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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랍 속 작은 사치


  • ISBN-13
    979-11-5525-174-4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낮은산 / 낮은산
  • 정가
    16,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8-28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이지수
  • 번역
    -
  • 메인주제어
    에세이, 문학에세이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에세이, 문학에세이 #작은 사치 #무용한 아름다움 #하루 치 기쁨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20 * 190 mm, 240 Page

책소개

“무용해서 아름다운 것들이 지닌 진짜 유용함은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이다.”

_김신지(『제철 행복』 저자) 

 

“오늘 하루의 생활 중 단 한 가지라도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고된 하루를 건너갈 징검돌이 되어 준

작은 사치에 관하여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등을 우리말로 옮기고 『아무튼, 하루키』 『읽는 사이』 『우리는 볼록볼록해』 등을 쓴 이지수 작가의 신작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내 서랍 속 작은 사치』는 몇 년 전 한 일간지에 쓴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에서 비롯된 책이다. 이 글에서 작가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출판사 외판원들에게 호쾌하게 지갑을 열고, “늘 어제와 다른 색깔의 방울과 리본”을 언니와 자신의 머리에 달아주고, 모조일지언정 갖가지 액세서리들을 즐겼던 엄마를 떠올린다.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뛰고, 유통기한이 지난 선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에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작가는 “엄마가 신산한 삶 속에서도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을 선물해 준 역사가 내 안에 확고하게 존재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색색깔의 머리 방울과 리본, 책이 터질 듯이 가득했던 책장, 앨범 속 나와 언니가 입고 있는 고운 옷과 에나멜 구두. 그런 기억들을 자린고비가 천장에 매달아 놓은 굴비처럼 핥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종류의 남루함도 감히 내 마음을 침범할 수 없었다. 나는 과거의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그 시절을 건넜다.

-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에서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어떤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도와주는” 작은 사치의 목록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이 책에 담긴 스물아홉 편의 글은 추천사대로 “폭이 넓어 건너기 힘든 하루”에 놓인 요긴한 징검돌들이다. 책갈피, 핸드크림, 의자, 프라이팬, 잠옷…… 띄엄띄엄 놓인 제각각 모양의 돌들을 딛고 작가는 어느 고된 하루, 어떤 고단한 시기를 건넜다. 일상적인 물건들에 깃든 이지수 작가 특유의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의 목록을 헤아려보게 할 것이다.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지만 있으면 좋으니까 굳이 구입하는 것. 그런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게 사치품이라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다양한 사람이 나는 부럽다. 그는 분명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그만큼 많이 알고 있을 테니까."

- 「핸드크림」에서

 

햇볕에 잘 달궈진 조약돌처럼

오래 손에 쥐고 있고 싶은 이야기

 

물건에서 시작한 목록은 공간으로, 취미로, 행위로 확장된다. 충동적으로 등록한 피아노 레슨은 “뫼비우스 띠처럼 같은 곳을 맴돌던 나날”을 “미세하게 전진하는 하루”로 바꿔주고, 느직느직 무계획으로 보낸 여행은 “사치스러운 여백의 시간”을 선사한다. 조급증을 누르고 아이의 눈높이와 속도에 맞춘 등원길, 이른 아침 피렌체의 한 성당에서 마주한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마주하지 못할 강렬한 순간”, ‘나는 이렇게 못 자고 있지만 너는 잘 잤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숙면을 빌어주는 불면의 밤을 작가와 함께하는 동안 햇볕에 잘 달궈진 조약돌을 쥐고 있는 듯한, 이것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곧이어 눈앞에 나타난 광경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의 넓은 홀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고, 그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순간을 잡아 두기 위해 숨을 참는 것밖에 없었다.

- 「알리바이」에서

 

따뜻하고 유쾌한 에피소드들이 웃음을 자아낸다면, 묵직하고 뭉클한 에피소드들은 독자를 잠시 멈춰 세운다. 플라스틱 용기 샤워용품들을 비누로 바꾸고, 동물복지란을 사고, 재사용이 가능한 빨대를 쓰는 등 “다른 존재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자신이 발을 딛고 선 장소를 조금이라도 덜 나쁘게 만들려는” 태도가 선택한 사치는 “무해하다”는 말의 무게를 새삼 곱씹어보게 한다. 반려묘 ‘르바’를 떠나보내며 “철저히 계획의 영역 밖에 있”는 죽음을 실감한 작가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다. 시간과 돈이, 무엇보다 넉넉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들과 함께하는 삶에 얼마나 많은 게 필요한지 처음부터 알았다면 나는 겁에 질려 그 삶을 선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별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알았다면 더더욱. 하지만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15년 전의 나는 그 삶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고양이가 주는 행복을 분에 넘치게 누릴 수 있었다.

- 「고양이」에서

 

우리에게서 마지막까지 남게 되는 것은

무용해서 아름다운 찰나들

 

이 책의 에필로그는 각별히 아름답고 서늘했던 글 한 편을 말미로 삼은 것이다. 작가는 이 글에서 “하루를 1초짜리 동영상으로 편집해 기록하는” ‘원 세컨드 에브리데이(1SE)’라는 애플리케이션과 “자신의 하루 중 3초를 선택해 기록하는 안드로이드 ‘양’이 등장”하는 영화 〈애프터 양〉을 소개한다. 6년여의 시간이 단 몇 분으로 압축된 앱에 기록된 영상이 1초씩 망막을 스친다. “건강했던 고양이들, 친구들과의 연말 파티, 제주도에서 만난 강아지, 기고 걷고 뛰는 아이…….” 한편, 영화에서 “제이크와 키라 부부가 입양한 중국계 딸 미카의 정체성 형성을 위해 구입한” ‘양’이 기록한 순간은 이런 것들이었다. “갓난아기 시절의 칭얼대는 미카를 안고 부드럽게 어르는 키라, 걸음마를 시작한 미카, 차를 우려내는 제이크, ‘릴리 슈슈’ 티셔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서 있는 자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회색 벽에 드리워진 수풀 그림자, 햇빛에 반짝이는 거미줄.”

작가는 두 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한 뒤 자문한다. “지금부터의 여생을 그런 식으로 기록한 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클라우드 어딘가에 남게 될 그 영상은 무엇이 되는 걸까.” 인생은 어쩌면 연속되고 일관된 무엇이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에게서 마지막까지 남게 되는 것은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 일과는 상관없는, 무용해서 더없이 아름다운 찰나들뿐이다. 작가가 던진 질문이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에도 마음속에 길고 선명한 메아리를 남긴다.

 

가끔은 이 모든 게, 그러니까 울고 웃고 화내고 안달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그런 것들이 너무나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러면 내 발은 또다시 이곳에 딱 붙어 있지 못하고 어딘가로 자꾸 미끄러진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서랍 속에 작고 단단한 기쁨들이 의외로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안다. 영원의 띠에 흩뿌려 놓으면 거의 보이지도 않을, 먼지처럼 작디작은 알갱이들.

- 「에필로그」에서

목차

프롤로그 함께 반짝이는 것을 밟고 

 

1부 내 서랍 속 작은 호사들

 

첫째의 물건, 둘째의 물건 

책갈피 

핸드크림 

조명 

종이책 

의자 

오디오 

니플 패치 

망고 

프라이팬 

속옷과 잠옷 

선물 

 

2부 오늘의 가장 좋은 순간

 

자기만의 방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 

피아노 레슨 

여행 Ⅰ 

여행 Ⅱ 

호사스러운 직업 

덕질

운전 

느긋한 등원길 

 

3부 지도 밖에서도 인생은 계속된다

 

고양이 

알리바이 

작은 노력을 계속하겠습니다

예상을 벗어나는 대화

평정심의 고수 

독서 권태기의 극복

불면의 밤을 보내는 방법 

정갈한 생활

 

에필로그 우리에게서 마지막까지 남게 되는 것은 

본문인용

그날 오후, 니플 패치를 붙인 가슴 위로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밖으로 나가 봤다. 바깥 공기가 티셔츠를 통과해 상반신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말도 안 되게 시원했다. 이런 촉감을 여태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등과 가슴에 바람이 닿는 느낌이 이런 거였다니. 세상에 누드 비치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단번에 깨달았다.

- 「니플 패치」에서

 

하지만 한번 잠옷 맛을 본 인간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파자마형, 원피스형, 로브형, 티셔츠형, 소매가 짧은 것, 소매가 긴 것, 기장이 짧은 것, 기장이 긴 것, 면 소재, 모달 소재, 시어서커 소재…… 이 세계도 파면 팔수록 끝이 없다.

- 「속옷과 잠옷」에서

 

어느 날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상가의 피아노 학원 쪽으로 발걸음이 향했다. 생활에 쓸 에너지도 없는데 어째서 피아노를 치고 싶어진 것일까. 아니, 어쩌면 생활과 무관했기 때문에 끌렸는지도 모른다.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거나 매 끼니를 차리거나 더러운 옷가지를 세탁하는 일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가족과 얽혀 있지 않은 나만의 영역이.

- 「피아노 레슨」에서

 

나의 걱정거리들은 폭탄이 아닌 방향 전환키가 되어 여행을 예상 가능한 것에서 예상치 못한 것으로 바꿔 놓았다. 준비한 대로 아귀가 착착 맞는 여행도 그 나름의 쾌감이 있지만 인생을 조금 더 닮은 것은 그렇지 않은 여행이다. 뜻하지 않은 기쁨, 예기치 못한 놀라움의 함유량은 언제나 후자 속에 더 많다고 나는 믿고 있다.

- 「여행 Ⅱ」에서

 

햇빛 속에서 그루밍할 때 반짝이는 수염, 털에서 나는 갓 구운 빵 냄새, 내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 때 전해지는 따끈한 체온, 말캉한 발바닥과 의기양양하게 집 안을 활보할 때 바짝 치켜드는 꼬리, 무엇보다 나를 보고 천천히 끔벅거리는 초록색 눈. 그런 아름다움들은 자책과 슬픔으로 가득한 파란 구슬 속에 따뜻한 노란빛을 떨어트린다. 다시 만나자는 말은 염치가 없어서 도저히 할 수 없지만, 분홍 젤리가 달린 앞발을 상상 속에서 가끔 만져 보는 것 정도는 르바도 허락해 주리라 믿는다.

- 「고양이」에서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충격을 받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하필 싱크대 위에 놔뒀던 에어팟부터 집어 들어 생존 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 케이스만 조금 젖고 안쪽은 괜찮았지만, 손이 덜덜 떨려서 기껏 무사했던 이어폰을 양쪽 다 물웅덩이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으악! 으아악! 이때부터 얼어붙은 머리가 강제 해동된 나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수건을 있는 대로 가져와서 눈에 보이는 모든 물을 닥치는 대로 닦아 냈다. 

- 「평정심의 고수」에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어깨 결림이라든지 핑크색 화장실 곰팡이의 존재가 깨끗하게 표백된 이미지. 마치 핀터레스트 속에서 살아가는 듯한 삶. 벽에 붙여둔 포스터 같은 그런 생활이 과연 실재할까. ‘테이네이나 쿠라시’라는 태그의 뒷면에는 프레임에 채 담기지 않은 삶의 찌든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표백된 이미지를 SNS에 전시함으로써 스스로를 홍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타인의 SNS를 볼 때는 그 사실을 머릿속 어딘가에 집어넣어 두고 프레임 바깥을 상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 「정갈한 생활」에서

 

서평

어떤 고된 하루는 폭이 넓어 건너기가 힘들다. 그럴 땐 징검다리를 찾는다. 오늘 내가 디딘 징검돌은 이렇다. 새로 산 원두로 내린 커피, 창밖에 빵처럼 부풀어 오르던 구름, 오후의 짧은 산책, 저물녘의 잔잔한 노을……. 이런 얘기를 누구보다 반갑게 나눌 단짝을 찾은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무용해서 아름다운 것들이 지닌 진짜 유용함은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밥으로도 살지만 꽃으로도 산다. 잠으로도 살지만 꿈으로도 산다. 이제 그 목록에 하나 더, 이 책을 추가해야겠다. 어떤 종류의 남루함도 내 마음을 침범할 수 없게 하는, 한 시절의 나를 지켜 주는, 일상에 윤기를 더해 주는 것. 작가가 ‘작은 사치’를 가리키며 쓴 그 모든 수식을 다시 이 책에 바치고 싶다.

_김신지(『제철 행복』 저자)

 

저자소개

저자 : 이지수
작고 오래되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일본어 번역가.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죽는 게 뭐라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미야모토 테루의 『생의 실루엣』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고 『아무튼, 하루키』, 『우리는 올록볼록해』, 『읽는 사이』(공저), 『사랑하는 장면이 내게로 왔다』(공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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