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쉿, 조용히 해.”
당신이 나이가 많든 적든, 지위가 높든 낮든 내 앞에서는 무조건 조용히 하기 바란다. 고요하고 잔잔한 그래서 아름답기까지 한 침묵을 방해하는 걸 나는 용서할 수가 없다. (김선미, 「레퍼토리」) (9쪽)
“겨우 이 년? 아줌마는 소년원에서 썩는 게 무슨 호텔에서 룸서비스 받고 나오는 것처럼 생각하나 보네. 이 년도 나한텐 길었어. 원래는 심신미야, 우발적 살인으로 9호 처분 받고 육 개월만 살다가 나올 수도 있었는데 그 전에 절도로 보호관찰 받은 이력이 있어서 재수 없게 10호 때려 받은 거야.”
“개 같은 법이네.” (김선미, 「레퍼토리」) (22쪽)
‘버텨야 해.’
그렇게 생각한 것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철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사이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에 진솔은 겁에 질렸다. 또다시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 아이들이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우선 저 아이들의 마음에 들어야 했다. (정해연, 「징벌」) (54쪽)
“논란 끝에 법은 통과됐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 애의 인생을 망가뜨려도 될까요? 아무래도 인권 문제가…….”
집행실을 나가려던 최연희가 태성수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섰다. 최연희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잊지 말아요, 우리는 이제 가해자의 인권 따위를 우위에 두지 않기로 했어요.” (정해연, 「징벌」) (65~66쪽)
“너도 촉법소년이라서 이번 사건으로 형사처벌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네.”
“그래. 하루가 많이 다친 것도 알아? 장애를 얻어서 평생 뛰지도 못하고, 걸을 때도 몹시 불편하게 걸어야 한 대. 그리고 장애에 대한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대.”
“네, 요즘은 학교에도 안 나오던데요. 하루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소문이 학교에 다 퍼졌어요.”
“지금은 하루에 대한 감정이 어떠니?”
“글쎄요, 뭐라고 해야 하나…….” (홍성호, 「네메시스의 역주(逆走)」) (81쪽)
도무지 믿기지 않는 내용이어서 두 번을 듣고 난 뒤에야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자 뒤늦은 전율이 찾아왔다.
예린의 눈에 눈물 대신 불이 일었다.
“김하루, 내가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 (홍성호, 「네메시스의 역주(逆走)」) (99쪽)
세 사람이 한 시간여를 씨름하니 이솔 눈에서 독기가 서서히 빠져나갔다. 마침내 이솔이 진정하자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로 들어왔다. 나는 한 여자애를 붙잡고 괜찮냐고 물었다. 여자애가 생글거리며 대답했다.
“솔이 오빠 화났을 때만 빼면 착해요.” (소향, 「OK목장의 혈투」) (119쪽)
“쟤네 누구니? 아는 애들이야?”
“친한 형들이에요.”
“뭐? 근데 왜 때려?”
“놀다가 장난으로 그런 거예요. 평소엔 잘해줘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쟤들 어느 학교 누구야? 이름 말해.”
“귀찮게 하지 마요. 자꾸 간섭하면 저 학교 안 갈 거예요.” (소향, 「OK목장의 혈투」) (137쪽)
“여보세요?”
“윤민호 씨 아버지 되시나요?”
아들이 배달을 나간 지 삼십 분이 지났다. 이미 돌아왔어야 했다.
“네, 제가 윤민호 아버지 윤종석입니다만…….”
“교통사고예요.” (윤자영, 「그는 선을 넘지 않았다」) (169~170쪽)
“교통사고입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말이 들렸을 때, 나는 ‘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나니 아들놈은 내 차를 운전하여 접촉 사고를 벌써 몇 번을 냈다. 처음에는 수리비를 물어주고 아들의 용서를 대신 빌었지만 이제 점차 지쳐갔다.
아들의 범죄로 학교에 불려 가 사죄하고 강제 전학을 가야 했다. 내 머리도 점차 내성이 생기는 건지 나는 뻔뻔해졌다. (윤자영, 「그는 선을 넘지 않았다」) (200쪽)