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영원한 평행선은 없다. 특히, 예술은 표현의 방법이 다양하며, 무엇보다 감성이 가치의 본질을 만드는 것에 중요한 작용을 하기에 누구의 예술이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나의 예술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예술을 먼저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의 적용이 우리나라 예술의 고른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이를 예술경영이나 예술행정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술 활동에 정책적인 지원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라면 결국 공공의 이익과 우리나라 예술 발전을 위한 서로의 예술과 행정, 그리고 경영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시행 과정에서의 오류가 있을지라도 개선 의지와 오류 발생의 최소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함은 그래서 당연하다.
개인적으로 예술인과 행정인, 그리고 연구자들에 의해 한국형 예술경영과 행정의 틀이 구축될 수 있는 발전적 접근이 지금보다 더 다양하게 시도되길 희망하고 있다.
[책 속으로]
우리나라에서 예술경영이라는 의미를 사용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확한 시기를 말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문민정부(1993~1998년) 때부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6공화국(1988~1993년) 시절, 정책적으로 각 시도별 문화예술회관의 건립을 정부가 지원하는 등 기반 시설이 확충되면서 예술인의 활동성이 확대되긴 했지만, 이 시기에는 예술경영이라는 의미를 모르고 있었거나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술가들에 의한 최소한의 사회비판과 작품의 표현이 자유로워진 문민정부 때부터 문화운동가들이 활동하게 되면서 비로소 예술경영이라는 의미를 알게 된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한, 임명직이었던 시도지사의 경우 지방자치를 목적으로 1995년부터 선거를 통해 선출했고, 선출된 단체장들은 지역 문화의 경쟁력과 지역민의 문화 향유권 확대를 위해 크고 작은 축제를 경쟁적으로 개발하였다.
-p. 16, 제1장 예술경영의 의미와 해석, ‘예술경영의 학문적 의미’ 중에서
공연예술 역시 클래식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요구를 파악하여야 하며, 빠른 변화를 요구하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클래식이 가진 본래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흥미를 유도할 수 있도록 연출기법 등 다각도의 실험적 연구가 이제는 필수적인 조건이 되고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물론 지금까지 이런 것에 기반하여 변화를 위한 상당한 노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렵다는 인식이 대부분인 클래식 음악회에서 각 연주곡에 대한 해설이 현장에서 진행되거나 시각적 효과의 결합으로 감상의 재미를 제공하는 것, 발레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각각의 동작에 대한 언어를 쉽게 설명하는 등 관람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한 것들이 그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이상의 변화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또 다른 한계일지 모른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전, 모 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에서 월드컵 분위기에 맞춰 지휘자, 단원 모두가 축구 운동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청중들에게 큰 웃음을 안기면서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연주를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적이 있었다. 이후 이 교향악단에 대한 시민들의 우호적 평가와 함께 연주회마다 객석 점유율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지표를 보았다.
-p. 70, 제3장 현대 공연예술의 변화, ‘공연예술 분석’ 중에서
오래전에 우리나라 영화가 홍콩 영화,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외면받았던 때가 있었다. 이때 영화인들은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일정 기간 국산 영화만 상영하도록 의무화한 스크린 쿼터제를 요구하였다.
1967년 시행령이 만들어졌고, 1984년 개정된 영화법에 의하면 각 영화관은 국산 영화를 연간 40% 즉, 146일 이상 상영하여야 하며, 대도시의 경우 외국 영화를 상영한 뒤에는 국산 영화를 반드시 상영토록 규정하였지만 민간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극장과의 상반된 이해관계로 시행 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었다. 그러다가 2006년, 미국과의 FTA 협상으로 연간 73일로 축소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져서 법적인 구속력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이러한 발전에는 영화인의 상당한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공연예술계도 전국의 예술인에 의해 이러한 규칙이 요구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지원하는 작품을 지역 문예회관이 유치할 때 지역에서 생산된 작품도 의무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쿼터제와 같은 제도적 보완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역별 문예회관의 입장에서 중앙에서 활동하는 인지도 높은 예술인에 의해 완성된 작품과 해외 예술인의 초청공연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지만 차기 연도의 공연 추진계획을 수립할 때, 지역 예술인의 활동성 강화에도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함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 또한 지역 문화와 예술의 발전, 지역민의 문화와 예술 향유다양화라는 문예회관 건립 당시의 목표를 달성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p. 119, 제5장 공연예술시장 분석, ‘공연예술유통’ 중에서
예술단체 조직에서 관리자 혹은 경영자로서의 대표는 단순히 공연을 제작하고 발표하는 것 이상의 책임이 있다. 즉, 예술단체 대표라면 조직 밖의 시장환경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지역을 기준으로 전국 단위, 넓게는 세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고 단체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조직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체계를 확립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시장 상황에 따른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하고 적절한 대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민간 기업을 통한 재원 조성 방법의 변화, 혹은 정부의 정책적 방향성 변화에 대한 예측이 그것이다. 지금까지의 경우를 복기해 보면 기업의 경영방침이나 정부의 정책적 결정이 단 며칠 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관련자에 의해 오랫동안 만들어 낸 의사결정이 집적되면서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 환경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이러한 변화를 예측할 수 있음은 당연하며, 단체운영과 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변화란 시계처럼 정확하게 움직이지 않으며, 이를 감독할 수도 없기 때문에 단체의 활동성과 지향성을 기반으로 주변 상황분석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p. 190~191, 제8장 공연예술단체의 조직구성과 기획 방향성 ‘예술단체 대표와 기획자의 역할’ 중에서
오래전,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는 뉴욕의 링컨센터 내 Avery Fisher Hall에서 이들의 연습 장면을 참관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 뉴욕필의 연주회를 보고 싶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아쉬워하던 차에 줄리어드 음대 재학생으로부터 연습을 참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 날 오전에 링컨센터로 갔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뉴욕필의 연습을 참관하는데 15달러 정도의 입장권을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로비에 들어섰을 때, 나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 온 것은 작은 책상에 앉아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뭔가를 나눠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일반인을 대상으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위한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었다. 그중, 한 분의 할머니가 나에게 보여준 것은 올해 내에 뉴욕필에 후원하기로 한 액수와 이름, 그리고 주소가 빼곡하게 적혀있는 서류였다. 액수는 크지 않았다. 간혹 수백 달러가 약속되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20~30달러 정도였고, 그들이 대부분 뉴욕의 시민임을 알 수 있었다.
-p. 243, 제10장 예술단체 활동을 위한 공공 재원의 가치, ‘예술단체의 민간 재원 조성’ 중에서
“무대 직전까지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가 미래 음악가들에게 남겨놓은 유산을 찾으려고 노력하겠다.”
결선에 임하는 각오를 묻는 말에 대한 임윤찬의 마음이었다. 이에 덧붙여, 진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며, 자신이 음악을 하면서 음악가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음악에 쏟는지 알기 때문에 음악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진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 그와 같은 나이대였던 내가 음악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을 때, 분명히 선생님으로부터 음악적인 표현 방법을 배웠었다는 기억은 있지만, 그리고 매일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이런저런 클래식을 감상하곤 했었지만, 단언컨대 임윤찬보다 몇 배의 삶을 살아온 지금까지도 작곡가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린 피아니스트의 대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충격과 큰 감동으로 다가왔고,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예술인으로서, 또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해왔던 나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중략) 많은 예술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우리 모두에게 유산으로 남겨진 예술의 가치를 찾기 위한 노력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지기를 소망해 본다.
-p. 343~344, ‘마치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