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대표 작가 사라 룬드베리의 새 그림책!
그림책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로 스웨덴 대표 문학상인 아우구스트 상을 수상하고 《여름의 잠수》로 아우구스트 상 최종심에 오른 작가 사라 룬드베리의 새 그림책 《오로지 나만》이 출간되었다. 사라 룬드베리가 쓰고 그린 그림책 《오로지 나만》은 지금까지 사라 룬드베리가 쌓아온 매력적인 그림 스타일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현실 속에서 아이만이 찾아갈 수 있는 환상적인 초록빛 원더랜드가 빛을 뿜는 작품이다.
초록빛 판타지로 넘어가는 아이의 모험
엄마와 아이는 각각 작은 배와 패들을 들고 집을 나선다. 엄마와 아이가 물놀이를 하러 가는 모양이다. 두 사람은 물가에 자리를 잡았고 아이는 장남감과 인형으로 혼자서 잘 논다. 그러다가 아이는 엄마에게 배를 타겠다고 말한다. “엄마는 부두고 나는 배예요. 배는 부두에 단단히 묶여 있어요”라고 말한다. 아이는 스스로 매듭을 풀고 배를 탄다. 스스로 매듭을 푼 것이 대견한 아이는 엄마에게 자기 혼자 해냈다는 걸 자랑하고는 여행을 떠난다.
아이는 배 여행에 독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독자는 어느 순간 초록빛 그림책의 세계로 빠져든다. 본격적인 모험을 떠나면서 아이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슬쩍 넘어간다. 처음엔 바닷가처럼 보였는데 아이를 따라가다 보면 수풀이 많은 호수 속 깊이 들어가고 있다. 오리들이 떠다니고, 연꽃도 보이고, 물속 물고기들도 잘 보인다. 엄마는 아이가 어딜 가는지도 모른 채 다른 아이 엄마와 수다 떨기에 바쁘다. 아이는 수풀을 지나 집들, 도시, 놀이공원, 정글 속으로 넘어간다. 집들과 정글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저 아이의 환상적인 여행에 시선을 맡기면 된다.
햇살처럼 따스하고 안온한 세상 한 바퀴 여행
아이는 다녀오고 나서 엄마에게 ‘세상을 한 바퀴 돌고 왔’다고 말한다. 그림책은 여러 번 볼 때 그림 속에 담긴 묘미를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책 또한 그렇다. 아이가 말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벌목하는 사람이 잠시 쉬고 있는 곳 옆에 사슴이 물을 먹고 있고, 작은 섬들이 다리로 연결된 곳에는 집들과 정원이 있고, 자동차와 건물이 즐비한 도시를 거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노는 놀이공원이 나온다. 다시 정글로 들어선 아이는 표범과 원숭이와 앵무새가 지켜보는 가운데 폭포로 뛰어든다. 처음엔 폭포에 빠지는 게 위험해 보이지만 몇 번을 읽다 보면 아이가 자처한 모험처럼 보인다. 숲속 정령들이 아이를 구출해 주고 모닥불 곁에서 아이가 따뜻하게 몸을 말릴 수 있게 해준다. 정령들이 아이에게 덮어준 담요 무늬는 엄마의 원피스 무늬와 같다. 아이 주위로는 표범과 원숭이와 앵무새가 호위하듯 아이를 지켜본다. 아이는 정글 속 정령들과 동물들 덕에 무사히 엄마 곁으로 돌아온다. 다시 그림책 제일 앞으로 돌아가 보자. 아이가 물가에서 통에 물을 받아 놀던 그때로. 아, 그러고 보니 아이 곁에는 표범과 원숭이와 앵무새 인형이 있다. 엄마에게 “나는 표범이고, 엄마는 원숭이예요. 그리고 모래를 가지고 세상을 만드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아이가 말한 ‘세상’은 아이의 현실에서 이것저것 가져와 새롭게 만든 상상 속 세상이다. 모험과 스릴이 있지만 보호자의 따스한 보살핌 안의 안전한 세상이다. 정령 또는 원숭이로 표현되기도 하는 엄마는 아이가 가는 여정을 살펴봐 주고 위험하다 싶을 때 구출해 주기도 한다. 배가 단단히 묶여 있는 부두처럼 엄마에게 아이는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의 모험은 ‘오로지 나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전한 연결망 속에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따스한 햇살에 데워진 물의 촉감처럼 평온하고 따뜻하게 이 아이의 모험을 지켜볼 수 있다.
아이의 모험은 또 다른 씨앗으로 발아된다!
아이는 놀이공원 주위에서 눈빛이 빛나는 여자아이를 만난다. 그 여자아이가 아이에게 작고 까만 무언가를 건네준다. 그리고 둘은 배에 탄 채 손을 맞잡고 볼레로 같은 춤을 춘다.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아이는 그 씨앗을 화분에 심고 물을 준다. 언제 싹이 나올까 마음이 급한 아이에게 엄마는 기다려 보라고 말한다. 그날 밤 아이의 꿈속에서는 숲속 정령들이 나타나 화분을 돌며 춤을 춘다. 마치 새싹이 무사히 잘 돋아나기 위한 어떤 기도 같은 춤이다. 씨앗이 자라나면 어떤 꽃을 피울까? 아이의 상상력의 씨앗은 또 어떤 세상을 그려낼까? 보호자의 안온한 울타리 안에서 아이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리고 스스로 혼자 매듭을 풀고 세상 여행을 하고 온 자신이 꽤나 뿌듯해하다. 아이가 그리는 세상은 따뜻하고 포근한 맛이 있다.
초록과 주황빛을 따라가면서 만나는 현실과 환상 풍경
디지털로 작업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많아진 요즘, 사라 룬드베리의 그림은 직접 그린 손맛이 잘 살아 있어서 물빛, 초록빛, 햇빛이 저마다의 온도를 가지며 반짝거리는 듯하다. 호수와 도시, 사람들, 물속 풍경 등이 초록과 주홍이라는 주조색을 따라 통일감 있으면서도 저마다의 질감과 색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무엇보다 아이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몰입감 있는 이야기와 그림이 완벽하게 조화롭다. 스웨덴 현지 병원 벽화와 이 그림책을 함께 작업했다고 하는데, 그 병원 벽화는 어떻게 구현되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