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오늘날 세계 경제는 세 차례의 자본주의 파동을 거치면서 발전하고 있다. 첫째 파동은 16세기 대서양의 일각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났는데, 이때 선진 자본주의가 출현했다. 둘째 파동은 19세기 중엽의 윤곽적 글로벌리즘 속에서 나타났는데, 이때 독일, 이탈리아 및 일본에서 후진 자본주의가 발달했다. 셋째 파동은 20세기 중엽에 저개발국에서도 자본주의화가 진전되는 실질적 글로벌리즘 속에서 나타났는데, 이때 동아시아, 남유럽 및 중남미에서 NICs 제국이 등장했다. 이 세 가지 유형 자본주의의 산업적 발전과정을 보면, 선진 자본주의는 자국에서 성장한 재래산업위주로 발전했으며, 후진 자본주의는 재래산업과 외국으로부터 수입된 근대산업의 복선적발전을 했으며, NICs 제국은 재래산업의 발전이 매우 미약하기 때문에 근대산업을 위주로 발전했다.
한국 자본주의는 제3유형에 속한다. 즉, 본래 자국 내에서는 자본주의적 발전을 담지할 농촌 상공업의 발달은 없었으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 하에서 근대적 제도개혁과 일본 자본의 진출로 시장경제체제가 정립되자 도시에서 한국인 상공업이 출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인 상공업은, 식민지 하에서 주변적 존재에 불과했으나, 해방 이후 한국 정부의 국민경제 형성 정책과 경제개발정책에 의하여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중심축으로 육성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성립한 한국 자본주의는 선진 자본주의 제국에서 4백 년간에 걸쳐서 축적된 역사 발전의 기본 요인인 제도와 기술을 단기간 내에 도입할 수 있는 후발성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고도경제성장을 이룰 수가 있었다. 경제성장률을 보면, 선진 자본주의는 1% 내외, 후진 자본주의는 2% 내외, NICs 제국은 5~10%였다.
제1편 조선후기의 사회경제와 개항에서는, 조선후기의 토지소유와 소농경제의 발달수준 및 개항과 그 대응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조선후기에는, 농민의 토지소유가 인정되고, 병작제 하에서 농민 경영의 자립성이 단초적으로 보이기는 했으나, 농업의 다각경영이나 복합경영에 기초한 농촌 상공업의 발달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상공업의 발달수준은 매우 미미해서, 상업으로서는 경성의 육주비전, 농촌의 장시 및 원격지 상업을 담당하는 여객주인 등에 불과했고, 수공업으로서는 대중적 수요를 대상으로 하는 생사업이나 면공업 같은 것의 발달은 없었고 금은동점이나 유기수공업 같은 것뿐이었다. 그 결과 개항기의 불평등조약 체제 하에서 면제품 등 자본제상품의 수입에 대하여 쌀 및 콩과 같은 농산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고, 구본신참의 광무양전 등 정부의 개혁정책도 근대적 개혁이 아니라 왕실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근대적 상공업자가 출현하지 못했다.
제2편 식민지 지배와 시장경제체제의 전개에서는 식민지를 식민지 모국의 일환으로 편입하려는 동화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905년의 재정화폐개혁과 1910년대의 토지조사사업은 조선에서 근대적 재정화폐제도와 사유재산제도를 확립했고, 1920년대의 산미증식계획은 토지개량사업과 경종법의 개선을 통하여 농업을 다각경영과 복합경영으로 발전하게 했으며, 1930년대의 식민지 공업화 정책은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기지정책과 맞물려서 일본인의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의 조선 진출을 촉진했다. 위와 같은 식민지정책이 일본 제국과 일본인을 주축으로 하는 정책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조선에서 시장경제체제가 확립됨으로써 한국인 상공업의 발달도 촉진했다. 식민지기에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은 가장 많을 때 2천 만 인구 중 70만 정도에 불과했으므로, 식민지 경제는 일본인들이 주도하는 한국인들의 생활터전이었다.
제3편 국민경제의 형성과 고도성장에서는 이승만 정부의 국민경제 형성 정책과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정책을 살펴보았다. 해방 이후의 한국 경제는 식민지 경제의 붕괴, 남북분단 및 6·25 전쟁의 파괴로 국민경제가 극단적인 불균형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에, 이를 시정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농지개혁, 귀속재산의 불하 및 미국의 경제원조로 국민경제의 불균형을 크게 시정하고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체제의 바탕을 구축한 것은 1960년대 이후의 경제개발정책이 그 위에서 전개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정책은 수출지향 공업화 정책에 의한 고도성장으로 경공업의 발달은 물론 중화학공업화를 단기간 내에 달성했는데, 이것은 글로벌리즘 하의 경제발전이란 한국 경제발전의 경로의존성의 필연적 귀결이기도 했다.
한국은 본래 자연자원이 빈곤한 데 더하여 재래산업의 발달이 부진했기 때문에 개항 이후 1986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렸다. 그 때문에 한국 경제의 발전에 있어서는 부족한 외화를 보충하기 위하여 미국의 경제원조, 일본으로부터의 청구권자금 도입 및 월남 파병과 인력수출 등에 의한 외화 획득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투자재원이 항상 부족했기 때문에 경제개발 과정에서는 차관 등 외자도입도 불가피했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외채망국론이 유행할 수밖에 없었던 소이였던 것이다. 사정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경제개발 과정에 있어서는 국내에 풍부하게 부존하는 인력자원을 활용하여 외국으로부터 원료와 중간재를 수입하고 그 제품을 수출하는 가공공업적 발전의 길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출지향 공업화는 해외에서 넓은 시장을 개척함으로써 협소한 국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제적 규모의 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그 결과 이제 한국 경제는 선진국으로서 세계 10위권의 반열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한국경제사는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관찰될 수 있을 것이나, 이 책은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계 자본주의 발달의 제3유형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한국 경제의 발전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서술을 위해서는 세계 자본주의 발달의 제3유형에 관한 자세한 이론적 정리가 선행해야 하겠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만 세계 자본주의의 유형적 발달에 관한 거친 틀만을 가지고 한국경제사의 발달과정을 개략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집필에 있어서는 필자가 그 개략적인 틀을 짜고 각 장의 서술방향을 제시하기는 했으나, 능력 부족으로 필자가 직접 집필하지는 못하고 여러 연구자들에게 집필을 의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1편의 제1·2장은 안병직이, 그리고 제3~5장은 조영준이, 제2편은 박이택이, 제3편은 주익종이 각각 집필했다. 이 책은 한국경제사에 대한 창의적 해석보다는 명확한 방향 제시를 목표로 했다.
현재 경제적으로 출판사정이 매우 어려운 이때에 이 책의 출판을 선뜻 맡아주신 박기남 사장님과 출판사 직원 여러분들에게 마음속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24년 6월 28일
안병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