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런 곳이 다 있단 말인가! 꼭대기가 별로 높지도 않은데 탁 트인 전망에 ‘우와!’하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거대한 낙동강의 흐름이 또렷이 보이고 강과 어울린 들판이 쫘악 펼쳐진다. 눈앞 가까이 강줄기부터 저 멀리 바다에 이르기까지 막힘이 없다. 넓디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이 번쩍 뜨이도록 시원한 전망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지만 이 정도 높이에서 이렇게 넓은 들판을 단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산에서 들판을 내려다보는 맛으로는 가히 일등이라고나 할까? 나뭇가지 하나도 앞을 가리는 것이 없다. 드넓게 펼쳐진 들판이 너무도 가깝게 느껴진다. 양팔을 벌리고 보니 한 아름에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이런 것일 것이다.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랄까? 편안히 서서 하염없이 내려다본다. 한마디로 산에서 들판을 내려다보는 조망터로선 최고다 싶다.
북쪽의 신어산에서 흘러 내려온 능선이 돗대산(돗대산은 행정구역 상으로 김해시 대동면과 김해시 안동에 걸쳐 있다. 꼭대기에 오르려면 김해 안동체육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오르는 길이 가장 가깝다. 높이는 381m이다.)으로 이어지고 있다. 능선을 배라고 생각하면 산이 배에 달린 돛과 같이 솟아올랐다고 해서 돗대산이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다. 주위에 비해 신비하게 톡 솟아 있어 아주 멀리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들판뿐 아니라 김해와 부산의 웬만한 곳이 눈에 다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가까이 분성산을 비롯해 김해 시가지가 보이고, 멀리 장유와 불모산 줄기가 선명하게 와닿는다. 동쪽으로는 가까이 까치산 능선이 있고 멀리 금정산의 줄기가 보인다. 고당봉, 상학봉, 백양산, 엄광산, 구덕산, 승학산까지 가물가물 보이는데, 이는 북쪽에서 내려온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흘러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다.
남쪽으로 펼쳐진 들판, 이것이 낙동강 삼각주다. 삼각주란 강과 바다가 합쳐지는 강어귀에 강물이 운반하여 온 흙과 모래 같은 물질이 쌓여서 이루어진 땅을 말한다. 강원도에서 시작하여 영남 전체를 적시고 흘러와 부산에 다다르는 낙동강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삼각주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이 이 들판이다. 드넓은 들판이 그냥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자연의 위대한 힘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삼각주로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돗대산은 뭐니 뭐니 해도 낙동강 삼각주를 보는 조망이 최고다. 북에서 남으로 펼쳐진 삼각주, 그 북쪽 끝의 좀 높은 지점에서 바로 내려다보는 것이다. 꼭 지도를 펼쳐놓고 보는 듯 삼각주를 바로 앞에 두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니 삼각주 조망을 위해 조물주가 일부러 돗대산을 만든 것 같다.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삼각주를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절묘하다. 정말 매력적인 곳에 서 있다.
돗대산 봉우리 끝에 서서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다. 작은 몸뚱어리 앞에 펼쳐진 드넓은 대지의 모습, 평소에 품을 수 없는 광경에 주눅이 들었다고나 할까? 놀란 마음이 진정이 잘 안된다. 크게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야 삼각주의 속을 주목하게 된다. 삼각주를 둘러싸고 있는 낙동강 줄기와 삼각주 들판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동쪽을 보니 북에서 흘러온 낙동강 물이 두 갈래로 갈라져 멀리 남쪽 바다를 향해 흐르고 있다. 하나는 남쪽으로 곧장 흐르고, 또 하나는 서쪽으로 굽이쳤다가 다시 남쪽으로 흐른다. 두 갈래의 강 사이에 삼각주 들판이 있다. 강에 의해 둘러싸인 삼각주 모습이 또렷이 들어온다. 강물은 들판을 휘감고 땅을 적시는 젖줄이 된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곳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굽이쳐 흐른 강물은 멀리 남쪽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삼각주 들판 또한 남쪽으로 이어져서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멀고 먼 곳에 아스라이 바다가 펼쳐져 있다. 가까운 들판에는 농경지가 많이 보이고 비닐하우스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주거지와 도로가 선명하고 공장 같은 건물도 많이 보인다. 하나하나 세밀히 짚어가며 바라보자니 어느샌가 저 들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저곳은 대저수문이고, 저만치 보이는 것은 녹산수문이다. 저 길은 도시철도 3호선과 경전철이고 더 가까이 있는 것이 남해고속도로다. 가운데 또렷이 보이는 사각형 터는 김해공항이고, 숲이 있는 저 산은 덕도산과 죽도산이다. 멀리 바다 가까이에 하굿둑과 을숙도가 있다. 가물가물하며 보이는 아파트단지는 명지국제신도시다. 그 부근 햇빛에 반사되는 바닷물에 보일 듯 말 듯 떠 있는 것은 모래톱이다.
아는 지역이 확인될 때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 손가락으로 콕콕 집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는 것 같이 지형지물이 새록새록 머리에 들어온다. 위성지도를 볼 때마다 세상을 실감 나게 구경하는데, 이번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실제 지도를 놓고 더 실감 나게 구경하고 있다.
순간, 이곳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폴짝 뛰면 삼각주 저만치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새가 되어 저 들판 속을 휘저으며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드론이라도 띄워 봐야 할까? 저 들판, 낙동강 삼각주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누를 길이 없다. 삼각주를 향한 마음이 심하게 요동친다. 직접 가서 저 삼각주 속을 확인해 봐야겠다. 새가 되어 날아가 보는 것보다 드론을 띄워 보는 것보다 가서 확인하는 것이 최고일 게다. 더할 수 없는 좋은 체험이 될 것 같다.
가기 전에 현재의 삼각주 모습이 어떤지를 미리 알아봐야겠다. 지도를 통해 삼각주와 관련한 더 많은 지형과 지명들을 익혀야겠다. 필요하다면 또 다른 자료를 통해 삼각주 지역 삶의 모습도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삼각주를 직접 발로 밟고 확인하면서 이 넓은 들판 구석구석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 가고 싶다.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기대를 넘어 설레는 마음이 벌써 가득하다.
―「돗대산에서 삼각주를 내려다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