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곧 우리 자신이다”
해부학자, 피부 아래 세상을 탐구하다
해부학 책으로 본 인체 탐구의 역사
우리 몸의 내부 작용은 어떻게 밝혀졌을까? 각 장기의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을까? 고대 이집트부터 르네상스 시대와 근대를 지나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5000년 동안 해부학자의 서재를 채운 책 속에는 인체 이해, 예술적 기법, 사회 변화의 역사가 담겨 있다. 『해부학자의 세계』는 유럽을 비롯해 중동, 중국, 일본에서 출판된, 역사상 중요한 해부학 책 150여 권을 모아 그 방대한 서사를 풀어낸다. 놀라울 만큼 세밀하고 적나라하며 아름다운 해부 삽화와 함께 해부학자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보자.
‘인체의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의학의 기틀을 세운 위대한 해부학 책들을 만나다
몸을 다치거나 몸이 아파 꼼짝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기원전 고대부터 수천 년 동안 몸이 인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영혼이 머리에 깃들었는지 심장에 깃들었는지 하는 철학적 궁금증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인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치료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부학자의 세계』는 의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준 해부학 책을 통해 위대한 연구자들의 업적을 정리한 책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해부학 기록은 기원전 3000년 고대 이집트 문헌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이다. 이 파피루스는 주술이나 미신이 아닌 관찰과 실습 중심의 실용서였으며 여기에서 해부학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체액설을 비롯한 갈레노스의 이론은 2~14세기까지 장장 1300여 년간 서양 의학을 지배했다. 이후 16세기에 출간된 베살리우스의 『파브리카』는 갈레노스의 오류 300여 가지를 바로 잡으며 당대의 베스트셀러로 떠올랐으며 근대 해부학 발전의 시발점이 되었다. 해부학 분야의 스테디셀러 『그레이 해부학』은 1858년에 초판이 출간된 뒤 오늘날까지 42번째 개정판을 낸 ‘살아있는’ 해부학 교과서다.
이 책은 해부학이 철학에서 경험 과학으로 넘어가는 과정, 권위에 맞서는 도전과 새로운 발견은 물론, 해부 극장 설치, 시신 도굴꾼 문제와 해부 관련 법 제정, 그리고 예술적이고 적나라한 해부 그림과 인쇄술 발달, 표절 시비 등 인체 지식을 향한 인류의 여정을 역사적,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도판과 함께 생생하고 흥미롭게 전달한다. 저자와 함께 먼지 낀 과거의 서적들을 탐닉해보자. 그 속에서 보물 같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해부학 책 150여 권 망라, 희귀 도판 240여 컷 수록
역사적,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해부학 기록물 총정리
해부학은 도판이 매우 중요한 과학 분야 중 하나다. 시대를 불문하고 해부학 책에서 삽화는 텍스트만큼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부학자는 뛰어난 삽화가의 도움이 필요했으며, 그런 점에서 삽화가는 해부학 발전에 일부 공헌했다 할 수 있다.
이 책은 의학 지식의 발전뿐 아니라 해부학 책과 삽화의 진화까지 살펴볼 수 있게 정리했다. 해부학 책 150여 권을 망라, 희귀 도판 240여 컷을 수록했으며, 해부학에 관한 예술가들의 관심, 삽화의 변화상, 속표지 그림, 플랩북(플랩: 덮개를 들춰 숨은 그림을 볼 수 있게 한 장치)의 대중화, 표절 시비, 인쇄술의 발전 등을 다뤘다.
14세기 귀도 다 비제바노의 『필리프 7세를 위한 해부학』(1345)에 실린 삽화는 원근법이 없는 2차원 평면이다. 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 소묘는 명암과 다양한 음영 기법, 옅은 색채를 사용해 수준이 매우 높다. 다빈치의 해부학 기록물은 사후 400년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는데, 그는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로 깊이 있는 해부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16세기의 베스트셀러인 베살리우스의 『파브리카』(1543)는 플랩북을 대중화시키는 역할도 했으며, 인기의 여파로 표절 분쟁에 시달리기도 했다.
인체를 해부한 그림은 그 특성상 매우 세밀하고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는데 동시에 예술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다. 줄리오 카세리의 『해부도』(1627)에서 모델의 몸은 다양한 자세로 팔과 다리, 등 근육을 보여주며, 윌리엄 체슬던의 『오스테오그라피아』(1733)에서는 18개월 된 아이의 해골이 비교를 위해 어른의 대퇴골을 들고 있다. 리처드 콰인의 『인체 동맥의 해부학』(1844)에서 삽화를 그린 조지프 맥리프는 뛰어난 예술적 기교를 발휘해 관심 부위는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주변부는 단순한 소묘로 처리해 해부 부위를 부각했다.
역사적,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도판을 풍부하게 수록한 이 책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하며 해부학 역사를 생생하게 살려낸다. 현대 해부학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인체 해부 그림을 만나보자. 해부학에서 새로운 즐거움의 요소를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해부학은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발전했는가
부상병 치료부터 시신 방부 처리 기술까지
“책은 타임캡슐이다.” 책은 당대의 사고방식과 사회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해부학자의 서재에 꽂혀 있던 해부학 책들을 모아 시대별로 정리한다면 그 자체가 인체 지식을 향한 인류의 서사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해부학 책을 통해 해부학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를 비춰준다. 해부학이 처음 적용된 곳은 고대 전쟁터였으며 인류 역사에서 전쟁의 시기에 부상병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해부학 책이 출간되었다. 해부학이 인기를 끌었던 17~19세기에는 해부용 시신이 부족해 시신 도굴꾼이 기승을 부려 사회 문제였으며 이를 계기로 해부 관련 법이 제정되었다. 17세기 해부학자 마르첼로 말피기는 자신의 몸을 부검해달라는 유언을 남겨 최초의 해부용 시신 기증자가 되었다. 현미경의 발명으로 모세혈관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윌리엄 하비의 폐쇄 순환계 가설이 검증되었고, 내시경, 마취술과 냉장술, 시신 방부 처리의 발명은 해부학 연구에 기여했다.
각 분야가 현재 어떻게 이 자리에 도달했는지 그 역사를 파고드는 작업에 매료된 저자는 이 책에서 해부학 책에서 의학적 발견은 물론 책과 관련된 일화를 발견해내며 5000년 해부학 역사의 흐름을 단숨에 읽어낸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인체에 관한 지식을 얻기까지 어떤 역사를 지나왔는지 알게 된다면 해부학 책에 감사함을 느끼며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