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시대 춤과 주체
춤-예술만큼 현실과 동떨어졌다 자신을 착각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지나 포스트자본주의를 논하는 시대, 신자유주의를 지나 인지자본주의를 논하는 시대, 춤과 춤-예술가는 자본이 행사하는 중력과는 무관한 양 자신을 한껏 치장하고선 고고하게 날갯짓하며 땅 위에 서 있다. 문제는 자신을 천상의 존재라 착각한 채 거만한 태도로 자기 턱을 치켜들고 있는 탓에 제 발이 어디에 묶여 있는지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어느 순간부터 춤-예술과 그것의 생산을 이끄는 춤-예술가 기득권층은 자신의 태생을 망각하고선 점점 더 세상과 동떨어진 무엇이 될 수 있다는 듯 기묘한 사물로 자신을 드러낸다.
춤-예술가-실업자가 도처에 넘쳐나고, 그나마 계약직 아니면 일용직 노동자라도 되어 나날이 버티며 겨우겨우 연명해 가는 동료들을 목격하는 와중에, 일명 상부구조로서의 춤-예술과 그 구조에 갇히는 안락을 욕망하는 춤-예술가는, 자신의 생산물뿐 아니라 자신마저 상품화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극장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펼치는 현란한 몸짓으로 관람객을 유혹하여 그들을 비현실로 이끄는가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지극히 관념적·추상적이기만 한 이론 생산에 박차를 가한다. 심지어 자신을 성역화함과 동시에 고립시키면서 점점 더 무지막지한 사물로 변질한다.
탁월한 존재로 간택 받았기에 부여된 권리라 믿고 행사해 온 그간의 예술 실천들은 과연 무엇의 결과인지, 즉 자신이 자본의 논리에는 어떻게 순응했기에, 또 자본은 뭘 내어주고 뭘 앗아갔기에 발생한 효과인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한, 아니 그것에 대해 아예 무지하다고 해도 좋을 현시대 춤-예술과 춤-예술가는 자본이 낸 길을 따라 대중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하지만 춤-예술과 춤-예술가가 자본에 복무하는 이 같은 현실을 단지 그 둘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현시대 춤-예술과 춤-예술가를 둘러싸고 있는 비가시적인 자본의 촘촘한 그물망이 그 둘의 목을 조이면서 그 둘의 생존을 향한 이기적 본능을 깨우고,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더 그럴싸한 사물로 둔갑하는 데 진력하도록 이끄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춤-예술과 춤-예술가의 자본주의적 사물화는 그러한 비참의 현실이 종용하여 야기한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생존 전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계급화·식민화·파편화·상품화로 치닫는 비참의 현실에 맞서 사람사는 세상을 여는 역능의 잠재태로서의 춤-예술과 춤-예술가의 사회적 기능 및 역할이다. 자본이 산 노동으로서의 예술, 예술가의 살아있는 노동을 죽은 노동으로 만들어 자기 것으로 삼을 때, “저항과 거부”라는 예술의 형이상학적 조건, 즉 “예술의 자기가치화는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의 행위 주체로서의 예술가는 비참의 세계에서 예술을 탈환하여 자신을 넘어 대중에게 예속되도록 하는 문화정치적 실천으로 예술과 자기노동을 살아있는 노동으로 전화한다. 이러한 실천은 한편으로는 현시대 춤-예술과 춤-예술가가 잃어버린, 공동체에서 기원한 춤의 태생적 의미, 즉 ‘이타성’과 공동체를 통해 빚어낸 춤-예술의 고유한 ‘내재성’을 복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춤-예술과 춤-예술가의 출현, 다시 말해 춤과 대중의 접속을 시도하면서 자본주의 이래 전례 없는 새로운 춤-예술, ‘예술-다중’의 생산을 가능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