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동물을 끔찍이 사랑했던 프랑스 대표작가, 콜레트
어수룩한 불독 ‘토비’와 냉소적인 샤르트뢰 고양이 ‘키키’의 시골 일상을 그리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 그림 삽화로 고전의 풍미를 더한
국내 초역작 『토비와 키키』
인간의 욕망과 정열적 사랑, 미움과 같은 날것의 본능을 탁월하게 그려내 프랑스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고전 작가 콜레트. 사실 그녀는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라, 어렸을 때부터 자연과 동물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강아지와 고양이는 그녀 인생을 관통하는 반려 파트너이자 영원한 뮤즈이기도 했다. 이 책 『토비와 키키』는 그런 콜레트가 깊은 애정을 담아 집필한 희곡 형식의 이야기로, 순박하고 단순한 강아지 토비와 염세적이고 거만한 고양이 키키의 프랑스 시골 일상을 담고 있다. “하등 중요하지 않은 인간들”도 한 집에 살고 있으나, 논외로 두자.
『토비와 키키』는 두 동물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낱 인간의 귀에는 “멍멍”, “야옹” 소리일 뿐이겠지만, 사실 이들은 꽤 심오하고 진지하다.
“고양이는 손님이지 장난감이 아니야. 솔직히 우리가 어쩌다가 이런 시대에 살게 됐는지 모르겠어! 두 발 족속만 슬퍼하고 기뻐할 권리, 접시까지 핥아먹을 권리, 혼을 낼 권리, 자기들의 널뛰는 기분대로 집 안을 휘젓고 다닐 권리가 있는 거야? 나도 변덕이 있고 슬픔이 있다고. 나도 식욕이 있을 때가 있고 없을 때가 있어. 나도 아무도 없는 데서 호젓하게 몽상에 젖고 싶은 때가 있다고…” (키키의 말)
“고양아, 너는 멸시하기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친구지. 딴 데 쳐다보지 마! 너의 독특한 수줍음이 감추고 싶어 하는 것, 너는 그걸 약한 모습이라 부르지만 나는 사랑이라고 불러.” (토비의 말)
자유, 삶과 죽음, 사랑, 우정은 토비와 키키의 단순하고도 시적인 사유를 거쳐 독자에게 전해진다. 난해한 이론이나 어려운 용어는 힘을 잃는다. 토비와 키키를 행복하게 하는 건 갓 만개한 꽃, 시원한 바람, 눈앞의 간식, 따스한 담요, 옆집의 매력적인 동물들, 그리고 한 번씩 던지는 절묘한 블랙유머.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콜레트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본성을 억지로 미화하거나 도구화하지 않으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단순한 행복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에게 『토비와 키키』를 권하는 이유다.
독창적인 고전 이야기 + 탁월한 우리말 번역 + 풍성하고 다채로운 삽화
20세기 초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콜레트의 이 독창적인 희곡을 국내 독자에게 최선의 모습으로 선보이기 위해, 생텍쥐페리와 에릭 로메르를 번역하는 등 다종다양한 프랑스 도서를 국내에 소개해 온 전문 번역가 이세진, 그리고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 그림으로 팬층을 다져온 박라희가 만났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콜레트의 1904년작 고전 희곡은 쉽고 명료한 우리말로 재탄생했으며, 무려 67점의 정성 가득한 삽화를 곳곳에 배치해 보는 맛을 더했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다룬 작품은 아무리 소품일지라도 그 작가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동물들, 그리고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 세차게 몰아닥치다가도 어느새 물러가 화창한 풍경을 드리우는 자연은 콜레트를 통해 아주 독특하고 참신한 한 편의 희곡이 되었다. 특히 『토비와 키키』는, 첫 남편의 필명으로 자신의 소설을 발표해왔던 콜레트가 오롯이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를 가진다.
콜레트는 토비와 키키를 매개로 인간을 그리지 않는다. 토비는 그저 강아지, 키키는 그저 고양이일 뿐. 인간의 잣대로 만든 도덕관념과 상식으로 그들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눈앞의 행복과 쾌락을 좇는 이들의 단순한 최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