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말
“에도 시대에 관해 공부할 때마다 부당한 사회 규범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절감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대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현실에서는 일이 ‘이렇게’ 쉽게 진행되지 않지만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써내려갔습니다.”
• 책 속에서
한데 이게 웬일인가. 시어머니가 어느새 커다란 지네로 변해 있는 게 아닌가. 머리 부분에 사람의 얼굴이 붙어 있고, 거기에 가까스로 시어머니의 이목구비가 남아 있었다.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숨을 내뿜고 새된 고함 소리를 지르면서 지네로 변한 시어머니가 무턱대고 오만에게 달려들었다. 수많은 다리가 서로 스쳐 버석버석 소리를 내면서 쫓아온다.
59p.「청과 부동명왕」中
아이를 갖지 못해 시댁에서 쫓겨난 여자. 자식을 잃은 죄를 뒤집어쓰고 이혼당한 여자. 심한 시집살이에 상처를 입고 몸이 망가져도 소처럼 부려먹히는 고통에서 도망쳐 온 여자. 남자에게 속아 아기를 갖고 혼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자.
갈 곳 없고 의지할 곳 없고 내일 당장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떠받쳐 주는 발판이라곤 없는 여자들이 오나쓰가 사는 절터를 찾았다.
124p.「청과 부동명왕」中
아이는 보물이다. 이 세상이라는 밭의 고귀한 열매다.
고맙다, 고맙다. 우린보 님, 정말 고맙습니다.
165p.「청과 부동명왕」中
1각을 족히 들여 도미지로는 한 자루의 붓 그림을 그렸다. 다 그리고 나서는 도망치듯 책상을 떠나 손뼉을 쳐서 오카쓰를 부르고는 평소처럼 봉해 달라고 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제 다시는 그리지 않겠다.
357p.「자재의 붓」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