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피자의 토마토소스가 맛있는 건 베수비오 화산 덕분?
인도 고아주 햄버거 가게는 생선 커리 라이스를 판다고?
만수르가 투자한 거대 인공 섬이 대추야자 모양인 이유가 있다?
서로 다른 기후가 빚은 열세 가지 음식으로
세계 각지의 지형과 역사, 종교와 경제, 문화와 가치관을 읽는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못 보던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있다. 한국 음식과 비슷해서 반가움을 느끼기도 하고, 낯설지만 특별한 맛과 향에 중독되기도 한다. 그중 한 나라를 대표할 만큼 유명한 지역 음식들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기후다.
기후는 각지의 자연은 물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먹거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푸바오의 고향 쓰촨에서 시작된 탄탄면의 마라 맛 뒤에 습한 날씨가 있듯, 나폴리피자의 감칠맛을 담당하는 산마르차노 토마토 아래엔 베수비오 화산재에 덮인 땅이 있다.
세계 곳곳의 문화와 정부 정책, 국가의 역사와 경제도 기후지리라는 렌즈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관광지가 발달한 인도 고아주 해변의 모든 가게는 생선 커리 라이스를 판다. 아라비아해와 계절풍이 가져다준 생선, 풍부한 향신료와 쌀이 합쳐진 이 지역 고유의 음식 문화가 관광객의 입맛에 맞춘 메뉴에 밀려나지 않게 하기 위한 고아주 정부의 조치다. 아랍에미리트의 왕자 만수르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만든 대추야자 모양 인공 섬은, 석유 수출로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오랜 세월 사막에 살며 오아시스 근처 대추야자에 의지해 온 이들의 역사를 보여 준다. 아울러 기후 위기로 석유 소비가 줄자 항공, 관광, 금융 등의 새로운 산업을 키우려는 아랍에미리트의 움직임을 짐작하게 한다.
눈부신 태양 아래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인도네시아, 양 떼가 유유자적 풀을 뜯는 뉴질랜드 등 25개국 116개 도시를 다녀온 저자는 서로 다른 기후에 속한 13개 지역에 독자를 초대한다. 간결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글쓰기로 지역별 대표 음식을 맛깔나게 소개하고, 그 음식이 어떤 지리적 배경에서 발달했는지 탐구하는 재미를 전한다. 매콤 새콤한 똠얌꿍에서 새우 양식 사업이 태국에 확산된 이유를 발견하고, 팜파스의 축복으로 얻은 아사도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10분의 1 가격에도 소고기를 즐겨 먹을 수 없게 만든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세계지리는 복잡하고 외울 것만 많은 과목으로 여겼던 청소년도, 이 알찬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흥미진진하고 입체적인 지리의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고소하고 짭짤한 인도네시아 나시고렝부터
이누이트의 비타민 막탁까지
지구 온난화로 변해 가는 음식들을 통해
기후 위기를 고민해 보게 하는 지리 이야기
문제는 독특한 맛을 품은 열세 가지 음식과 그에 관계된 삶들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4위 쌀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엘니뇨로 인한 이상 기후로 벼농사에 타격을 입어 쌀을 수입해야 할 지경이다. 넉넉한 인심으로 퍼 주던 나시고렝의 양도 덩달아 줄어들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혹한의 북극해에서 고래 지방으로 만든 막탁을 먹으며 생존했던 이누이트가 녹아 가는 얇은 얼음 위에서 사냥을 하다 바다에 빠져 죽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인기 관광 상품이자 부랴트인의 주식인 오물이 바이칼 호수에서 절반 가까이 모습을 감춰 버렸다. 책은 이러한 기후 변화의 현주소를 전한다.
동시에 기후 위기 속에 숨어 있는 불평등을 포착한다. 캐나다 누나부트 준주에 사는 이누이트가 더 먼 바다로 나가 막탁을 구해야 하는 상황 앞엔 유럽 백인의 식민 지배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연어잡이 전통을 되살리려는 홋카이도 아이누인의 노력이 수온 변화로 사라지는 연어 보호 정책에 막히게 된 사연에는 일본의 강제 민족 동화 정책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짚는다.
땅과 물, 해와 바람이 빚은 소중한 먹거리와 그것에 기대어 살아온 이들을 지키는 길은 무엇일까? 《맛집에서 만난 세계지리 수업》과 함께 고민하며 기후 시민의 길로 나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