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라는 막강한 에너지를 지닌 게임, 비즈니스를 도약시킬 해법이 되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항공사나 신용카드 마일리지를 열심히 모으고 퀘스트 깨기형 어학 학습 앱으로 외국어를 공부하는 등 우리는 모두 일상에서 게임을 하며 살아간다. 게임에는 자발성이 있고 승부가 있고 보상이 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한 번 더’를 외치게 하는 힘이다. 게임화는 이러한 게임의 특성을 게임이 아닌 분야에 적용해, 보다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게임화는 비즈니스 곳곳에서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MS에서 윈도7을 출시할 때의 일이다. 윈도7의 텍스트를 여러 언어로 번역하면서 소프트웨어 테스팅 그룹은 언어마다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사전에 잡아내는 작업을 실행해야 했다. 이는 다양한 언어별로 용례를 일일이 검토하고 대화상자를 확인해야 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MS는 이 과정을 게임화했다. MS 직원이면 누구나 이 게임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참가 플레이어가 오류를 포착할 때마다 포인트를 부여하고 성과를 게시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직원들이 담당 업무가 아님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오류를 잡아내며 즐거워한 것이다. ‘재미’라는 막강한 에너지로 직원들의 몰입과 동기부여를 이끌어낸 결과다. 이처럼 게임화는 경영자들의 오랜 고민을 단숨에 해결하며 경영의 미래를 열어갈 결정적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게임과 경영, 왜 만날 수밖에 없었나?
사람들의 평균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동기부여 수단으로서 돈의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인간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지면 ‘재미’를 추구하는 존재인 것이다. 게임은 오늘날 재미의 대명사 같은 것이 되었다. 이는 돈을 대신하여 재미가, 그리고 재미를 담보하는 게임이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점점 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직원들을 어떻게 몰입시키고 동기부여할지는 경영자들의 숙원이자 오랜 과제였다. 경제적 보상은 어느 수준까지는 효과가 있지만 일정한 단계를 지나면 한계를 드러낸다. 직원들의 구성과 세대가 다양해지면서 몰입과 동기부여는 더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만약 업무를 게임처럼 할 수 있다면?’ 경영자들이 게임이 지닌 특성에 주목하며 비즈니스에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론인지도 모른다. 재미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왜 하필 게임인가?”라는 질문에 “게임만큼 ‘재미’와 ‘동기부여’를 동시에, 그리고 만족스럽게 달성할 수단은 달리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러므로 미래에 게임을 활용하지 않는 기업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 귀 기울여볼 만하다.
다양한 사례로 실감하는 게임화의 힘
이제 경영현장의 실제 사례를 통해 비즈니스 게임화의 힘을 실감해볼 차례이다. 사실 비즈니스 게임화가 최근에 시작된 현상은 아니다. 이 책에 의하면 최초의 비즈니스 게임화는 100년도 더 전에 미국의 한 소매 기업에 의해 최초로 실행되었다고 한다. 단골고객에게 쿠폰을 발행해주고 목표 구매 수치가 달성되면 보상을 지급하는, 지금까지도 실행되고 있는 방식이었다. 이후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게임에 익숙한 MZ세대가 기업에서 주류로 부상하면서 활용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왔다.
이 책에서는 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게임화 사례들을 혁신, 채용, 교육 및 훈련, 마케팅, ESG 분야로 분류하여 소개한다. 이 다섯 개 분야는 현재 게임화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분야이다. 혁신 분야의 사례로 소개된 카카오뱅크의 ‘26주 적금’은 단계마다 보상을 제공하여 고객에게 적금을 지속할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정기적금은 인내심이 필요한 지루한 과정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게임 심리를 자극하는 도전 및 보상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 성공요인이다. 카카오뱅크는 ‘26주 적금’의 성공으로 기존 경쟁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의 룰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디지털은행 사업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채용 과정 중 직무 능력 파악을 위한 온라인 게임 도입으로 보다 정확한 분석 결과를 얻어 채용에 드는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성과를 거둔 유니레버의 인공지능 기반 채용 게임화 사례, 직원 교육 과정을 게임화하여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교육 효과도 높일 수 있었던 월마트의 사내 안전교육 게임화 등 다양한 사례가 소개된다.
주요 사례는 다시 부록으로 엮어 각 사례의 게임화 방식과 성과 및 수익성 등을 항목별로 분석·정리하였다. 부록에는 본문에 미처 담지 못한 사례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한국 기업은 왜 게임화에 더 유리한가?
게임화는 우리나라에, 그리고 우리 기업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저자는 비즈니스의 게임화가 지난 1990년대 중반 디지털 전환이 한국 기업에 제공했던 것보다 더 큰 기회를 가져다주리라 확신한다고 말한다. 모두 알다시피 한국은 게임에 강한 나라다. 게임을 잘 만들 뿐 아니라 각종 게임대회에서 우승을 도맡아 하는 나라이며 세계적인 게임 선수를 지속적으로 배출해왔다. 한국 게임 선수들의 전략적 창의성은 때로 게임 개발자들마저 당황시킬 정도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게임이 디지털화된 오늘날, 디지털 강국인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도래하고 있다는 말은 그래서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으며, 이러한 비전이 이 책을 쓰는 동력이 되었다고 책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1990년대 디지털 전환 시기에 아날로그 분야에서 절정의 경쟁력을 구가하던 선진기업들의 경쟁우위를 단숨에 무력화시키며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도약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한국이, 디지털기술이 요구하는 속도감에 매우 잘 적응한 덕분이라 분석하며 비즈니스 게임화 분야에서도 이와 동일한 일은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게임화에 매우 유리한 상황이며, 또 한 번의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영학적 통찰과 인문학적 지식이 어우러진 글쓰기
이 책의 저자 한창수는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오랫동안 경영 분야 연구를 담당해오며 경영학적 통찰과 철학, 역사 등 인문학적 지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특유의 글쓰기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책 1부에서도 저자의 이러한 특기가 잘 발휘되고 있다. 단순한 여가활동 정도로 여겨지거나 중독을 유발하는 질병으로 취급 받던 게임이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일상 곳곳에 깊이 스며들고 경영전략의 주요 파트너로 부상하기까지를 설명하는 1부에서 저자는 공자와 요한 하위징아 같은 사상가나 김상균, 케빈 워바흐 등 대표적인 게임 관련 학자들을 시대 불문하고 자유자재로 소환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게임의 인문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지금까지 충분히 활용되지 않았던 인간 내면의 창조성과 자발성, 능동성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게임 열풍을 그 어떤 혁명보다 파괴력을 지닌 혁명으로 칭하며, 게임이 21세기 자본주의의 풍경마저 바꿔놓을 가능성까지 점치는 저자의 대담한 주장을 따라가는 것은 게임에 관심 없던 독자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