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이 책이 1974년 3월에 첫 출간된 지 올해로 반세기가 되었다. 조순 선생께서 50년 전 공리공담이 아닌 현실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분석도구로서 경제학의 기본 원리 체득을 목적으로 이 책을 저술하신 후 경제학 3세대가 여러 차례의 개정을 다음 네 가지 원칙에 따라 수행했다. 책 전체를 통하는 일관된 논리가 있고, 읽기 쉽지만 내용에는 깊이가 있으며, 현실적합성을 중시하고, 최근 학계의 동향도 충분히 감안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번 『경제학원론』 제12판 개정은 이 네 가지 원칙에 더하여 조순 선생이 학문하는 자세로 늘 강조하신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상기하며 책 전반에 걸쳐 먼저 경제사회의 제도와 기본 개념에 대한 설명을 보완했다. 그리고 경제이론의 발전을 가져온 시대적 배경을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개별 이론을 소개할 때는 그 이론의 현실경제 설명력과 정책시사점뿐만 아니라 한계도 명확히 서술하려고 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이론을 창안한 주요 경제학자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는 〈경제학자와 아이디어〉를 확충했다. 특히 아담 스미스, 존 메이나드 케인즈,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이 각각 자신들의 저술을 통해 보여준 인간과 경제에 대한 통찰력은 조순 선생이 이들 경제학자의 사상과 현실경제에 대한 함의에 대해 남기신 글들을 빌려서 소개했다.
구체적으로 1장(경제학이란 무엇인가?)은 경제행위뿐만 아니라 경제질서의 중요성, 경제제도와 사회제도 간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경제이론의 발전에 대한 개괄적 논의를 보완하였으며 아담 스미스, 칼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을 간략히 소개했다. 2장에는 수요·공급 균형 분석의 한계에 대한 논의를 추가했으며, 4장에는 기업의 생산기술과 생산비용에 대한 본격적인 서술에 앞서 생산의 의미와 동기, 생산의 주체로서 기업의 특징과 유형 등을 보완했다. 7장에는 독점적 경쟁이론과 과점이론에 각각 기여한 챔벌린과 쿠르노를, 9장에는 노동시장의 수요독점이론과 불완전경쟁이론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조안 로빈슨을 주요 저술 중심으로 소개했다. 9장에는 자본, 이자 및 이윤의 본질에 대한 설명을 추가·보완했다. 그리고 자본·이자 이론에 중요한 기여를 한 뵘-바베르크와 이윤의 본질로서 혁신·기업가 정신을 강조한 슘페터의 주요 저술과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또한 11장에는 당사자들의 협상을 통해 외부효과의 해결 가능성을 제시한 코우즈를 〈경제학자와 아이디어〉로 추가했다. 미시경제학원론의 마지막 장(章)인 14장에서는 비교우위와 국제무역이론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중상주의를 간략히 다루었다.
거시경제학원론을 시작하는 제VII편의 17장에서는 국가경제의 기본 문제인 장기적 경제성장과 단기적 경기변동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발전해 온 거시경제이론의 뿌리로서 고전학파와 케인즈의 견해를 정리·소개하고 아울러 케인즈의 생애와 사상도 짚어보았다. 장기적 경제성장의 주요 사실과 경제성장 이론 및 정책을 다루는 18~19장에서는 솔로우 모형이라 불리는 신고전학파 성장모형의 모태인 고전학파 성장이론을 추가하고, 이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맬더스, 쿠즈네츠, 솔로우의 주요 저술과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단기적 경기변동의 정형화된 사실과 경기변동 모형을 설명하는 20~22장에서는 경기변동의 원인과 유형, 지속성과 변동성을 설명하려고 했던 경기변동이론의 역사를 추가하고, 케인즈학파의 총수요·총공급 모형에 기여한 힉스와 토빈을 〈경제학자와 아이디어〉로 소개했다. 바로 이어지는 경기안정화정책에 대한 논의를 다룬 23장에는 고전학파의 자유주의와 케인즈의 개입주의에 기반한 국가의 경제적 역할과 국가재정의 건전성에 영향을 미치는 재정원칙의 변천과 시사점을 추가했다. 또한 금리 중심 통화정책의 기준 역할을 하는 자연이자율 개념을 처음 제시한 빅셀의 주요 저서와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24장에는 재정정책과 화폐금융정책의 유효성에 대한 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의 견해를 추가했으며, 25장에서는 고전적 필립스곡선의 실증적 문제점을 좀더 상세히 설명하고 이와 관련된 하이에크의 주요 저술과 견해를 소개했다. 끝으로 26장에서는 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의 거시이론에 미시적 기초를 보완하여 발전시킨 새고전학파와 새케인즈학파의 거시경제이론을 각각 소개하고 그 차이점을 비교·평가했다.
이 밖에 책 전반에 걸쳐 이론을 뒷받침하는 국내외 사례 및 통계자료를 최근의 것으로 업데이트했다. 예를 들어 8장의 〈현실과 경제학 : 한국의 임금격차〉는 근로형태별·규모별·성별 임금격차의 최근 통계까지 포함하였다. 또한 17장에서는 코로나19 충격 이후의 세계 경제, 인플레이션, 저출산·고령화, 소득·부 불평등 심화, 인공지능과 거시경제 등 5대 이슈를 최근까지 업데이트된 데이터와 함께 설명했다.
이번 개정에서 김한솔(서울대 경제학부 박사과정) 군은 통계자료와 사례 업데이트, 교정지 검토 등 개정작업 전반에 걸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구교준(서울대 경제학부 학사과정) 군은 마지막 교정지를 꼼꼼히 읽고 서술 개선과 오타 수정을 도와주었다. 이 두 학생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지난 20여 년간 저자들과 한 팀을 이루어 좋은 책을 제작해 온 율곡출판사의 박기남 사장과 방조일 주간에게도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다.
끝으로 이 책의 발간 50주년을 2년 남기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신 조순 선생께 사은지심(師恩之心)을 담아 이 개정판을 헌정하고자 한다. 새로운 저자를 맞이하실 때마다 세대 간 단절이 없는 책이라고 자랑스러워하셨듯이 앞으로도 멀리서나마 경제학 3세대의 노력이 담긴 이 책의 타고난 행운이 오래 이어지도록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리라 믿는다.
2024년 8월 12일
공동저자를 대표하여 정운찬(鄭雲燦)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