될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 책은 그 선택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훌륭한 안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