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궁금했지만, 친구라는 호칭은 어색했던
대학과 입시가 모든 걸 짓눌러도 못내 외면하지 못한
교실 속 열아홉의 이야기
★ 『우리의 정원』 김지현 신작
★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추천
떠나온 뒤에도 꿈에서 돌아가는 장소가 있는지? 꿈에서 반복해서 돌아가는 곳이 있다면, 우리는 그곳에 무언가를 남겨두고 온 것은 아닐까? 혹은 꿈에서 자꾸 만나는 그 시기를,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너의 꿈에도 내가 나오는지』는 같은 교실로 돌아가는 꿈을 꾸는 어떤 마음의 이야기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개의 교실을 지나왔지만, 이상하게도 매번 고3 교실이 배경인 꿈을 꾸는 승희의 이야기이자, 어쩌면 같은 꿈을 꾸는 희수, 수완의 이야기다.
고3이 된 승희는 익숙한 친구들과 적당한 친분을 유지하며 수험생으로서 한 해를 무감하게 보내려 한다. 승희는 학기 초 조희수와 계단 청소 당번이 되는데, 조희수는 이상하게도 아이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요주의’ 인물이다. 생김새, 눈빛, 성적, 하고 다니는 머리핀, 들고 다니는 핸드크림까지 아이들의 관심을 끌지만, 정작 조희수를 가까이하는 아이는 없다. 오히려 조희수의 묘한 냉랭함과 무심함을 경계하며 거리를 둔다.
또 한 명의 인물 현수완. 어느 날 불쑥 승희의 시야에 들어온 수완은 마치 미래에서 온 듯 인생 다 산 어른 같은 말과 행동으로 승희를 당황하게 만들지만, 늘 승희 편에서 배려 깊은 말을 건네기도 하고 힘이 되어 준다.
승희를 중심으로 느슨하지만 내밀하게 연결된 승희, 희수, 수완은 체육대회 날 우연히 셋만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와서, 마치 끝말잇기 하듯 승희-희수-수완 순서로 이어달리기에 출전한다. 승희는 조희수가 평소 교실에서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점점 희수가 궁금해지고, 수완은 어느 날 승희에게 “나는 지금 꿈을 꾸는 중이야.”라며 비밀을 들려주는데…….
“나도 비밀 하나 말해 줄까? 나는 지금 긴 꿈을 꾸는 중이야.”
승희는 말수가 적고 남들 얘기를 잘 듣는, 그래서 친구들의 비밀을 많이 알게 된 ‘대나무숲’ 같은 아이다. 그러나 승희에게 ‘비밀’은 가끔은 물리적인 무게감으로 짓누르듯 부담감을 느끼게 하는 단어다. 그런 승희에게 의도치 않게 자꾸만 자기 비밀을 들키는, 속을 알 수 없는 아이 희수. 승희는 그런 희수의 ‘진짜’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며 희수가 궁금해진다. 한편 매번 엉뚱한 말로 승희를 당혹스럽게 하는, 마치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수완은 승희에게 지금 이 순간에만 전할 수 있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교실에서 너와 다시 만나게 되고 나서, 나는 꿈을 꾸는 마음에 대해 계속 생각했어. 같은 순간으로 자꾸만 되돌아가는 마음을 말이야. 그런데 이제 알 것 같아. 꿈을 꾸는 마음은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본문 200쪽)
어쩌면 반복해서 꾸는 꿈에는 당시에 미처 전하지 못하고 남겨둔 진심, 건네지 못한 말, 용기 내어 맺지 못한 우정 같은 그리운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의 꿈에도 내가 나오는지』는 두고 오는 말이 없기를 바라며 꿈꾸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절로 밑줄을 긋게 만드는 탁월한 심리묘사와 매번 같은 장소로 돌아가는 꿈처럼 서정적인 문장 아래 흩뿌려진 소소하고 반짝이는 미스터리들은 셋의 관계에 생동감을 더하며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훅 끌어당긴다.
“관계의 품 안에서 각자의 표정을 잃지 않는 성장,
혼란 속에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성취”
_김지은(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거짓말하는 어른』 저자)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는 고3, 열아홉, 어른이 되기 직전에 만난 승희, 희수, 수완 세 아이를 “우정의 이름으로 뭉뚱그려지지 않는” 관계라고 말한다. ‘친구’라는 명확하고 단단한 이름으로 묶이지 않는 관계를 통해 “세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는 뿌듯한 감각보다 더 세밀하게 그려지는 것은, 각자일 때의 외로움과 사정을 말할 수 없을 때의 난처함”이라며, “어떤 아픔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 그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 어른이 되는 일”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이라고 덧붙인다.
“혼란 속에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가장 귀한 성취”
_김지은(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거짓말하는 어른』 저자)
승희에게는 오래된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픈 가족사가 있고, 희수는 아주 오래전 들은 불길한 예언 같은 말에 붙들린 뒤 자신에게 자꾸 나쁜 말이 들러붙는 것만 같다고 말한다. 수완 역시 아주 긴 잠에서 깨지 못한 채 어떤 꿈에 갇힌 듯 불안정한 상태지만 두고 오는 말 같은 건 없도록 현재를 살아간다. 아이들은 각자의 사연과 혼란을 겪지만 자기 몫의 성장을, 자기만의 결정을 해내는데, 김지은 평론가는 작품 속 승희, 희수, 수완의 이야기를 “혼란 속에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가장 귀한 성취”라고 상찬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향하는 깊은 시선,
김지현 작가가 그려내는 성장하는 마음들
김지현 작가는 2022년,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우리의 정원』을 출간하면서 청소년 독자들과 만난 젊은 작가다. 첫 번째 책인 『우리의 정원』에서 아이돌 ‘덕질’과 현실 친구의 관계를 그리면서 이야기의 중심에 ‘좋아하는 마음’이 바꾸는 관계와 세계에 대한 시선을 담았다. 두 번째 장편인 『브로콜리를 좋아해?』에서는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걸 알고 도시락을 싸서 다니다가 학교 급식에도 채식단이라는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열여덟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처럼 작가는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어주는 관계, 좋아하는 마음으로 가닿은 청소년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고,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로 독자를 만나왔다. 이번 세 번째 장편 역시 누군가가 궁금해지는 마음의 변화를, 어쩌면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순간에 담긴 마음의 그러데이션을 매력적인 이야기로 담아냈다.
좋아하고 애틋하게 여기면서 동시에 미워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한 사람에게 한 겹의 마음만 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본문 138쪽)
작가는 어쩌면 한 단어로 전달하며 놓치게 되는 여러 결의 마음을, 관계를 이야기 안에 너르게 품고 독자와 나누고자 한 것은 아닐까? 이번에는 ‘좋아하는 마음’ ‘비밀’ ‘우정’ ‘친구’ ‘가족’ 같은 단어에 담긴 여러 겹의 마음과 가능성에 대해 『너의 꿈에도 내가 나오는지』의 승희, 희수, 수완 세 아이의 꿈 같은 우정의 이야기로 독자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