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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구곡에 노닐다


  • ISBN-13
    979-11-5854-525-3 (03910)
  • 출판사 / 임프린트
    도서출판 학이사 / 도서출판 학이사
  • 정가
    20,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9-05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김봉규
  • 번역
    -
  • 메인주제어
    아시아사
  • 추가주제어
    대한민국 , 역사지리 , 동아시아, 인도철학
  • 키워드
    #아시아사 #대한민국 #역사지리 #구곡 #조선 #선비 #주자 #무이구곡 #동아시아, 인도철학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50 * 220 mm, 312 Page

책소개

조선 선비를 통해 바라본

유학의 꽃이자 진수, 구곡문화

 

구곡을 기반으로 형성된 구곡문화는 당대 최고 지식인 집단인 유학자(성리학자)들이 오랜 세월을 통해 일군, 인간이 지향해야 할 삶의 도리와 가치관이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들은 자연을 단순히 풍류의 대상으로만 삼은 것이 아니라, 천리를 깨닫고 올바른 심성을 기르는 철학적 공간으로 인식했다.

 

책에서는 주자의 무이구곡(중국 푸젠성)을 포함해 전국의 대표적 구곡 20여 군데를 답사해 그곳에 담긴 사연과 구곡시 등을 정리하고, 관련 사진과 구곡도를 함께 실었다. 풍부한 자료를 통해 성리학적 이상세계와 자연이 어우러져 탄생된 독특한 구곡문화가 유학의 꽃이자 진수이며 정신문화유산임을 보여준다.

목차

■ 구곡과 구곡문화

구곡문화의 유래 / 구곡문화의 전개

 

■ 구곡문화 탄생지 무이구곡武夷九曲

무이산 / 주자와 무이구곡 / 칸트에 비유되는 주자

 

■ 주자의 무이구곡가

무이구곡을 노래한 무이도가 / 조선 성리학자들의 무이도가 해석 / 중국 문인들의 무이도가 해석

 

■ 무이구곡도

조선 선비들이 애장한 무이구곡도 / 민화로 확산된 무이구곡도

 

■ 안동 도산구곡

이황과 도산구곡 / 이황의 무이도가 차운시/ 언제 누가 설정했는지 불명확한 도산구곡 / 이야순 도산구곡가

 

■ 해주 고산구곡

이이의 고산구곡가 / 송시열 주도로 제작하기 시작한 고산구곡도 / 민화로도 그려진 고산구곡도 / 송시열 등 10명이 지은 고산구곡시

 

■ 괴산 화양구곡

송시열 유적 중심으로 설정된 화양구곡 / 구곡 굽이마다 전서로 이름 새겨 / 1844년에 지은 화양구곡기 / 주자의 무이도가를 차운한 송달수의 화양구곡시

 

■ 봉화 춘양구곡

선비들이 은거한 정자 중심으로 구곡 설정 / 이한응의 춘양구곡시 / 3곡은 풍대 홍석범이 학문 닦던 곳 / 5곡 창애정은 이중광이 은거하던 곳 / 권벌의 얼이 서린 8곡 한수정

 

■ 경주 옥산구곡

회재 이언적 은거지에 설정 / 설정자 이가순의 옥산구곡시 / 5곡 관어대에 자리한 계정(溪亭) / 7곡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징심대

 

■ 영천 횡계구곡

정만양 · 정규양 형제가 만든 구곡 / 3곡 태고와는 정규양이 1701년에 건립한 누각 / 구곡 중 중심 굽이인 5곡 와룡암 / 신선이 사는 곳에 비유한 채약동(採藥洞)

 

■ 안동 하회구곡

상류에서 1곡이 시작되는 하회구곡 / 류건춘의 하회구곡시

 

■ 안동 고산칠곡

이상정의 고산칠곡시

 

■ 계룡산 갑사구곡

윤덕영이 1927년에 설정한 구곡 / 구곡 중심은 윤덕영의 별장 간성장 주변

 

■ 계룡산 용산구곡

용을 주제로 설정한 용산구곡 / 용산구곡 중심은 5곡 황룡암

 

■ 문경 선유구곡

정태진이 1947년에 설정한 구곡 / 정태진의 선유구곡시 / 손재 남한조 기리며 정한 6곡 탁청대 / 9곡 옥석대는 신선이 신발 남긴 곳

 

■ 성주 무흘구곡

주자의 무이구곡을 동경한 정구 / 그림으로도 그려진 무흘구곡 / 정구의 구곡시 / 정각의 시로 보는 무흘구곡 / 한강 정구가 사랑한 2곡 한강대 / 7곡 만월담 아래 무흘정사 지어 은거

 

■ 영주 죽계구곡

두 개의 죽계구곡 / 순흥지 죽계구곡

 

■ 청도 운문구곡

무오사화 등을 겪으며 은거를 택한 박하담 / 박하담의 소요당일고 / 박하담의 운문구곡가 / 내원암 입구에 5곡

 

■ 화천 곡운구곡

김수증이 은둔지를 찾아 설정한 구곡 / 조세걸의 곡운구곡도는 진경산수화의 토대 / 곡운구곡의 중심 6곡에는 농수정사

 

■ 봉화 대명산구곡

강필효가 운곡천과 낙동강 20km에 설정한 구곡 / 할머니가 난을 피해 살던 곳인 1곡 마고 / 3곡은 산고월소(山高月小)의 조대(釣臺) / 5곡은 이황이 사랑한 청량산

 

■ 문경 석문구곡

채헌이 18세기에 금천과 대하천에 설정한 구곡 / 배 모양의 바위 주암이 2곡 / 채헌이 많은 시를 남긴 9곡 석문정

 

■ 괴산 갈은구곡

전덕호가 이상향 꿈꾸며 설정 / 굽이마다 명칭과 구곡시 새겨

 

■ 성주 포천구곡

이원조가 주자를 본받아 가야산 계곡에 설정한 포천구곡 / 이원조의 포천구곡시 / 베를 말리는 듯한 4곡 포천 / 9곡 홍개동에 만귀정 지어 은거

 

■ 괴산 선유구곡

1곡은 선유동문(仙遊洞門) / 거대한 바위들이 몰려 있는 7곡~9곡 / 정태진의 시 외선유구경(外仙遊九景)

 

■ 대구 운림구곡

우성규가 금호강에 설정한 구곡 / 1곡은 금호강 낙동강 합쳐지는 용산 / 6곡 연재는 강창교 부근 이락서당

본문인용

 

[머리말]

 

 조선 선비들은 자신들이 존숭하던 주자의 무이구곡을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직접 구현하고자 했다. 성리학적 이상세계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학문에 정진하던 선비들의 의지가 현실화된 공간이 바로 구곡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는 성리학적 이상세계가 자연과 어우러져 탄생된 독특한 구곡문화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이 담겨있는 이 ‘구곡기행’을 통해 각박한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일상을 돌아보며 여유를 되찾고, 삶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도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책 속으로]

 

 구곡은 말 그대로 산속 계곡의 아홉 구비를 뜻한다. 이 구곡은 선비(성리학자)들이 경영한 원림(園林)이다.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시대 선비들의 이상이 녹아있는 정원문화였다 할 수 있다. 구곡으로 한 것은 구(九)를 여러 가지 면에서 최고의 수로 여긴 동양문화의 사고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p. 15, ‘구곡과 구곡문화’ 중에서

 

 

 구곡의 조건을 갖춘 지형은 세계 곳곳에 무수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구곡은 특정의 역사적 · 환경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개념이다. (중략) 주자가 푸젠성 무이산(武夷山)에 은거해 학문을 닦으면서 구곡을 경영하고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노래한 「무이구곡가」를 지음으로써 중국의 무이산은 물론 동아시아의 문화지형을 바꾸어 놓게 되었다.

 

-p. 17, ‘구곡과 구곡문화’ 중에서

 

 

 주자는 무이구곡 아홉 굽이의 절경에 각기 이름을 붙였다. 1곡은 승진동(升眞洞), 2곡은 옥녀봉(玉女峯), 3곡은 선조대(仙釣臺), 4곡은 금계동(金鷄洞), 5곡은 무이정사(武夷精舍), 6곡은 선장봉(仙掌峯), 7곡은 석당사(石唐寺), 8곡은 고루암(鼓樓巖), 9곡은 신촌시(新村市)이다. 선조대는 선기암(仙機岩)으로 불리기도 한다. 금계동은 금계암(金鷄岩), 5곡은 철적정(鐵笛亭)으로 된 기록도 있다. (중략) 무이구곡 구간은 대부분 양쪽으로 솟아있는 커다란 암벽과 높은 암봉들 사이로 맑고 많은 물이 흘러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을 이룬다. 구비가 많으나 물결은 대부분 잔잔하게 흐른다. 작은 폭포도 없다. 옛날에는 1곡에서 뗏목을 타고 9곡까지 거슬러 올랐다고 하나, 지금은 9곡에서 대나무 뗏목(竹筏)을 타고 1곡까지 내려오면서 유람한다.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관광객이 많아 하루 종일 뗏목이 이어지며 장관을 이룬다.

 

-p. 24~25, ‘구곡문화 탄생지 무이구곡’ 중에서

 

 

 주자 성리학을 최고의 학문 가치로 여긴 조선 선비들의 무이구곡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각별했다.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무이구곡을 직접 답사할 수가 없었던 만큼, 무이구곡도를 구해 곁에 두고 보면서 주자의 삶과 가르침을 본받고자 하는 욕구는 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p. 42, ‘무이구곡도’ 중에서

 

 

 도산구곡은 중국 무이산에 주자가 있었다면 조선의 도산에는 퇴계 이황이 있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도산구곡이 언제 누구에 의해 설정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황이나 그의 제자들 문집에서 이황이 도산구곡을 설정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기록이 없어 이황이 직접 설정했다고 볼 수도 없다. 도산구곡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후계(後溪) 이이순(1754~1832)의 문집 『후계집(後溪集)』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p. 52, ‘안동 도산구곡’ 중에서

 

 

 조선시대의 무이구곡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기에 상상 속에서만 떠올려야 했다. 그러한 동경을 해소해 준 것이 바로 무이구곡도였다. 무이구곡도는 주자학(성리학)에 대한 이해의 기반이 마련된 16세기부터 조선에 들어왔다. 이후 지식인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조선 말기까지 변용과 확산의 과정을 거치며 널리 감상되었다. 17세기에 이르면 무이구곡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벗어나 개인의 은거처에 구곡을 조성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무이구곡을 상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머문 현실 공간 속에 직접 구곡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러한 구곡 경영은 주자의 학자적 삶을 적극 계승하는 방편으로 여겨졌다. 이는 조선구곡의 조성과 조선식 구곡도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독창적인 조선의 구곡문화가 태동하는 토대가 되었다.

 조선구곡의 본격적인 서막은 율곡 이이(1536~1584)가 은거의 공간으로 조성한 고산구곡(高山九曲)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퇴계 이황과 달리 율곡 이이는 직접 구곡을 설정하고 경영했다. 고산구곡은 조선의 선비가 직접 구곡을 경영한 초기 사례 중 하나이다.

 

-p. 61~62, ‘해주 고산구곡’ 중에서

 

 

 우암과 그의 제자들은 중국의 명나라가 망해버린 마당에 중화문명을 지켜낼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조선밖에 없다면서 화양구곡을 경영했다. 구곡의 큰 바위에 명나라 황제와 조선 국왕의 글씨를 새기는 등의 행위를 통해 화양구곡을 중화문명의 성지(聖地)로 만들고자 했다.

 명나라는 쇠퇴하고 청나라가 일어서면서, 청은 명나라를 치기 전 조선을 두 번 침략했다. 조선은 두 번의 전쟁에서 패전했으면서도 청을 오랑캐로 보고, 비록 망했지만 유교의 도통(道統)을 이은 명나라를 문명국으로 보고 따랐다. 이런 친명반청(親明反淸) 정책의 중심에 송시열이 있었다.

 화양구곡은 송시열이 사망한 후 제자인 수암(遂菴) 권상하(1641∼1721)가 처음으로 설정하고, 이후 단암(丹巖) 민진원(1664~1736)이 구곡의 범위와 명칭을 최종적으로 확정하고 그 이름을 전서로 바위에 새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p. 79~80, ‘괴산 화양구곡’ 중에서

 

 

 경암은 춘양이 비록 외진 고을이나 학덕이 높은 선비를 많이 배출하고 풍속과 예절이 우아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고을이라 했다. 성리학의 도가 구현되는 공간이고, 그래서 은구와 양진의 장소가 되는 곳이라는 것이다. 실제 춘양구곡은 굽이마다 덕이 높은 선비가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친 유적이 남아있다. 아홉 굽이를 설정하고 거슬러 올라가며 구곡시를 지은 것은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춘양구곡이 평범한 공간이 아니라 성리학의 도가 전개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담아낸 것이다.

 

-p. 94~95, ‘봉화 춘양구곡’ 중에서

 

 

 고산칠곡은 안동시 일직면과 남후면에 걸쳐 있는 미천(眉川) 물줄기에 조성된 구곡이다. 미천은 낙동강 지류로, 안망천(安望川)이라고도 한다. 구곡은 계곡 환경에 따라 매우 드물게 이처럼 칠곡으로 설정돼 경영되기도 했다.

 이 고산칠곡을 경영한 주인공은 대산(大山) 이상정(1711~1781)이다.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은 이상정은 이황 이후 영남학파 최고의 성리학자로 꼽히며, ‘소퇴계’로 불릴 정도로 학문이 깊었다. 그의 학문은 구한말까지 이어져 영남 퇴계학파의 주류를 이뤘다.

 

-p. 143, ‘안동 고산칠곡’ 중에서

 

 

 용산구곡은 계룡산 상신계곡(충남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 있는 구곡이다. 취음(翠陰) 권중면(1856~1936)이 1932년에 설정했으며, 승천할 용을 모티브로 삼아 국권의 회복을 바라는 염원을 담아낸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한 이후 계룡산 상신계곡에 은거하며 용의 일생을 주제로 구곡을 설정, 기울어진 국운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일반적인 구곡과는 다른 주제를 담고 있어 흥미롭다.

 

-p. 161, ‘계룡산 용산구곡’ 중에서

 

 

 무흘구곡(武屹九曲)은 성주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한강(寒岡) 정구(1543~1620)가 주인공이다. 그가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무흘정사(1604년 건립)를 중심으로 대가천 일대에 설정된 구곡이다. 대가천은 김천의 수도산에서 시작된 물이 수도암과 청암사를 지나고, 다시 동쪽으로 흘러 성주 금수면 가천면 수륜면을 거쳐 고령군 운수면 회천으로 흘러든다. 무흘구곡은 성주 수륜면에서 시작돼 금수면을 거쳐 김천 증산면으로 이어지는 매우 긴 계곡에 걸쳐 있다.

 정구 역시 주자의 삶을 닮고자 했고, 무이구곡을 사랑했다. 그래서 주자의 「무이도가」를 차운한 시를 짓고, 『무이지(武夷志)』를 증찬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흘계곡 곳곳에는 그런 그의 삶이 녹아있다. 무흘구곡은 정구의 이런 삶에서 비롯되었다. 

 

-p. 185, ‘성주 무흘구곡’ 중에서

 

서평

조선의 선비,

산천에 성리학의 도덕적 이상세계를 투영하다

 

도산구곡(안동), 무흘구곡(성주), 화양구곡(괴산) 등 우리나라의 풍광 좋은 계곡이나 하천에는 조선 시대 선비들이 설정하고 경영한 구곡이 자리 잡고 있다. 특정 구간에 아홉 물굽이를 지정해 이름을 붙이고, 그곳에 정자나 정사 등을 지어 은거의 거처로 삼아 지내면서 성리학의 도덕적 이상세계를 투영했던 문화가 구곡문화이다. 단순히 풍경 좋은 곳의 아홉 굽이가 아니라 당대 지식인들의 정신세계와 자연관, 그들이 추구한 도학(道學)의 세계와 이상향이 서려 있는 곳이다.

 

구곡문화의 원류는 중국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의 무이구곡(중국 푸첸성)에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주자를 최고의 스승으로 삼았기에 주자가 경영한 무이구곡을 본받아 자신이 머무는 곳의 자연을 대상으로 각기 구곡을 경영하면서, 주자의 무이구곡가를 본떠 구곡시가를 읊고, 구곡도를 그려 완상하며 구곡문화를 심화시켰다. 이런 구곡문화는 자연과 문학, 미술, 비평이 조화롭게 혼합되어 빚어진 ‘유학의 꽃이자 진수’로 일컬어진다.

 

 

성리학과 문학(구곡가), 예술(구곡도), 건축(누정)의 결합

조선 선비문화의 보고가 되다

 

저자 김봉규는 절집, 현판, 누정 등 우리 문화 예술과 동양 사상에 관심을 두고 조선 선비들의 삶과 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이다. 『조선의 선비, 구곡에 노닐다』에서는 대표적 구곡 20여 곳을 답사하고 그곳의 사연과 구곡시, 관련 사진과 구곡도를 더하여 한 권으로 정리했다. 최근 들어 구곡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지방자치단체가 대표적 구곡들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새로운 문화관광산업 콘텐츠로 개발하고 있다. 괴산의 화양구곡은 명승 제11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구곡의 수는 조사가 진행될수록 늘어나고 있다. 전국적으로 150여 곳의 구곡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경북에만 40여 곳의 구곡이 있어 대구경북에 특히 구곡문화가 성행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비문화가 유달리 발달했으며 빼어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이황을 비롯해 걸출한 성리학자도 많이 배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조선 선비들의 구곡에 대한 다양한 시각, 무이구곡을 그린 무이구곡도의 수용과 변화 등에 대해서 상세하게 보여준다. 이황에서 비롯된 도산구곡(안동), 송시열의 화양구곡(괴산), 정구의 무흘구곡(성주) 등 조선 선비들이 경영한 대표적 구곡 20여 곳을 찾아 관련된 시, 그림, 일화 등을 풀어내며 구곡문화의 생생한 인문학적 가치를 알려준다.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각박해진 현대야말로 선조들이 일궈놓은 소중한 문화유산인 구곡문화를 되살려야 할 때이다. 옛 선비들은 자연을 단순히 풍류의 대상으로만 삼은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올바른 심성을 기르는 공간으로 인식했다. 구곡문화를 통해 선비들이 추구한 가치관과 세계관, 삶의 태도 등을 볼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일상의 여유를 되찾고, 보다 충만하고 행복한 삶으로 향하는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김봉규
칼럼니스트, 1959년생.
경북대 법학과 졸업 후 삼성생명, 한국조폐공사 등을 거쳐 1990년 〈영남일보〉 논설위원으로 입사. 입사 후 편집국 기자·부장과 논설위원 등을 거쳐 문화전문기자로 2023년 2월에 퇴사했다. 그동안 문화부 기자로 오래 근무하며 불교와 선비 문화를 중심으로 많은 기획 연재 기사를 썼다. 퇴사 후 여러 매체에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길따라 숲찾아』, 『한국의 혼 누정』(공저), 『조선의 선비들, 인문학을 말하다』, 『머리카락 짚신』(칼럼집), 『조선 선비들의 행복콘서트』, 『석재 서병오』, 『현판기행』, 『조선의 선비들, 사랑에 빠지다』,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절집의 미학』, 『수류화개, 물 흐르고 꽃 피다』 등 저서 20권(비매품 5권)을 출간했다.
1954년 대구에서 창립한 종합출판사.
문학·인문·사회·교양·아동·실용 등 모든 장르의 종이책과 전자책을 출간한다. 학이사(學而思)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論語》)’에서 따온 이름으로, 이 말을 기업 정신으로 삼는다.
제37회 ‘한국출판학회상–기획·편집’ 부문을 수상했으며, 아동도서 브랜드 학이사어린이가 있다. 지역독서운동을 위해 학이사독서아카데미와 책으로 노는 사람들, 전국 지역출판사 책을 대상으로 하는 서평쓰기 대회 사랑모아독서대상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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