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속 c’는 1초 동안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맹렬한 속도를 나타내는 물리상수입니다. 광속의 놀라운 점은 그 어떤 물질이나 기계도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광속이 우주의 최대 제한 속도임은 상대성 이론으로 도출됩니다.
다음으로 ‘만유인력상수 G’는 매우 미약한 물리상수입니다. 그래서 만유인력(중력)의 효과는 지구처럼 거대한 질량을 가지지 않고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구 정도는 비할 바도 못 되는 거대한 질량들이 수없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우주입니다. 따라서 우주라는 괴물의 중력은 시간을 쪼그라뜨리고 공간을 쭉 늘리며 광선마저도 흐늘흐늘 휘게 만들어 버리지요.
또 ‘기본전하량 e’는 전기 현상을 일으키는 전자라는 작은 알갱이가 가진 전기적인 성질을 이야기해 줍니다. 전기 현상은 번쩍하는 불꽃으로 우리를 겁주거나 찌르르한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밥을 지어 주고 바삐 돌아다니며 바닥 청소를 도맡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활약상을 보여 주고 있지요. 이 모두가 전자(와 양성자)의 작용입니다. 전자는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기본 입자이며, e는 기본 입자들을 이해하는 실마리입니다.
‘플랑크상수 h’는 수수께끼의 물리상수입니다. 이 상수를 만나고 인류는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양자역학은 원자나 전자와 같은 미시적인 물체들의 행동을 밝혀내고, 레이저와 원자력, 전자공학 등 현대 사회를 떠받치는 모든 과학 기술을 만들어 냈지요. 이에 더해 우주의 시작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 〈시작하며: 우주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어 준 특별한 값〉 중에서
질량 근처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릅니다. 이 때문에 질량을 가진 물체에 시계를 가까이 가져가면 시계의 속도가 느려집니다. 그런데 이 효과는 극히 작습니다. 특수든 일반이든 상대성 이론의 효과는 대체로 그렇습니다. 지구처럼 거대한 질량의 표면에 놓인 시계와 지구에서 저 멀리 떨어진 시계의 속도 차이는 10억분의 1보다도 작습니다. 하지만 최신 시계 기술은 정밀도가 아주 높아서 이 정도로 작은 차이도 검출할 수 있습니다. 2020년, 일본에서는 ‘광학 격자 시계’를 사용한 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도쿄의 랜드마크이자 전파 송신 등을 위해 지어진 스카이트리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이 건축물의 전망대와 지상층에 각각 광학 격자 시계를 두고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실험이었습니다. 실험 결과, 두 높이 간의 시간차가 검출되었습니다. 지상에서 450m 떨어진 전망대와 비교했을 때, 지상층에서는 시계가 약 0.000000000005% 느리게 움직였습니다. 평소에 느끼지 못하더라도, 지표면(스카이트리의 지상층과 비슷한 고도)에서 생활하는 우리의 시간은 스카이트리 전망대에서보다 느리게 흐르고 있습니다.
- 〈2장. 만유인력상수 G로 이해하는 우주의 구조〉 중에서
앞에서 ‘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의 곱은 플랑크상수 h보다 작게 만들 수 없다’고 했지요.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불확정성은 이 세상을 보여 주는 픽셀(화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스플레이에 나타나는 그림과 영상은 얼핏 보면 미세한 특징까지 부드럽게 잘 표시하고 있는 것 같지만, 확대해서 보면 픽셀이라는 작은 구획들이 모여 이미지를 이루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디스플레이의 세계에서 픽셀보다 작은 구조는 담아낼 수 없습니다. 현실 세계도 디스플레이와 비슷해서, 얼핏 보면 연속적이고 부드럽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미시적인 픽셀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픽셀들보다 미세한 구조는 어떤 측정 장치를 이용해도 읽어 낼 수 없습니다. 플랑크상수 h는 현실 세계를 그려 내는 픽셀의 크기인 셈입니다.
- 〈4장. 플랑크상수 h로 이해하는 양자역학〉 중에서
우리 우주는 138억 년 전에 빅뱅으로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c, G, e, h의 값에 따라서 결정되는 무수한 과정을 거쳐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빅뱅이 왜 일어났느냐 하는 물음에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몇 가지 가설이 있는데, 그중에는 우리 우주가 부모 우주로부터 태어났다고 설명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우주 말고도 자식 우주가 무수히 많다고 주장하는 가설입니다.
심지어 각각의 자식 우주가 각자 다른 물리상수를 가진다는 기발한 주장을 펼치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물리상수가 다른 우주끼리는 서로 영향을 줄 수도, 교류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상호 관찰도 불가능합니다. 존재를 확인하는 일도 불가능합니다.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서 증명할 수 없는 존재를 논의하는 것이 과연 과학의 영역인지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어쨌거나 매력적이고 기발한 발상이긴 합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만약 c, G, e, h의 값이 변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논의해 보았습니다. c, G, e, h가 우리 우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탐구였지만, 만에 하나 앞에서 얘기한 저 기발한 우주론이 참이라면, 정말로 어딘가에는 이 책에서 상상했던 것과 같은 또 다른 우주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처럼 물리상수가 서로 다른 우주에서는, 예컨대 기본 입자의 전하량, 색전하, 질량, 섞임각 등의 물리상수가 다를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기본전하량 e는 다른 우주(만약 존재한다면)에서는 다른 값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유인력상수 G와 플랑크상수 h의 값까지 달라지면 부모 우주에서 자식 우주가 발생하는 시스템마저도 변할 가능성이 있어서 이론적으로 수습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보편 상수 중에서도 G와 h 그리고 광속 c는 어느 우주에서나 똑같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만,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겠지요.
- 〈마치며: 보편 상수가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상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