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작은 연대가 진짜 힘이 되려면…
자기 만족이 아닌, 진짜 세상을 바꾸는 연대가 되려면…
밀양과 여러 현장 투쟁에서 배운 우리 시대 운동론
2024년 6월 8일, 밀양행정대집행 10년을 맞아 희망버스를 타고 현장에 함께한 사람들이 1,5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밀양 할매들과 울다가 웃다가 춤추다가 하면서 다섯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중에는 전남 순천 시민들도 있었다. 그들은 밀양 연대를 다녀온 후, 그날의 벅찬 기억으로부터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6월 25일 저녁 희망버스 뒤풀이 모임이 순천에서 열렸다. 그 모임에서 박지호 선생이 한 시간 남짓 강연한 내용이 이 책의 바탕이 되었다.
저자 박지호는 ‘프로 연대러’이다. 순천에서 목요일마다 사회 현안을 걸고 시위를 하는 ‘사거리 목요 실천 행동’의 멤버이며, 아사히글라스, 옵티칼하이테크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철회 투쟁이나 지역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 투쟁 같은 현장에 연대하기 위해 구미로, 춘천으로, 밀양으로, 성주로, 울산으로, 전국을 누빈다. 저자는 수많은 연대 활동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연대’와 ‘환대’의 모습을 보았고, 거기서 좋은 점과 문제점을 발견하며 누구보다 우리 시대의 ‘운동론’에 대해 고민해 왔다. 이 책에는 우리 사회 곳곳의 현장 투쟁에서 연대와 환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연대와 환대가 우리 시대의 운동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연대와 환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치열한 고민이 집약되어 있다.
연대가 필요한 시대
저자는 먼저 우리 시대에 왜 연대가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현대 사회는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호소했던 시대와 달리, 노동의 분화가 삶의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 시장이 분화되어 노동자도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뿐 아니라 특고, 프리랜서, 플랫폼 같은 비임금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가사노동, 육아노동, 학습노동을 하는 사람들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이들이 함께 파업하고 단결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이렇게 복잡하게 분화된 노동 구조 속에서는 무엇보다 ‘연대’가 필요하다. “언뜻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저기가 좋아져야 전체가 좋아져서 결국 여기도 좋아질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 하는 일에 나도 같이 힘을 보태는 것”, 이것이 연대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연대와 환대의 자세
연대 활동이 개별 연대자들의 자족감과 알리바이로 소모되지 않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연대하고 환대해야 할까?
첫째, 연대는 확장되어야 한다. 동일한 이해관계자들끼리의 단결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둘째, 연대에는 주·객체의 구분이 없어야 한다. ‘싸움’은 싸우는 사람과 연대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다. 셋째, 그래서 연대에는 연대자들이 들어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또한 ‘환대’는 융숭한 대접이나 만면에 가득한 미소가 아니라, 연대자들이 들어와서 더 큰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환대의 자세는 첫째, 연대 받는 자가 연대자에게 ‘역할’을 주기, 둘째 연대자가 싸움의 현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기, 셋째 ‘진심’으로 대하는 자세이다. “연대만이 투쟁의 살길이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경로라는 것을 깨닫고 그런 마음으로 연대를 대하는” ‘진심’은 연대자에게 전달이 된다. 저자는 이런 연대와 환대의 마음을 밀양의 연대자들과 할매들에게서 가장 진하게 느꼈다고 말한다.
“연대는 남의 일처럼 보이는 일을 제 일처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환대가 되어야 연대가 확장됩니다. 이런 마음이 있는 사회에서, 아니 이런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는 저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누구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무조건 많이 한다고 좋은 일도 아닐 겁니다. 다만 모든 것을 ‘나도 관계된’ 나의 일로 여기고 외면하지 않는 자세가, 자신만 그럴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런 사회가 되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애쓰는 자세가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 사이에 놓인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 계속 패배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연대와 환대를 통한 직접정치
― 우리가 모두 반(半) 데모꾼이 되자
저자는 연대와 환대를 통해 직접정치를 구현하자고 말한다. 올바른 싸움을 하는 현장에 찾아가서 구호를 외치고 팔뚝질을 하고 같이 싸우자는 것이다. 생업이 있어 매일 그럴 수 없으면 정당과 시민단체를 후원하고, 당원이나 회원으로 가입해 내부 의사결정에 목소리를 내자. 그 과정에서 연대와 환대를 실천하는 것이 우리 시대에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연대와 환대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운동가만, 활동가만 하는 게 아닙니다. 누가 하느냐보다 어떻게 연결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확장되고 큰 단결을 만들고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싸울 수 있는 우리가 되고, 그것을 확장합시다! 이러한 우리가 충분히 되었을 때 이러한 사회가 따라올 것입니다.”
사회운동과 진보에 애정을 갖고 있는 분들, 한 번이라도 연대의 발걸음을 해 본 분들, 연대해 보고 싶지만 기회가 없거나 용기가 없어 연대한 경험이 없는 분들이 이 책을 함께 읽어 보면 좋겠다. “연대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우리의 진심을 서로에게서 확인”하고, “만일 누군가가 누군가의 삶에 연대하고 그가 그를 진심으로 환대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고립된 나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용기와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더구나 세상에는 인간만 살고 있지 않다. 인간이 아닌 비인간, 즉 다른 생명이 살고, 생명이 아닌 비생명, 즉 다른 물질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 모두가 자연을 이룬다. (…) 자연은 늘 우리를 먼저 환대했다. 연대가 부족해도 환대하는 자연처럼 이제는 우리가 모두를 연대할 차례다. 연대와 환대는 이렇게 가까이서 시작될 것이고, 여러 과정과 공간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결국 이렇게 가까이서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