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이 딱 그렇다.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많아도 맛없는 안주는 없다. 음식 뒤에 ‘안주’ 자만 붙으면 못 먹을 게 없다._7쪽
그렇게 일취월장, 내 입맛은 소주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났다._23쪽
김밥은 너그러운 음식이다. 김과 밥만 있으면 나머지 재료는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김밥은 아름다운 음식이다. 재료의 색깔만 잘 맞추면 이보다 어여쁜 먹거리가 없다. 그래서 김밥에는 꽃놀이와 나들이의 유혹이 배어 있는지 모른다. 지참하기 간단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꽃밭을 닮아서._39쪽
이십 대 후반에 처음으로 단식을 한 적이 있다. 살을 빼기 위해서도 아니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살다보면 내 속에 뭔가 쓸데없는 것이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가 심히 그랬던 시기였다. 오랫동안 정리하지 않은 서랍처럼, 남루한 후회가 쌓여 있고 부서진 계획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고 어둠침침한 우울이 먼지처럼 내려앉아 있던 시기. 머릿속이든 몸속이든 일단 말끔히 비우고 싶어 충동적으로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단식은 식욕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단식 첫날처럼 긴 하루는 없다. 아무것도 안 먹으면 이상하게 시간도 안 간다. 굶어보면 우리의 하루가 얼마나 먹는 일들을 중심으로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는지 알게 된다._61쪽
첫 단식 이후로 나는 몇 년에 한 번씩은 단식을 한다. 단식을 하면서 내 속에 있는 오래된 서랍을 열어 이것저것 하나씩 꺼내 들여다본다. 내가 살아온 과거들을 차근차근 짚어보고, 지금 맺고 있는 관계들을 곰곰이 따져본다. 그러다 문득 달걀을 푼 라면이 먹고 싶어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행복한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면 그 꿈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젊은 날의 과오를 떠올리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내 곁을 떠난 사람들 생각에 슬퍼하기도 한다. 열무김치에 고추장 넣고 맵게 비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극히 사소한 이유로 화가가 되지 못한 것에 서운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따위가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감정들이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내 속에 웅크린 채 언젠가는 내가 한 번 뒤돌아 보아주고 쓰다듬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고아처럼 어리고 상처 입은 감정들이다. 내가 그렇게 해준 뒤에야 그것들은 비로소 조용히 잠이 든다._68~69쪽
단식이 짧은 죽음이라면, 단식 후에 먹는 죽과 젓갈은 단연코 부활의 음식이다._69쪽
이제 나는 물냉면이라면 환장하는 사람이 되었고, ‘해장에는 냉면’이라는 오래전 선배의 말을 백번 이해하게 되었고, 물냉면 전문집에서 비빔냉면을 시키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비틀게 되었다._82쪽
차지고 부드럽게 후루룩 넘어가는 회와 오독오독 씹히는 해산물과 싱싱한 야채와 매콤새콤한 국물까지 그야말로 통쾌하고 상쾌한 맛이었다. 땀과 더위와 앞으로 써야 할 글의 부담까지 한 방에 날려버리는 맛이었다._89쪽
한여름 대낮에 깡장과 고추장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비로소 나는 내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든다. 여름은 내게 한때는 땀과 벌레의 계절이었고, 한때는 불면과 실연의 계절이었지만, 사실은 언제나 땡초의 계절이었다. 나는 내가 태어난 계절을, 그 여름의 열기를, 그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맺혀 있는 땡초를 끝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매운 음식에 대한 나의 광적인 애호에 대해 나는 이보다 더 나은 이유를 찾지 못했다._102~103쪽
바삭한 가을 햇빛과 씁쓸한 땅의 맛을 은은하게 간직한 시래기나물의 독특한 맛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그저 나는 이게 바로 까막고기의 맛이려니 할 뿐이다._113쪽
지금 우리 집 냉동실에는 백명란과 시래기가 봉지봉지 얼어 있고 냉장실에는 소고기장조림, 오이지무침, 가죽장아찌가 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당장 소주 한 병을 따도 곧바로 안주 한 상을 차려낼 수 있다. 공부와 음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_117~118쪽
식탐자는 맛에 대한 욕망만큼 온도에 대한 욕망도 크다. 낮에는 여전히 찌는 날씨여도 이미 입속엔 가을이 깃들고 뜨거운 국물 음식이 그리워진다._121쪽
뭔가를 먹고 만족하기 위해서는 맛과 온도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스타일로 먹는 것도 중요하다. 밥 먹을 때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개도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로 음식을 즐길 권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_124쪽
각자의 혀에는 각자가 먹고살아온 이력이 담겨 있다. 그래서 혀의 개성은 절대적이며, 그 개성은 평균적으로 봉합되지 않는다._136쪽
먹는 얘기를 하다보면 이렇게 뜻밖의 바람직한 술자리를 낳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얘기를 그토록 끈질기게 계속하는 이유는, 먹는 얘기를 도저히 멈출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혀의 아우성을 혀로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혀의 미뢰들이 혀의 언어를 알아듣고 엄청난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_139~140쪽
봄에 싹텄던 것들은 여름에 왕성히 자라 마침내 가을이면 완숙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맛에 있어서만은 가을이 쇠락의 계절이 아니라 절정의 계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절정은 단맛으로 표현된다. 모든 먹을거리들은 가을에 가장 달콤해진다._143쪽
나는 밥 한 숟가락에 조린 무 한 점을 얹고 그 위에 갈치를 얹는다. 햅쌀밥과 가을무와 갈치 속살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삼단 조각케이크를 나는 한입에 넣는다. 따로 먹는 것과 같이 먹는 건 전혀 다른 맛이다. 정말 이렇게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밥과 무와 갈치가 어울려 내는 이 끝없이 달고 달고 다디단 가을의 무지개를. 마지막으로 게다리를 넣어 구수한 단맛이 도는 무된장국을 한술 떠먹는다. 그러면 내 혀는 단풍잎처럼 겸허한 행복으로 물든다._152쪽
가끔 견딜 수 없이 어떤 국물이 먹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무언가가 몹시 먹고 싶을 때 ‘목에서 손이 나온다’는 말을 하는데, 그럴 때 내 목에서는 커다란 국자가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당장 그 국물을, 바로 그 국물을, 다른 국물이 아닌 바로 그 국물의 첫맛을 커다란 국자로 퍼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지는 것이다._162쪽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밥은 소박하지만 맛깔난 손맛이 담긴 밥상을 의미한다. 집밥이란 말을 들으면 누구나 향수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입속에 고인 침을 조용히 삼키는데, 이건 순전히 집밥을 하지는 않고 먹고만 싶어 하는 사람들의 환상이 아닐까 싶다. “오늘 뭐 먹지?”라는 잔잔한 기대가 “오늘 뭐 해 먹지?”로 바뀌는 순간 무거운 의무가 된다. 집에서 해 먹는 게 집밥이라면, 집집마다 그 집 부엌칼을 쥔 사람이 다른데 어떻게 그게 죄다 소박하면서 맛깔날 수 있단 말인가. 집밥이 무조건 맛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옳지는 않다._1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